<국보> 리뷰
*영화 <국보>의 줄거리 및 결말에 대한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일본 내에서 <국보>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일본 실사영화 역대 흥행 2위라는 기록을 남겼을 뿐 아니라, 22년 만에 자국 내에서 천만 관객을 넘기는 등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다. 일본의 전통연극인 '가부키'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재일교표 한국인 감독 '이상일'이 메가폰을 잡아 화제를 모았다.
‘온나가타’는 가부키에서 여성 역할을 맡는 남성배우를 일컫는다. 일본에서는 1620년대 풍기 문란을 우려해 여성배우의 출연이 전면 금지되면서, 남성배우가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전통이 생겼다. 극 중 야쿠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키쿠오(요시자와 료)는 온나가타 역할에 범상치 않은 재능을 선보인다. 그러던 중 키쿠오는 야쿠자 집안의 항쟁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부모를 여의게 된다. 그런 키쿠오를, 가부키 명문가의 배우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켄)이 거두어들이게 된다. 한지로는 자신의 아들 슌스케(요코하마 류세이)와 키쿠오의 경쟁 구도를 만들어 두 사람을 함께 성장시키고자 한다.
키쿠오와 슌스케는 온나가타로서의 재능을 한껏 만개하며, 젊은 나이에 듀오로 유명세를 얻게 된다. 이렇게 라이벌이자 동료로 깊은 우애를 다지고 있었던 두 사람의 사이에 돌연 균열이 발생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한지로가 다리를 다쳐 무대에 오를 수 없게 되었고, 그의 주변인들은 모두 친자인 슌스케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지로는 자신의 대역으로 양자 키쿠오를 지목한다. 키쿠오는 모두의 의심 어린 시선에도 불구,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며 한지로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운다. 키쿠오의 눈부신 재능에 압도된 슌스케는 홀연히 가부키계를 떠나 자취를 감추고,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영화의 러닝 타임 내내 '재능 vs 핏줄'의 구도가 반복된다. 전술한 스토리라인까지 영화는 키쿠오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재능'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슌스케가 사라진 8년 동안 키쿠오는 가부키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탄탄히 다지고, 한지로 또한 사라진 슌스케 대신 키쿠오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고자 한다. 그러나 다시 상황이 일변한다. 키쿠오가 정식으로 후계자가 된 것을 기념하는 공연에서, 한지로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 것이다. 키쿠오의 입지를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던 한지로가 위태로워지자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키쿠오의 치부를 들춰내기 시작한다. 여기에 슌스케까지 가부키계로 복귀하게 되면서, 키쿠오에게는 '부정하게 친자식의 자리를 가로챘다'라는 프레임까지 씌워지게 된다. 키쿠오의 입지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지고, 곧 그는 몇 십년간 몸을 담았던 하나이 가(家)를 떠나게 된다.
여기서 영화는 재능의 손을 내리고 핏줄의 손을 들어준다. 슌스케의 피를 벌컥벌컥 마셔버리고 싶다던 키쿠오. 하지만 키쿠오가 슌스케의 피를 마신다 할지라도, 혹은 한지로가 토해낸 그 피를 마신다 할지라도, 키쿠오가 한지로의 친자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키쿠오의 '보이지 않는' 재능은 슌스케를 압도하여 그가 가부키계를 떠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상황이 정반대다. '보이지 않는' 재능이, 핏줄이라는 명백한 사실에 짓눌려 가부키계에서 설자리를 잃는다.
서사의 약 3분의 2를 끌고 가던 ‘재능 vs 핏줄’의 대결 구도는, 영화가 결말부에 다다르며 전환점을 맞는다. 슌스케가 가부키계로 복귀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주었던 원로 배우 만기쿠(다나카 민)가, 이번에는 키쿠오를 부른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가부키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던 이 원로배우의 부름은, 키쿠오에게 다시 한번 날아오를 힘을 건네준다. 작은 무대를 전전하며 간신히 온나가타 연기를 이어가던 키쿠오는, 마침내 슌스케와 다시 듀오를 이루며 재기하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키쿠오와 슌스케에게 오래된 평온을 허락하지 않는다. 슌스케가 아버지와 같은 당뇨를 앓게 되어,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슌스케의 핏줄은 가부키계에서 그에게 아주 굳건한 기반이 되어주었다. 그 기반은 탄탄대로를 보장해 줄 뿐 아니라, 그가 긴 공백기를 가졌음에도 순조로운 복귀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핏줄’이 오히려 삶의 족쇄로 작용한다. 아버지에게 내려온 병, 당뇨가 대물림되며, 그의 몸을 천천히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걷는 것조차 힘겨운 상태에서도, 슌스케는 무대를 떠나길 거부한다. 키쿠오의 보조를 받으며, 그는 무대 위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불태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슌스케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의 시야 끝에 마지막으로 펼쳐졌던 풍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또다시 시간이 흐르고, 키쿠오는 가부키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된다. 이제는 ‘국보’라 불리는 그에게 어느 날 한 사진사가 찾아온다. 그녀는 키쿠오가 성공을 위해 외면했던, 그의 사생아였다. 그녀는 키쿠오에게 날을 세운다. 당신은 무대에서 박수를 받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고. 그러나 동시에 고백한다. 당신의 연기를 볼 때마다 모든 분노와 상처를 잊고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으며, 결국 자신도 박수를 치고 말았다고.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그것을 빛의 형상으로 구체화한다. 키쿠오를 감싸며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는 빛. 키쿠오는 그 빛을 보며 조용히 말한다, “아름답다"라고. 앞서 말한 ‘재능 vs 핏줄’의 구도로 이 영화를 읽는다면, 최종 승자는 결국 키쿠오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그 대결 구도는 더 이상 본질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 남는 것은 하나의 질문이다. 이들은 왜 가부키라는 예술에 몸을 던지는가? 마음이 으스러지고, 몸이 망가져도, 왜 결코 무대를 떠날 수 없는가?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름다운 빛을 보여줌으로써 그 질문에 답한다. 예술가라는 족속은 모두 이 보이지 않는 빛에 이끌리는 족속이라고. 그 보이지 않는 빛을 품 안에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의 앞에 비추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예술가라고. 그 빛이야말로 그들의 삶을 움직여온 본질이며, 그들이 아무리 상처받아도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참조 : [특집] 아름다움에 대한 집요한 열망, 이상일 감독의 <국보> 리뷰, 조현나, 씨네 21 (출처 :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088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