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며 - K-pop은 진짜 잘 나가고 있습니까?
어느 분야든 고객층이 넓다는 것, 돈이 된다는 것만 증명되면 언제든 주류가 된다.
그동안 한국 대중음악은 미국, 일본에 영향을 받고 그들의 산업을 벤치마킹하며 성장해 왔기에 일본조차 뚫기 어려웠던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불가능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1~3세대를 거치며 체계적으로 트레이닝된 가수들은 세계시장에서 통할만한 포텐셜과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고 때마침 변화된 미디어 생태계와 만나 시너지를 이루며 BTS라는 최고의 브랜드가 탄생한다.
이후 케이팝은 전 세계 음악시장에서 주류로 떠오르며 거대 자본과 만나 고도의 산업화, 분업화 과정을 거치고 쉴 새 없이 물량을 쏟아 붓기 시작한다.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 K-pop 산업은 과연 건전하게 성장하고 있는가?
엔터사업에서 아이돌은 하나의 상품과도 같지만 다른 사업과 다르게 상품을 만든다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팀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투자가 필요하고 데뷔를 한 이후에도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회사는 가수들의 음반, 굿즈, 공연, 광고료 등을 통해 수입을 올리고 다시 그 수입을 계약에 의해 아티스트와 분배를 한다.
문제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옵션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가수의 주요 수입원은 음반판매 공연, 광고, 행사 수익이 전부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 초상권이라는 개념과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정립됐고 H.O.T. 때 이르러 착용한 액세서리, 팬시류 등의 관련 상품들이 대성공으로 엄청난 부수입을 올리게 된다.
있는 제품에 사진을 끼워 넣거나 표지를 프린팅 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 완성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고 이것은 굿즈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후 굿즈는 아이돌 사업에서 떠오르는 비즈니스 모델이 되며 음료, DNA, 향수로 발전하고 지금에 이르러 다양한 상품군으로 등장한다.
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음반 판매 분야는 MP3가 등장한 이후부터 꾸준히 하락세를 겪었고 이는 전 세계 실물 음반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 후반까지 심심치 않게 나오던 밀리언셀러가 2000년대 이후엔 사라졌다.
문제는 이 줄어든 판매량과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리패키지, 랜덤 포토카드, 팬사인회 응모권 등을 동봉하는 상술로 판매량을 올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음반시장에 밀리언 셀러가 다시 등장했지만 그들의 노래조차 모르는 대중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실질적으로 사는 사람은 줄었는데 판매량이 늘어나니 시장이 커진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난다.
이는 결과적으로 팬덤들만 소비하는 구조가 돼버리는데 어떤 결과물을 내놓아도 퀄리티와 상관없이 사주는 충성 팬덤으로 인해 질적인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케이팝 그룹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지만 그중 국민가수라고 불릴만한 팀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들은 팬덤가수인가? 국민가수인가?
만약 국내외 경제 위기가 찾아오면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기 시작할 것이고 정확한 수치가 나올 때 위기감을 감지한다면 그땐 이미 늦을 수 있다.
수익의 무너짐을 다른 부분에서 채우기 위해 공연의 티켓값이 오르거나 기타 굿즈들의 가격도 동반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 외 위버스, 버블 같은 소통 플랫폼을 통한 구독 서비스까지 덕질의 A to Z가 모두 돈으로 연결되어 있다.
팬들도 덕질할 틈을 줘야 하는데 쉴 새 없이 발매되는 굿즈와 곡은 같지만 패키지만 다른 음반들은 팬들의 주머니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100원짜리 풍선을 흔들던 덕질은 4만 원짜리 응원봉을 흔드는 덕질로 바뀌고 있다.
아이돌의 인기의 근원이자 주소비층을 청소년으로 봤을 때 현재 케이팝 시장의 덕질 비용은 10대가 가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한편에선 케이팝 산업의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개인의 감정이나 서사를 허용하지 않는 혹독한 트레이닝 시스템을 지적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케이팝 아이돌의 평균 데뷔 나이는 10대 후반으로 3, 4년의 연습생기간을 감안하면 초, 중학생 정도 나이로 가수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아이돌이 되기 위해 스스로 학업을 포기하는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의무 교육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인성을 키워 갈 가능성이 높고 후에 이들이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2022년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는 'BTS, 세상에서 가장 혹사당하는 백만장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부터 성공을 위해 항상 평가받고 도를 넘는 관심과 감시 속에 살아야 한 그들이 인기를 얻은 후엔 자기 스스로를 돌볼 시간조차 없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케이팝 스타, 즉 아이돌 스타가 된다는 것은 과분한 사랑을 받는 것과 동시에 그만큼의 미움을 받는 직업이기도 하다.
자아가 형성되기도 전에 스스로 배수진을 치는 아이들은 때론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옆에서 지켜줘야 할 부모와 회사가 화려한 성공과 한탕주의에 빠져 아이들을 더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엔터 산업은 꿈과 희망을 파는 산업이다.
팬들은 아이돌의 멋진 모습, 성장하는 서사를 함께하고 싶어 그들의 시간과 돈을 쓴다.
화려하고 멋진 무대 뒤에 정산과 계약문제로 힘들어하는 모습, 개인적 일탈, 배부른 회사 사장님과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아이돌을 소모품으로 쓰는 제작자 따위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재 대부분의 회사들은 아티스트를 장기적으로 성장시키는 목적보다는 투자대비 빠른 결과를 추구하며 팬덤 장사와 바이럴 마케팅에 집중한다.
마치 케이팝이라는 프리미엄을 붙여 대중에게 반복적으로 노출을 시킨 상품에 새로운 스타라고 세뇌를 시키는 것만 같다.
케이팝이 전 세계적인 흥행이라고 앞다투어 이야기하지만 BTS만큼 연령, 인종, 국가를 초월한 차세대 스타가 나오긴 했던 걸까?
어쩌면 우리는 BTS의 성공을 K-POP의 승리로 착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마치며 '과연 K-pop 산업은 건전하게 성장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본다.
사람들은 BTS, 블랙핑크, 세븐틴, 스트레이키즈, 최근엔 K-pop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의 흥행과 OST마저도 빌보드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K-pop 산업이 성숙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과연 이 K열풍은 한순간의 유행을 넘어 지속성을 간직하고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