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지기의 고백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있는 것도 많은 사람입니다. 어쩌면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하기 싫은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해야하는데 하고싶지가 않아서 정말 해야할까 하고 싶은게 맞는걸까 고민하기도 합니다.
여기저기 일을 벌이는 나는 어쩌면 자신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해낼 자신이 없어서 나는 이것저것 하고 있노라고, 변명을 하고 싶은걸까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내가 하고 있는 두가지 일을 모두 꽤나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들로 하루하루 빼곡하게 채워가고 있습니다.
갑자기 스탠바이 비행에 로마가 나왔습니다. (항공사에는 보통 '스탠바이'라고 불리는 스케줄이 있어서 갑작스럽게 빠지거나 변경되는 인원을 채우곤 합니다.) 함께하는 동료 명단에 반가운 이름이 있어 도착 후 랜딩 비어를 마셨습니다. 사회 생활을 잘하는 선배는 나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선배의 조언이 하나 하나 와닿았는데 왜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요. 목표가 생기면 확실하게 집중한다는 선배의 말이, 많이 낯설고 조금 부러웠습니다. 선택과 집중은 꼭 해야하는걸까요? 효율성을 생각하라는 선배의 조언에, 꼭 효율적인게 맞는걸까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른 아침 조식을 챙겨먹고, 시내로 가는 셔틀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솔직히 조금 귀찮았습니다. 어제 고된 비행의 여파로 연골이 사라진 듯 아렸습니다. 함께 온 동료들 중 누구도 시내에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이곳이 처음이라는 신입 중국 승무원 두명을 빼고는 말입니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면, 친구들은 곧잘 의아해합니다. 왜 안나가? 무려 로마에서? 왜 호텔방에 있어? 왜냐구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피곤하니까요. 비행이 정말 고되었거든요. 나도 호텔 침대에 드러누워, 부족한 낮잠이나 자고 싶은 유혹을 잠시 느꼈지만, 하지만 나는 역시나 시내가 좋습니다. 역사 따위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로마신화도 끝까지 읽지 못했어요. 하지만 내 눈에 담기는 낡은 벽돌의 색깔이, 무겁게 닫혀있는 녹슨 철문이, 반쯤 페인트가 벗겨진 하얀 간판의 모습이, 나는 너무 소중합니다. 마음이 행복하다고, 나에게 이야기합니다.
가급적 구글 지도는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휴대폰 속 화살표에 시선을 뺏겨, 초록색 비니를 눌러쓴 이탈리아 오빠의 감성 넘치는 패션을 지나치는 우를 범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이 거리의 공기가 목적지 없는 나의 경쾌한 발걸음에 바람을 불어줍니다. 나는 오늘도 비효율적인 하루를 보낼겁니다. 대부분 목적지는 없습니다. 그냥 길따라 걷고 걷고 걸을 뿐, 왔던 길을 두번 돌아, 아까 테라스에 앉아서 점심 식사를 하려던 이탈리아 가족을 마주합니다. 분명 식사를 시작하고 있었는데, 다시 마주쳤을 때엔 돌바닥에 레드와인이 흥건히 쏟아져있네요. 비효율적으로 길을 돌지 않았더라면 마주할 수 없는 이야기였을텐데. 나는 오늘도 비효율적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하루를 보내며 고민합니다. 효율적인 사회 생활에 대해서요.
에라 모르겠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극혐하는 아이스아메리카노나 마시며, 나의 비효율적인 이야기나 좀 주절거리다가 효율적인 척 연기하며 사회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근데 그거 아세요? 어디선가 보았는데, 인간은 어떤 결정을 할 때, 설령 그것이 인생의 큰 결정이라 할지라도 놀랍도록 비효율적이래요. 나만 그런거 아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