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다른 선택이었다면 12
살다 보면 누구나 현실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나 또한 그런 순간을 여러 번 겪으며 살아왔다.
그런 의미로 이 브런치북을 시작했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30가지쯤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제목을 정하고, 글의 방향도 미리 정해두었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니,
되돌리고 싶은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대신, “그때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보다
“지금 내가 이런 상태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지금 내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다면 어땠을까?
이건 아내나 아들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가족이 소중하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되짚어보며 떠올리는 상상일 뿐이다.
아내는 가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저보다 오래 살아야 돼요. 저보다 먼저 요단강 건너면 안 돼요.”
“왜? 내가 먼저 가도 연금의 절반은 나오잖아.”
“안 돼요. 아들한테 다 뺏길 것 같아요. 그러니 오래 살아야죠.”
“그럼 당신이 먼저 떠나면 나는 어떻게 해?”
“그럼 새 장가가지 말고 혼자 사세요.”
“왜? 나도 외로워서 새 장가가야지.”
“아뇨. 제가 죽 쒀서 개 주는 꼴은 싫어요.”
우린 이런 대화를 웃으며 하지만, 사실 나름 진지하다.
이런 대화를 하게 된 계기도 있다.
예전에 같은 아파트에 살던 선배의 아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장례를 치른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그 선배가 다른 여자와 함께 사는 모습을 아내가 직접 보았던 것이다.
그 일은 우리 부부에게 오래 남았다.
그 이후로 아내는 종종 “나는 당신 등에 업혀 있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 말속에는 사랑, 의존, 그리고 인생의 아이러니가 함께 담겨 있다.
가끔은 이런 상상도 한다.
‘포기하지 않았던 선택의 결과’ 편에서
만약에 내가 재판에서 패배했다면 어땠을까?
끔찍하지만, 그 상황을 되돌려 보고 싶기도 하다.
1심 재판에서 검찰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 나왔다.
명확한 증거는 없었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추정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즉시 항소했지만, 점점 지쳐갔다.
월급은 절반으로 줄고, 변호사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적금을 깨서 변호사비를 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변호인을 찾으려다 보니 돈은 바닥이 났다.
아내에게 미안해서 그만둘까 했지만,
아내는 오히려 말했다.
“끝까지 가요.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그러나 2심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또다시 항소했지만, 이제는 거의 절망의 끝이었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면 나는 전역해야 했다.
그 순간 관사에서도 나와야 하고,
집도, 돈도, 퇴직금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모든 걸 생각하니 막막했다.
정말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그때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재판부의 올바른 판단이 내 인생을 되돌려 놓았다.
지금의 평온한 일상,
아내와 나누는 소소한 농담,
아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되돌리고 싶은 순간’을 견뎌낸 뒤에 얻은 선물이다.
되돌리고 싶은 순간들도 많았지만, 어쩌면 지금의 내가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나노 바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