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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 몸을 소중히 했었다면

만약에 다른 선택이었다면 13

by 시절청춘

군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생긴 취미가 축구였다.


족구도 많이 했지만, 이상하게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았다.


그에 비해 축구는 온 힘을 다해 공을 차고, 심장이 터질 듯 뛰고 나면 묘하게 속이 시원해졌다.


그러다 체력이 달리면서 자연스레 골키퍼를 맡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골키퍼 장갑이 있던 시절도 아니어서, 맨손으로 공을 막는 일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 꽤 팽팽한 경기에서 상대 공격수가 강하게 찬 공이 내 정면으로 날아왔다.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막았고, 그 순간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크게 꺾였다.


아팠지만 군대라는 환경에서 그걸 티 낼 수는 없었다.


파스 한 장 붙이고 버티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엄지손가락은 관절까지 퉁퉁 부었다.


맨소래담을 사서 바르고 며칠을 버티자 부기도 빠지고 그럭저럭 괜찮아지는 듯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부상이 30년 뒤 내 삶에 이렇게 큰 영향을 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시간이 흘러 손가락 부상은 자연스레 잊혔다.


그러던 어느 날, 농구공을 잡다 다시 손가락이 꺾였다.


그때도 파스만 붙이고 넘겼다.


중간중간 통증이 찾아와도 ‘이 정도쯤이야’ 하며 무심하게 지나쳤다.



그렇게 30년을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자장면을 비비는데 손가락이 아파 젓가락질도 하기 어려운 순간이 왔다.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고 넘겼지만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제야 손가락을 들여다보니 관절이 눈으로도 틀어진 게 보였다.



결국 병원을 찾았고, 의사는 너무 늦게 왔다고 말했다.


인대가 거의 사라져 관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제대로 치료하려면 관절 고정술을 해야 하고, 그러면 장애 판정이 불가피하다는 말까지 들었다.


결국 임시방편으로 인대를 새로 넣는 수술을 받았지만, 지금도 손가락은 완전히 펴지지 않는다.


통증도 계속 찾아와 손글씨를 적는 것도 힘이 든다.


젓가락질은 왼손으로 할 수 있지만, 글씨는 역시 부담스럽다.


게다가 조만간 다시 재수술을 해야만 한다는 부담도 남아 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한결같다.


만약에, 처음 다쳤을 때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면?
지금처럼 관절을 잃을 정도로 되진 않았을 것이다.


정작 지켜야 할 내 몸을 아끼지 않고, 참는 게 미덕이라 착각하며 살아온 결과였다.


발목도 마찬가지이다.


하도 많이 접절리다 보니, 통증조차 느끼지 못한다.


아마도 발목 인대도 손상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게다가, 허리와 무릎 역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조금 더 아끼고 돌보며, 조심했어야 했는데..



우리 세대의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가장 중요한 ‘나의 몸’은 돌보지 않으면서, 이상하게 남에게는 신경을 더 많이 쓰는 버릇.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버티면 괜찮아질 거라 믿는 미련함.



요즘도 아내는 잔소리처럼 한마디 한다.


“아프면 바로바로 병원 좀 가요. 병을 키우는 미련한 짓 그만하고.”


그 말이 예전에는 잔소리로 들렸지만, 지금은 그 말이 가장 큰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몸이 나에게 보내는 작은 신호를 무시하는 순간, ‘만약에..’라는 후회가 평생 따라온다.


[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나노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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