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9
이성에게 끌리는 감정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분명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았던 마음이 어느 순간 툭, 방향을 바꿔버리기도 하니까요.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내가 아닌 다른 이성에게 호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일이 커지거나 선을 넘은 적은 없었어요.
감정은 감정으로만 끝냈기에, 지금까지 평온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겠죠.
어쩌면 제 마음이 약해서인지, 아니면 정이 많아서인지,
유독 마음을 흔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내는 제게 이런 결론을 내려준 적이 있어요.
“당신은 말 재밌게 하는 사람한테 쉽게 넘어가더라고요. 대신 얼굴은 안 보더라고요.”
그래서 종종 ‘말재주 좋은 사람 근처엔 가지 말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경고하곤 하죠.
듣고 보니 일부는 맞는 말이더군요.
하지만 또 일부는 틀립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밝고 재밌는 성격의 이성에게 끌릴 수 있잖아요.
때로는 한순간 ‘팍’ 꽂히는 감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귀여운 행동을 한다든지, 예상치 못한 애교를 부린다든지.
아내에게서 보지 못했던 모습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심장이 한 번쯤 요동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죠.
제가 30대 때, 아내가 제 문자를 보고 오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술을 조금 과하게 마셨던 날이었죠.
집에 들어오자마자 곯아떨어진 저를 보며
아내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 제 휴대폰을 보게 됐다고 하더군요.
“부대에 오피스 와이프라도 있나 봐요?”
“무슨 소리야?”
“문자를 보니까… 왠지 분위기가 좀 심상치 않던데요?”
아내는 동료 여군과 나눴던 메시지를 보며 불편했다고 했습니다.
특히 제가 그 사람에게 ‘당신’이라는 호칭을 쓴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요.
물론 제가 평소에 아무나에게 '당신'이라는 호칭을 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래도 같은 사무실 여군이라 신경이 더 쓰였던 것 같아요.
사실 그 여군에게 호감이 있었던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이성적인 감정이었는지,
단순히 동료로서의 정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제 얘기를 잘 들어주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저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뿐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다 보니 어느 날 둘이 노래방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날은 아마도 그때의 제 마음이 묻어 있는 노래를 골랐던 것 같습니다.
결코 이성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상황에서
살짝 고백처럼 들릴 수도 있는 노래를 말이죠.
어쩌면 저는 그날, 조심스레 마음 한 조각을 내보였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관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좋은 동료로,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가
그녀는 다른 부대로 떠났고, 자연스럽게 멀어졌죠.
물론, 지금도 가끔씩 연락도 하고, 우연히 만나기도 합니다.
서로의 소식과 안부 정도는 계속 묻거나, 듣고 있는 정도의 인연은 되어 있는 것이죠.
그때 불렀던 노래는 신승훈의 ‘어떡하죠’입니다.
드라마 '천국의 나무' OST로 알려진 곡입니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절절하게 담아낸 노래죠.
가사 속엔
다가갈 수도, 고백할 수도 없는 마음이
숨을 죽이고 조심스레 흔들리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입술이 떨려와 눈물이 차올라
울기 싫은데 눈물이 내 말 안 들어
어떡하죠 저 애를 사랑합니다
날 보고 웃네요 이런 날 모르고 있죠
어떡하죠 이런 날 들켜버린다면
저 웃음을 다신 볼 수 없겠죠
사랑하는 내 맘이 눈빛에 섞일까 조심하며 바라봅니다
짝사랑의 절절함,
그리고 들키면 모든 게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마음이 제 상황과 묘하게 닮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이 노래를 당신 앞에서,
당신만을 바라보며 불러준다면..
그 사람은 아마 당신을 좋아하고 있을 겁니다.
조용히, 말하지 않고, 노래로 고백하는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스치는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고, 지켜내는 선택이 결국 사랑을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