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다른 선택이었다면 14
10대 후반의 얼굴에 흉터가 남을 정도로 다친다면 어떨까?
칼자국이라면 성형으로 어느 정도는 가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화상 흉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피부 조직 자체가 손상된 상태이니, 회복도 어렵고 수술도 쉽지 않다.
물론, 내 얼굴에 지금 흉터가 있다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 글이 얼굴에 흉터가 있는 분들을 향한 비하도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을 쓰면서 망설였던 이유도, 같은 상처를 가진 분들께 조심스럽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순간은 내 삶에서 잊기 힘든 경험이었기에,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지금 나이로 17살,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군위탁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있었던 탓에 학교의 취업 지원을 따로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누나의 소개로 동X수산의 하청일을 하는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원양어선의 통신장비를 분해하고, 세척하고, 다시 설치하는 곳이었다.
조업을 한 번 나가면 6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바다에 있다 보니, 장비와 부품들은 먼지와 페인트 등 각종 물질에 오염된 채 뒤덮여 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도자기 재질의 부품을 세척하려고 화장실로 향했다.
세척제는 페인트 제거제로 쓰는 화학물질, 이름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는 ‘리무제’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통의 뚜껑을 열어야 했다.
이미 한 번 사용했던 통이라 뚜껑이 꽉 붙어 있었고, 결국 드라이버로 비틀어 열었다.
그 순간
뚜껑이 튀어 오르며 안쪽에 묻은 약물이 그대로 내 얼굴 한쪽 볼에 닿았다.
“악!”
비명 한 번에 기사님들이 뛰어왔다.
얼굴은 바로 화끈거리고,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찬물로 식혀도 소용이 없었다.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고, 의사는 말했다.
“2도 화상이네요. 얼굴에 화상 흉터가 남을 겁니다.”
그 말은 충격이었지만, 이상하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자 누나는 놀라 어쩔 줄 몰라했다.
며칠이 지나자 얼굴은 붉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얼굴에 상처가 생기고 보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거리에 서 있어도, 버스를 타도, 누군가의 시선이 내 얼굴을 스치는 것 같은 기분.
안 그래도 소심했던 성격이 더 움츠러들었다.
얼굴 절반이 화상자국으로 덮여 갔다.
안경 덕분에 안구를 다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만 했다.
약을 바르며 시간만 보낸 지 보름쯤 지났을까.
어느 아침, 얼굴이 가려워 잠결에 긁은 뒤 거울을 보니, 상처 뒤로 새 살이 보였다.
손으로 살짝 문지르자 말라붙었던 화상 껍질이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했다.
믿기지 않게도, 화상 자국은 완전히 사라졌다.
가끔 생각해 본다.
‘만약에’ 그 화상이 그대로 흉터로 남았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잘 생긴 얼굴도 아니라서 외모에 대한 자신도 없었는데, 그때의 소심함까지 겹쳤다면 군대에서도, 사회에서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성격이 더 거칠어졌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괜한 동정 속에서 스스로를 괴물처럼 여기지는 않았을까.
연애도, 인간관계도 더 멀어졌을지 모른다.
그만큼 그 보름동안은 내게 길고 깊이 남은 시간이었다.
다행히 상처는 사라졌지만, 그때의 감정과 두려움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글은 흉터를 가진 분들을 향한 평가나 시선이 아니다.
그저 그날의 경험이 내게 남긴 감정, 그리고 ‘만약에’라는 상상을 적어본 것뿐이다.
상처는 흔적보다 마음을 바꾸고,
마음은 다시 나를 바꾼다.
[커버 이미지 출처] Carat 생성 (나노 바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