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33, 내 아들의 노래

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10

by 시절청춘

“아빠, 오늘 학교에 가수 ‘아웃사이더’가 공연 왔었는데, 내가 지나가니까 나가서 나도 속사포 랩 했어.”
“그래? 그래서 뭐라고 하시던데?”
“내 머리 쓰다듬으면서, 소질 있다고 하셨어.”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아들이 웃으며 들려주던 말이었다.
그저 귀여운 아이의 과장된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때부터 아들은 막연한 꿈을 품기 시작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유난히 활발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고, 장난기 많던 그 아이를 선생님이 참관수업에 와서 직접 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활달함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그 계기는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해였다.
평소 아프다는 말조차 잘하지 않던 아이가 열에 시달리며 밤새도록 식은땀을 흘렸다.
해열제와 진통제로 겨우 지나간 줄 알았지만, 혹시나 하며 찾아간 병원에서 확진을 받았다. 이미 위험한 시기는 지난 상태라 큰 문제는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학교 지침에 따라 일주일 동안 등교를 중지해야 했다.


증상이 가라앉아도 아들은 집에만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 날, 아이는 예전과는 다른 얼굴로 집에 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만 답했다. 그저 오래 학교를 쉬어서 낯설어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알았다.
학교 방송으로 “몇 학년 몇 반 00 학생이 신종플루이니 접촉하지 말라”는 공지가 전교생에게 흘러나갔다는 사실을.
그 후로 아이는 조용히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고, 그 힘겨운 시간을 홀로 견뎌냈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나는 그걸 알지 못했다.
힘들었던 아들에게 무심하게 잔소리를 하고, 때로는 야단까지 쳤었다.
어쩌면 부모로서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다.


아들은 자라가면서 점점 음악에 빠져들었다.
랩을 흥얼거리고,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등래퍼 예선에도 나갔었다고, 쇼미더머니 예심도 통과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나는 그저 “잠깐 그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며 작업실을 잠깐 빌려주는 게 응원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네 얘기를 가사로 써보면 어떨까?”


아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 아들은 오늘 소개할 곡이 포함된 음원을 완성해서 음악 사이트에 정식으로 등록을 했다.


지역번호를 제목으로 붙인 노래에는
어린 시절의 상처, 외로움, 분노, 그리고 견디며 자라온 시간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어리기만 했었잖아 원래
지금 돌아가면 날 때린 놈 다 팰 수 있네…”
“이제 친구는 못 맺어 난 컸거든…”
“날 감싼 친구 하나 없겠지만… stay lonely…”



가사 한 줄 한 줄이 날카로우면서도 아팠다.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아들의 마음이 음악을 통해 비로소 들려오는 듯했다.


아들은 고향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도, 그때의 기억들도 모두 싫다고 했다.
그 노래 속 가사를 듣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아들이 왜 그렇게 혼자 음악에 매달렸는지를.



오늘도 아들의 노래를 다시 들어본다.
부모로서 너무 늦게 알아버린 마음을 생각하며, 조용히 속으로 말한다.


“미안하다. 더 일찍 네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는데.”


아들의 꿈을 응원한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계를 걱정하고, 안정적인 삶을 바라는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들이 음악으로 버틴 시간은 어쩌면 취미가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만큼은
아버지의 걱정보다
아들의 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서보려 한다.


아이의 상처도, 아이의 꿈도, 부모가 듣지 못한 순간에 시작될 수 있다.
keyword
월, 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