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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순간에 찾아온 음악

노래로 시작하는 이야기 11

by 시절청춘

"선배님. 사건이 법원으로 송치가 되어,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시고 자택에서 재판 준비 하시면 됩니다."


지휘관과 창고를 정리하며 앞으로의 업무 계획을 논의하던 중 걸려온 전화.

그 한 통이 내 일상을 단숨에 뒤흔들어 놓았다.


“저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합니다.”
“네? 갑자기요? 그냥 끝날 수 있었던 것 아니었나요?”
“저도 그럴 줄 알았는데... 검사가 법원으로 사건을 송치했다고 하네요.”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짐 정리하시고... 그래도 조만간 다시 돌아오시겠죠?”
“재판 한 번 받으면 길어도 5개월은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조만간 연락드릴 테니, 식사 한번 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

퇴근 후 아내에게 내일부터 집에서 지내야 한다고 말했더니, 아내는 결과보다 먼저 나를 걱정했다.

혹시라도 마음이 흔들릴까,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얼마 후 이사 이야기가 나왔고, 망설임 끝에 아내의 직장에서는 멀지만 새로운 아파트로 옮기기로 했다.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그렇게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뒤, 나는 아내를 매일 출근시켜 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재판은 좀처럼 시작되지 않았다.

변호인과 연락을 주고받고, 필요한 자료를 준비했지만 제출 후에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초조함과 막막함이 길게 이어지던 어느 날, TV에서 드라마 한 편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OST 한 곡이 내 모든 감정을 파고들었다.


드라마 '기억'의 OST 인 김필 가수의 "다시 산다면".
가사를 음미하며 듣다 보니, 내 처지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 저절로 눈물이 맺혔다.

누군가가 내게 “괜찮다”라고 안아주는 듯한 위로였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만드는 힘이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난 뒤 조용한 집에 홀로 앉아, 그 노래를 반복 재생하던 시간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을 절대로 감추지 않았다.

버티는 일에 지쳐 울고 싶었던 나를 울게 만들어 주었던 노래였다.


"다시 산다면 지금 내 여긴 어딜까
떠나버리면 잊을 수 있을까
흘러 흘러 날 다시 본다면
외로움마저 그리워질까
...
다시 산다면 지금 내 여긴 어딜까
떠나버리면 잊을 수 있을까
아플 텐데 더 그리울 텐데
모두 다 소중 할 텐데
...
다시 산다면 눈물도 말라버릴까
서럽지 못할 지난날 보내고
혹시라도 늦은 게 아니면
매일매일 다시 사랑할 텐데

혹시 늦은 게 아니라면"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그 시절의 흔들리던 마음을 떠올려보면 결국 나를 붙잡아 준 건 사람이고, 음악이었고, 기다림이었다.


쉽게 끝날 것 같았던 법원 판결은 결국 2년 정도가 걸려 끝이 났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는 동안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텼는지는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아내의 작은 한마디.
아침 햇살.
고요한 집에서 흘러나오던 한 곡의 음악.
그 모든 것들이 무너진 나를 다시 세웠다.


돌아보면, 가장 어두웠던 시간도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나에게 조용히 말한다.


“괜찮다. 잘 버텼다. 그리고, 다시 살아가면 된다.”



가장 어둠이 짙던 순간을 건너게 한 힘은 거창한 용기보다, 끝까지 나를 믿으면 곁을 지켜준 사람과 한 곡의 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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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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