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때 집을 샀다면, 삶이 바뀌었을까?

만약에 다른 선택이었다면 15

by 시절청춘

모든 사람에게는 내 집 마련의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지역(서울, 지방, 시골)이나 형태(아파트, 단독주택)의 차이만 있을 뿐,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직장 근처나 대도시에서의 삶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시절, 저에게 집은 고향의 부모님이 계신 곳이었습니다.

결혼 전까지 제가 생활하던 곳은 그저 숙소나 방 한 칸, 즉 잠시 머무는 공간일 뿐, '집'이라는 의미는 없었습니다.


결혼 후, 집의 개념은 비로소 변화했습니다.

저와 아내, 그리고 아이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집'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명확했던 것은, 부모님의 고향집은 언제든 돌아가 편안히 쉴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총각 시절, 군에서 제공하는 독신 숙소에서 생활했기에 집에 대한 걱정이 크지 않았습니다.

비록 2인 1실이라 사생활을 위해 자취를 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주거는 해결되었습니다.


결혼 후에는 군에서 제공하는 **관사(군인 아파트)**에서 생활했습니다. 특히 신축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고, 부대를 옮길 때마다 계속 관사를 제공받았기에, '집을 사야 한다'는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막연히 전역 후 퇴직금과 적금으로 중소도시에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사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거주하던 지역은 아파트 미분양이 많았기에, 청약저축의 중요성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집 구매에 대한 미련이나 의사도 없던 시절, 박근혜 정부 때 '대출을 받아 집을 사라'는 권유가 많았습니다.


마음은 있었지만, 당시 어머니의 병원비로 많은 돈이 지출되고 있어 모아둔 돈이 없었습니다.

아들 친구 아빠가 대출을 받아 허름한 아파트를 샀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저희 부부는 그저 군 관사의 편안함에 안주하며 집 구매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과거 지휘관과 후배 두 명이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집'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과거지휘관: "나 이번에 아파트 분양받았어요."
후배 B: "저도 이번에 42평 아파트를 8억에 분양받았습니다."
과거지휘관: "두 분은 아파트 구매 의사 없나요?"
나와 후배 A: "저희는 돈이 없어서..."
후배 B: "선배님들, 저도 돈 없어요. 다 대출받아서 집을 사는 겁니다. 누가 돈을 가지고 집을 삽니까?"

과거지휘관: "맞아요. 그냥 집을 사 두세요. 이자나 대출금은 충분히 갚을 수 있어요."
나와 후배 A: "아닙니다. 저희는 천천히 생각하겠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이 말을 전했지만, 대출의 무서움을 경험했던 아내는 단호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렇게 당시의 내 집 마련의 꿈은 접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대출금이 절반이지만, 나와 아내 소유의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욕심'이라는 것이 있기에, 만약에 그때 그들의 말을 듣고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곤 합니다.


만약에 그때 집을 샀다면: 아들 친구 아빠가 샀던 아파트 시세는 당시의 3배가 올랐습니다.

제가 만약 용산에 집을 샀다면 엄청난 부를 창출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후배 B처럼 했다면: 후배 B는 실제로 아파트를 팔아 지방 도시의 상가와 오피스텔 등 작은 건물 두 채를 보유한 건물주가 되었습니다.



만약에 나도 그때 아파트를 샀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부는 얻었겠지만, 혹시라도 겉멋이 들어 으스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군 생활을 일찍 그만두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과적으로, '부의 사다리'를 건너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집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할지언정, 저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행복의 사다리'는 잘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이만하면 충분히 감사한 삶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지나간 기회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의 사다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커버 이미지 출처] 나노 바나나 생성

keyword
이전 15화그날의 화상을 잊지 못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