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기회
— 아버지의 숨결이 깃든 수확의 날
글 / 홍주빛
오늘 아침, 식탁에서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비 소식에 난감해하셨다.
남동생은 “어쩔 수 없죠,
콤바인 기사님 판단에 맡기죠.” 하며
담담히 말했지만,
마음 한켠은 조마조마했다.
정오 무렵 비 소식이 있었는데,
오후 한 시쯤 콤바인이 들판에 들어섰다.
이삭을 훑고, 훑고,
거의 끝나갈 무렵—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간의 기회를 타고
수확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살다 보면
장애물 앞에서 망설이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버티다 보면
삶은 때로
순간의 기회를 열어주기도 한다.
그 감동의 순간을,
이 시로 남겨본다.
〈순간의 기회〉
-아버지의 숨결이 깃든 수확의 날
여름비 견뎌내고,
가을 찬서리도 묵묵히 맞은
들판의 벼이삭들이다.
뜨거운 여름날,
피 뽑다 넘어져
엉덩방아 찧기도 하며
조석으로 물고를 살피시던
아버지의 숨결,
아직도 따스하다.
솜털처럼 맑은 날,
수확하던 그 아침—
별안간 비 예보에
성미 급한 아버지는
마당 끝을 서성이신다.
애간장 태우던
비구름은 요리조리 옮겨가고,
빗방울 떨어지기 전,
구름 속 해님이 버텨준 탓일까—
이삭들은 모두 털렸다.
마지막 이삭 훑어 모으자,
참지 못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장단 맞추듯
컹컹컹—
“다 됐어!”
콤바인이 인사하듯
큰 숨을 내쉰다.
순간의 기회를 타고
알곡들을 거두었으니,
이슬비가 장대비로 바뀐다 해도
이제는 걱정 없다.
느긋함이 묻어나는
아버지의 걸음,
벌써 조카 녀석은
햇쌀밥에 고기 한 점 얹고
볼때기 터지게 먹을 모습이 그려진다.
부드럽고 향긋한 햅쌀밥 향기,
솔솔 스쳐가네—
흰쌀밥이,
피어난다.
인생도 수확의 날처럼,
간절함이 순간의 기회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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