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온 지 4달이 지났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소소한 변화들이 있었다.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었고, 나는 아침 운동 대신 저녁 운동을 하게 됐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새 인연도 생겼다. 봄에는 홀로 고립되어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운동을 하거나 술 한 잔 기울이는 일상을 보내곤 한다. 그래서인지 봄에는 ‘나’에게 집중했다면, 지금은 ‘타인’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내 일상과 생각,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은 4달 동안 끊임없이 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든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아니, 믿었다기보다 어쩌면 변화가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내게 변한다는 것은 곧 익숙한 무언가를 잃는 일,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따라오는 일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새 학년이 되어 반이 바뀌는 것이 두려웠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내가, 새 친구들과 친해져야 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는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4학년을 앞두고 1년간 무작정 휴학을 했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입사한 지 5년이 지났을 때, 나는 이직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결국 익숙한 직장을 떠나지 못했다.
학년이 바뀌고, 졸업을 하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변화였기에 나는 강제로 그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변화 앞에서는 매번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익숙함을 택했다. 이직이 그랬고, 이별이 그랬다.
연애를 시작할 때 나는, 상대가 내게 보여준 마음이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을 때에도 나는 그것을 부정하곤 했다. 이미 끝난 관계를 붙들고 되돌리려 노력했다. 결국 상대의 감정의 밑바닥까지 확인한 후에야 이별을 인정하고 체념할 수 있었다. 이미 미움과 상처는 깊어진 후였다. 이혼을 겪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다를 거야. 이 사람은 다를 거야.’ 굳게 믿으며 결혼한 지 불과 1년 후, 나는 또다시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나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했다. 동시에, 내 일상도 생각도 가치관도 모두 달라지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해야 했다.
그제야 나는 그동안 외면했던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모든 것은 변한다. 모든 것은 결국 찰나이다.’
변화를 부정하면 상황은 더 꼬여갔다. 변화가 두려워 피하면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모두가 흘러간 텅 빈 과거에 나만 고여 있는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내 삶을 사랑할 수도, 나를 사랑할 수도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스스로 변화할 용기가 생겼다. 한 번쯤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삶이 흐르는 대로 그 찰나의 순간들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을 겪으며 변화하는 나를 지켜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변화 속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늘과는 또 다를 내일이 두렵고, 제주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맞이할 변화가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내 마음과 시간을 내어주기엔 당장 눈앞에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찰나이지 않나. 벌써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 모기가 날아다니던 자리에 잠자리가 날아다닌다. 그러니 나는 그저 이 여름을 살고, 다가오는 가을을 맞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