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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관계 조절 법

by 푸른 소금

“누군가에게 연락이 없으면 불안하다.”라는

동료의 이 말 한마디는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서로 바쁘게 살다 보면 연락이 뜸 한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왔던 나에게,

그의 불안을 낯설고도 긴 연운을 남겼다.

“아무도 찾지 않으면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매몰 되어,

그는 연락의 공백을 자기 존재의 의심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그에게 누군가의 연락은 타인의 관심을

확인하는 장치였고, 삶의 온도계였다.


그래서 그 불안이 고개를 들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저녁 약속을 제안했다.

늘상 알맹이 없는 가벼운 대화 주제 였지만,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요청한 만남에는 ‘나놔 함께 있어줘’라는

마음의 신호가 담겨 있었다.


관계는 관리의 대상일까?

어느 날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그렇게 관계를 붙잡으려 할까?

모든 사람들과 친밀해야 한다는

막연한 책임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리고 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도 큰 불안으로 다가오는 걸까?


나는 사람들과 깊게 얽히기보다는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조용히 관계를

이어가는 편이다.

그러나 한번 관계를 맺으면, 성실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강한 편이다.

메신저 알림이 뜨면 바로해야 직성이

풀리고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일은 늘 어렵다.


찬찬히 들여다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늘 내 안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인거 같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때때로 나를 지치게 한다.

그 원인은 타인의 정서를 너무

빨리 알아 차리는 것이 문제였다.

상대가 불안을 느끼면 마치 내 책임처럼

느끼며, 관계의 온도를 억지로 유지하려고

애쓰게 되기 때문이다.


관계에는 저마다의 온도가 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모든 관계가 뜨거울 필요는 없다는 것을.

각자에게 맞는 온도가 있고,

연결의 온도 역시 다르다는 것을.

뜨겁거나, 미지근하거나, 차가운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뜨거운 관계는

일주일에 2~3번 이상 연락을 하거나,

만나면 속 깊은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들이다.

고민이나 두려움, 상처까지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사람들.

• 미지근한 관계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적당히 편안한

온도로 유지되는 사람들이다.

안부와 관심사를 나누되,

감정의 중심부까지는 닿지 않는 사이.

• 차가운 관계는

반년에 한번 일 년에 한 번 정도

연락이 닿는 사람들이다.

형식적이고 짧은 인사가 오가는,

그러나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 인연이다.

이 다양한 온도 속에서,


관계는 저마다의 형태로 살아 움직인다.

문제는 우리 모두가 관계는 따뜻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착각할 때 생긴다.

관계의 온도가 식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을 뿐인데

우리는 종종 그 변화를 불안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왜 관계에 집착할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관계에 대한

집착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사람은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마음속 깊은 곳을 흔든다.


어린 시절의 상처나 불안정한 애착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

또한 사회는 ‘인맥 관리’, ‘좋은 사람’이라는

규범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 기대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러운

거리감을 죄책감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외로움이 두려워, 고립이 무서워,

관계라는 방패를 과도하게 들고 있기도 한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집착은

결국 우리를 더 힘들게 한다.

처음에는 애정과 관심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안과 피로,

왜곡된 의존으로 변해 버릴 수 있다.


관계에도 숨 쉴 틈이 필요하다.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기준으로 관계를 바라보는가이다.

내가 불안해서 붙잡는 관계인지.

상대의 감정을 대신 짊어진 관계인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인지.


관계는 관리가 아니라

균형의 예술일지도 모른다.

모든 관계가 뜨거울 필요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각자의 온도가 있고,

그 온도에 따라 적당한 거리에서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고,

마음이 다치지 않으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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