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와 함께 거실 TV 앞에서 안무 동선을 짜며 실랑이를 벌인다.
“잘 봐 내가 두 손을 이렇게 모으고 있으면 오빠가 내손을 살짝 밞고 도는 척하는 거야.”
“ 나 그런 거 못해. 해본 적 없단 말이야.”
거실 바닥에는 이불이 몇 겹으로 쌓아 올려졌고 실랑이 끝에 오빠는 내 작은 손을 밟고 내가 하라는 대로 도는 시늉을 하며 소방차가 하는 공중제비 안무를 따라 했다.
“쾅.”
그렇게 두껍게 이불 보호막을 깔았건만. 하필 이불 밖으로 미끄러져 떨어진 오빠는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고 말았고 천천히 일어나는 오빠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순간 나는 얼음이 되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서있었고 쾅 소리에 놀라 달려오신 엄마는 오빠를 데리고 병원에 가셨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가요톱 10에 나의 첫 번째 아이돌인 소방차 오빠들의 어젯밤 이야기 무대가 있는 날이었다. 요즘 친구들에게 소방차를 아냐고 묻는다면 분명 불을 끄는 불자동차를 말하는 것 아니냐 하겠지만 1987년 그 시절의 나에게는 지금의 BTS가 부럽지 않은 3명의 멋진 오빠들이었다. 소방차는 3인조로 된 남자 그룹이었다. 그 시절에는 국내에서는 많이 생소했던 아크로 바틱(한 멤버가 다른 멤버를 들어 공중으로 던져 턴을 한다던지)이라는 안무와 대중에게 어필하기 쉬운 멜로디에 현실적인 가사( 어젯밤에 난 네가 미워졌어, 어젯밤에 난 네가 싫어졌어..)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그룹이었다. 내 옷장에는 그들이 입고 나왔던 소방차 바지(마치 중세 귀족들이 입고 나올 법한 허벅지 부분이 볼록하고 종아리로 내려오면서 슬림하게 쭉 빠진 형태의 바지)가 두 세 개쯤 있었고 그해 학교 소풍이에서는 통통한 친구 하나를 가운데 세우고 소방차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장기자랑을 했던 조금은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병원에서 돌아온 오빠는 이마에 큰 반창고를 붙이고 나타났고 엄마 말씀으로는 이마를 세 바늘이나 꿰맬 정도로 가벼운 상처는 아니었다고 하셨다. 나 때문에 다쳤다는 죄책감은 오빠의 이마에 있는 큰 반창고가 떨어질 때까지 내 마음속에서 나를 괴롭혔다. 그렇지만 철없던 어린아이는 오빠의 상처가 아물 때쯤 다시는 그런 거 따라 하면 안 된다는 엄마의 당부를 무시한 채 오빠를 붙잡고 소방차 흉내를 내자 조르곤 했다. 그 뒤로도 오빠는 내가 더 이상 어젯밤 이야기를 듣지 않을 때까지 엄마 몰래 나의 소방차 멤버가 되어주었다.
얼마 전 아이돌에 빠진 딸을 흉보며
“도대체 언제쯤 저 아이돌 타령을 그만하겠다는 건지, 공부는 언제 하려고 저러는 거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오빠는 큰소리로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네 오빠들이 몇 명 인지 알아? 너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어. 알지? 그때 말이야. 나 아직도 자세히 보면 이마에 꿰맨 상처 있다.”
오빠는 잘 모르겠지만 크는 내내 나는 오빠 이마의 상처를 늘 관찰했었다.
그건 나 때문에 이마가 찢어지는 상처가 많이 아팠을 텐데 한 번도 내 탓을 하지 않았던 너무 착했던 오빠에 대한 나의 죄책감이 그 상처가 다 지워져야 사라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분명 소방차를 좋아했던 것이 맞다. 그러나 어젯밤 이야기를 들으면 소방차라는 가수의 얼굴 보다 거실로 이불을 끌어와할 줄도 모르는 안무동작을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 해 주었던 어린 오빠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다정했던 오빠는 이제 하얀 머리의 아저씨가 되었고 우린 더 이상 소방차가 될 수 없지만 오빠와 나만 아는 어젯밤 이야기는 내 기억 속에서 항상 1번 플레이 리스트로 재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