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나나 거기서 거기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순간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우리 집 강아지, 빼꼼이 미친 듯이 징징댔다. 꼬리를 흔들며 "어디 갔었어! 왜 이제 와!"하고 항의하더니 이내 간식통 앞으로 달려가 "이제 사과해. 간식으로."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웃긴 건, 내가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 녀석은 남편 옆에서 세상 얌전하게 누워 있었다는 거다. 남편 말로는“코 골며 자고 있었는데, 문 소리 나자마자 번개처럼 일어나더라." 했다.
나만 보면 징징대고, 나 없을 땐 천사처럼 얌전하다니.
도대체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걸까. 혹시 개도 사람 구분을 해서, '감정 노동'을 누구한테 풀지 아는 걸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개가 주인을 '안전한 기지(base)'로 인식하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의 한 예라고 한다. 강한 애착을 형성한 주인에게 개는 가장 솔직해진다. 마치 아이가 엄마 앞에서만 진짜 울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게다가 이 녀석, 세상에서 제일 깔끔한 재지보살이다. 물그릇에 먼지 하나라도 떠 있으면 절대 코를 대지 않는다. 깨끗한 물을 새로 따라줘야만 고개를 끄덕이며 마신다. 산책 중 흙이 발에 묻으면 발끝으로만 걷고,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오늘은 여기까지"라며 돌아선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런 까다로운 면모도 오직 나한테만 보인다는 거다.
남편 앞에서는 아무 물이나 잘 마시고, 딸이 데리고 나가면흙길도 신나게 뛴다.
유독 나만 보면 예민해지고, 나한테만 징징댄다.
처음엔 속으로 투덜거렸다.
"야, 좀 덜 예민하면 안 되겠니? 너 때문에 내가 피곤하잖아."
그런데 문득, 거울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빼꼼이 나를 닮았구나.
나도 컵에 먼지 하나만 보여도 물을 다시 따르고, 옷에 머리카락 한 올만 붙어도 lint roller, 일명 찍찍이로 전쟁을 치르는 사람이다. 빼꼼은 내 생활 습관의 작은 그림자 같았다. 내가 정리한 공간, 내가 고른 향, 내가 만든 질서 속에서 나를 닮은 개가 똑같이 숨 쉬고 있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개와 주인이 닮았다고 할까?'
찾아보니, 그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투사(psychological projection)라고 부른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닮은 존재를 선택해 그 안에서 자신을 확인받는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개를 입양할 때 자신과 닮은 얼굴형이나 표정, 기질의 개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이 현상은 단순 노출 효과(mere exposure effect)로도 설명된다. 사람이 반복해서 본 것에 친밀감을 느낀다고 했다. 매일 거울에서 보던 얼굴. 그러니 나를 닮은 개를 보면,마음이 먼저 알아본다.
심지어 외모만이 아니다. 성격도 닮는다. 15개 이상의 연구를 검토한 결과, 개와 주인은 외향성·정서 안정성·신경질적 특성 등에서도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이는 '감정적 미러링(emotional mirroring)' 때문이다. 주인이 불안하면 개도 긴장하고, 주인이 평온하면 개도 차분해진다. 개는 결국, 주인의 마음결을 복사하는 존재다.
결국 나는 나를 닮은 개를 선택했고, 그 개는 나를 거울삼아 자라났다. 결과적으로 —
나는 내 복제판을 키우며 매일 피곤해하고 있는 셈이다.
물그릇에 먼지 떠 있다고 징징대는 걸 보면 '그래, 날 닮았네. 날 닮아서 너도 피곤하겠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깨닫는다. '그럼 나도 남들한테 피곤하겠구나.'
이게 바로 심리적 투사의 역설이다. 나를 닮은 존재를 통해,나는 내 단면을 다시 본다.
하지만 그 피곤함 속엔 이상한 평화가 있다. 닮았다는 건 귀찮을 만큼 가까운 사이란 뜻이니까. 결국, 그 피곤함조차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리된다.
빼꼼이 징징댈 때마다 나는 웃는다. 그건 귀찮음이 아니라,
나를 닮은 사랑의 소리니까.
결국 나를 키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