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테이블 위의 작은 여행

흔적과 시간의 조각들

by Susie 방글이




딸이 연휴를 보내고 돌아가는 날, 날씨가 먼저 변덕을 부렸다. 딸이 사는 곳에 오후부터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였다. 마치 하늘이 "오늘은 조금 서둘러 귀가하세요"라고 슬쩍 알려준 것처럼.


부랴부랴 저녁 비행기를 오후 비행기로 바꿨다. 딸은 여행자라기보다는 계절의 손짓에 따라 살짝 방향을 트는 작은 새 같았다.


갑자기 일정이 앞당겨지자 집안은 잠시 출발 전의 소란으로 가득 찼고, 남편도 급히 딸을 공항에 데려다주느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커피를 반쯤 마신 채 그대로 두고 나갔다. 컵 속 커피는 남편이 급히 떠난 모습처럼, 따뜻함이 채 식기도 전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딸이 떠난 뒤 집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고요함은 공허함이라기보다는 여운에 가까웠다.

욕조 한쪽에는 딸이 미처 챙기지 못한 샴푸와 클렌저가 남아 있고, 방 한편에는 수면 바지와 양말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느긋하게 흩어져 있다.


냉장고 안에는 반쯤 마신 딸의 음료수가 여전히 톡톡한 기운을 유지하며 놓여 있다. 마치 "나 금방 또 올게"라는 작은 메시지를 거품 안에 숨겨둔 것처럼.


청소를 하다 보니 딸이 집중할 때 무심코 꼬아 만든 머리카락 매듭도 군데군데 발견됐다.

나는 그걸 볼 때마다 피식 웃게 된다.

딸이 일부러 숨은 그림을 몇 개씩 흘려두고 간 것 같아서.

청소는 분명 내가 하는 일인데… 발견할 때마다 마치 딸이

"심심할까 봐 보물 몇 개 두고 갔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집에 도착해 문자를 보낸 딸은 예상대로였다.


"나 또 뭐 놓고 왔어. 욕조에 샴푸랑 클렌저, 방에도 몇 가지… 그거 다음에 올 때 갔다 줘."


나는 욕조와 방, 냉장고, 그리고 숨은 매듭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집은 조용해졌지만, 딸의 체온은 여러 자리에서 아직도 살아 있다.


한 식탁에 앉아 각자의 일을 한다. 남편의 손은 나무를 다듬고, 딸의 손은 판화를 찍고, 나는 단어를 고른다. 세 세계가 나란히 놓이는 순간.


한편 남편은 공항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시 공방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급히 차를 몰던 사람이라곤 믿기 어려울 만큼,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작업대 앞에 앉아

만들어 둔 책갈피들을 하나씩 손에 올려 디테일을 살폈다.

가장자리가 매끄러운지, 문양이 잘 살아 있는지 끝부분을 마지막으로 다듬으며 조용히 숨을 골랐다.


반쯤 남긴 커피를 두고 뛰어나가던 그 바쁜 모습과,

돌아와 책갈피 위의 미세한 가루를 털어내며 마무리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욕조의 샴푸와 클렌저는 딸의 밝음을,

방에 놓인 수면 바지는 그녀의 편안함을,

냉장고의 음료수는 잠시 머무르다 간 시간을,

숨은 머리카락 매듭은 딸 특유의 집중과 장난기를,

그리고 공방의 공구들은 남편의 꾸준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 작은 풍경들이 집 안을 은근하게 채워준다.

마치 서로 다른 색의 조각들이 맞물려 하나의 풍경화가 되는 것처럼.


머물렀던 흔적을 바라보며 오늘도 집 안에서 작은 여행을 한 기분이다.


딸이 폭설을 피해 먼저 떠난 오늘,

조용한 집을 둘러보다가 나는 또 한 번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오늘도 우리 셋의 세계였네."


돼지 모양으로 나무에 조각한 우리 가족과 함께, 오늘도 집 안은 우리만의 작은 여행이었다—빼꼼이도 당연히 빠지면 안돼지! ㅎㅎ


결국 오늘도, 우리 셋은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여행을 하고 있었던 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늘의 도착지: 우리 집 거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