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를 보냈다.
그리고 3일 뒤, 전무가 사라졌다.
뉴스엔 익숙한 이름이 떴다.
‘○○보험 전무, 횡령 및 실적 조작 혐의로 조사 중.’
모니터 속 그의 얼굴은
늘 보던 사무실 조명보다 훨씬 차가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사라진 자리엔
붉은 인주 자국이 찍힌 계약서들이 남아 있었다.
내 이름으로 제출된 실적 보고서.
하지만 그 숫자의 절반은 내가 쓴 게 아니었다.
그는 내 계정을 이용해
VIP 고객 매출을 자기 명의로 돌려놨다.
보고서가 올라가던 날,
나는 “좋은 일 하나 해줬다”는 말만 들었다.
그게 이런 뜻일 줄 몰랐다.
감사팀이 들어왔을 때,
모든 서류의 마지막 줄엔 내 서명이 있었다.
“책임자: 김나나.”
손끝이 얼었다.
한 줄의 서명이 인생을 뒤흔들 줄,
그땐 몰랐다.
그날 밤, 나는 사무실에 남았다.
책상 위엔 커피 대신 진술서가 있었다.
“이건 네 책임이 아니야. 말하면 돼.”
인사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하지만,
말하는 순간 나도 함께 무너질 것 같았다.
그의 죄와 내 침묵이 같은 무게로 느껴졌다.
며칠 뒤,
전무의 이름은 뉴스에서 사라졌다.
그 대신 내 자리도 함께 사라졌다.
“인사조정 대상자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모든 게 조용했다.
복도엔 아무도 없고,
내 책상엔 한 장의 메모가 남아 있었다.
“그래도 고맙다, 나나야.”
그의 필체였다.
그날 이후, 나는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 아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걸 보면 생각한다.
추락은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 추락이 진실을 향한 유일한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