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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높이에서 배운 교육의 진실

by 친절한기훈씨

요즘 아이들의 영어 교육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는 6세, 7세부터 영어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칠 때쯤에야 영어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공부는 잘못해도 된다', '상황에 맞게 하면 된다'는 여유로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은 이미 알파벳과 발음기호를 완벽히 익히고 들어왔던 것이다. 파닉스 기초를 떼는 학원이었지만, 1대 3 수업 방식에서 아이들의 수준 차이는 명확했다.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중간 정도 수준에 맞춰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 아이는 뒤처지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알파벳을 외우는 숙제를 하는 아이를 보면서,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를 못해도 된다는 건 맞았지만, 주변 친구들과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아이가 수업 중에 주눅 들고 자신감을 잃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를 지켜보는 것이 마음 아팠다.


처음에는 학원 선생님을 원망했다. 그 다음에는 수업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차분히 돌아보니, 나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영어를 전혀 가르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과거 내가 익숙한 방식만을 고집했던 것이다. 그 방식이 아이에게는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는 따라오기 힘들어했던 것이다.


나는 단순하게 영어를 여러 번 쓰고 외우는 방식만 반복해서 시켰다. 당연히 아이는 흥미를 잃었고, 영어는 점점 더 멀게만 느껴졌다. 나름대로 강남과 종로에서 토익, 편입, 회화 학원을 다니며 쌓은 경험이 있었기에 '이게 틀릴 리 없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아이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변화는 아이의 시선에서 시작되었다. 숙제를 완료하는 데만 집중하기보다는, 최근에 배웠던 내용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아이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거 선생님이 어떻게 가르쳐주셔?" "이 부분은 어떻게 알고 있어?" 아이의 눈높이에서 하나씩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쉬운 영어였지만, 나는 수험생 시절 20대에 공부를 시작해서 기초를 다져가는 영어 학습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부했었다. 일명 '빡공'을 아이에게 강요하니, 아이는 당연히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교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BR, SH, TH와 같은 어근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외우고 있었다. 나는 'BRANCH - 가지', 'SHOP - 가게', 'TEETH - 이' 이런 식으로 단순히 외우게만 시켰다. 아이에게 영어가 점점 더 지루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그래서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꿔보았다. 알파벳을 하나씩 쪼개서 함께 읽어보고, 단어카드와 그림을 보면서 함께 학습해 나갔다. 중간중간 아이가 아는 부분들은 충분히 칭찬해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자신감을 가지고 영어를 더 읽어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도 나는 지금까지 겪어온 관성대로만 하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내가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방식이 아이에게는 오히려 공부와의 거리감만 더 크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이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다. 아이만의 고유한 학습 방식과 속도가 있고, 그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뒤늦게 깨달았다. 부모의 경험과 지식이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입장에서,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 아이는 영어를 조금씩 재미있어하기 시작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영어책을 펼쳐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늦게 시작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에게 맞지 않는 방식을 고집했던 것이 진짜 문제였다.


교육은 결국 아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부모의 욕심이나 경험보다는 아이의 현재 상태와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아이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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