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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안센할아버지의 관을 다듬으며.희망을 선택할 용기

지도에 없는 섬, X아일랜드 연재 중

by 여온빛




"마크 할아버지. 저는 안센할아버지 얘기를 들으니, 사실 제 얘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마음이라는 것도요. 사실 희망을 품고 안 품고 상관없이 현실은 변하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요. 희망이 없으면 그 현실은 지옥이 되고, 희망이 있으면 천국으로 변하거든요.


제 현실이 지금 변하지 않은 채 저는 이 섬에 있지만, 이왕이면 천국으로 살고 싶어요. 아니면 견디기가 너무 힘들거든요.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희망을 잡으면 살았지만 죽은 채 살아가는 사람에게 생기의 바람이 불어오고, 그걸 놓아버리면 죽는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요.


전 안센할아버지가 얼마 전 저 같아서 마음이 아프지만, 그분을 제 가슴속에 기억하고 싶어요. 제 가슴에는 희망이 있거든요. 안 센 할아버지를 제 가슴에 품으면 그 희망 안에서 천국처럼 편하게 계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데이빗.. 그 말을 들으니 안센이 네 마음속에서 마지막 희망의 세상에 있겠구나. 그가 이곳의 삶과 다른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래 데이빗, 감사한 생각이다."


사람들은 종종 나쁜 일을 오래 기억한다. 상처는 오래 남고, 서운함은 날카롭고, 실패는 유난히 또렷하다.
반면, 좋았던 순간들은 바람처럼 흩어지고, 따뜻한 말은 금방 희미해지며, 사랑받았던 기억은 금세 잊힌다.
기억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우리가 어떤 기억을 품느냐에 따라 내일을 향한 발걸음의 무게가 달라진다.
그래서일까 안센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사람들은 더 많이 기억할 수 있겠지만, 그 모습으로 그분을 기억한다면 내가 걸어갈 내일의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내게 머물 때, 갑자기 이곳에 처음에 왔을 때 가졌던 우울함이 문을 박차고 나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문을 다시는 우울함에게 절대 열어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정말 순간이었지만, 내 안에 두 가지 다른 힘이 겨루기를 하는 것 같다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데이빗”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 들어봤니?”


“네, 들어본 것 같아요”


세상 탓이라고 생각하면 인간은 절대 인간이 만들어낸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단다. 이 정부가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니? 그렇지 않단다.


어떤 것도 이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단다. 하지만, 이 정부가 없어지기 전까지 내겐 희망이 없다 생각하면 얼마나 불행하겠니. 내 인생은 내 것이란다. 내가 주인이란다. 정부의 것도 그 누구의 것도 아니지.


정부가 변할 것 같지 않다면 내가 변해야지. 희망을 가지고 살지, 버리고 살지 선택하는 것도 내 몫이란다. 원망하고 분노하고 투덜대서 현실이 바뀐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야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 인생을 어찌해야 할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조건들을 내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내야 한단다. 그때가 용기를 가져야 할 때란다.


지금 내가 고통 가운데 있지만, 이 삶 가운데도 분명 의미가 있을 거다. 난 희망을 끝까지 가지고 갈 용기 말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올 때 내 부모, 내 나라를 선택하고 태어날 수는 없단다. 이런 선택권이 없다는 건 모두에게 공평한 일이지.


하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면 어쩌겠냐. 그것이 우리의 숙명적인 부분이란다. 바꿀 수 없는 건 수용해야 한다. 그게 지혜고 용기지."


“그러면 그 숙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용기가 없어서 인가요?” 데이빗이 물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중해서 나를 조정하려는 악한 운명에게 내 인생을 장악하게 내어 준다면 말이다.

나의 삶이 의미 있고 소중한 것은 그 누구의 것이 아니고 바로 내 것이기 때문이지.

내 삶을 지켜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단다.”


“그러고 보니, 저도 그 싸움을 한 것 같아요.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 저는 제 삶을 내가 원치 않는 악한 운명에게 니 맘대로 파멸시켜라 하고 내줬었거든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이미 일어나서 바꿀 수 없는 것에 너무 집중했었어요. 이게 그들이 파놓는 함정 같은 걸까요?”


“그렇겠구나. 우리는 그 함정에 갇히면 안 된단다. 어느 운명에 먹이를 주는지는 우리의 몫이란다. 어떤 경우든 좋은 운명에 물을 주고 가꾸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 낫지 않겠니?


“맞아요 할아버지, 난 할아버지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참 좋은 날이지요?”


조금 전에 문을 다시 열려던 어둠의 세력이 감히 문을 열지 못하도록 내가 나를 지켜냈음을 직감했다.


“허허허, 데이빗, 네 말이 맞구나. 허허허."


할아버지와 죽은 안센할아버지의 관을 만들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희망의 방향으로 계속에서 운전해 나갔다. 이 세상은 이 안센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나 별반 다르지 않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땅에 영원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특히 인간이 만든 것 중에 말이다.


안센할아버지 덕에 난 이 세상에 어찌 되더라도 내 삶은 나의 것이니 절대 세상에 내어주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런 의미로 안센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 가는 길에 내 가슴에 좋은 씨앗 하나를 심어주고 간 셈이다.


그래서 난 안센할아버지의 삶은 좋은 의미가 있었다고 말해드리고 싶다.


'제 가슴 속 안센할아버지 들리시나요..'





11화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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