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서 처참하게 깨지고
눈물이 마르지 않은 채 온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감사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님이 아니라,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침묵은
주저앉은 날 일으켰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가장 온전한 위로가 되다니요.
말이 사라지니
침묵이 음악이 되었고
가득 찼던 생각이 사라지니
새로운 길이 보였습니다.
빈 종이가 있어야
첫 글자가 태어나고
비어 있는 하늘이 있어야
별이 반짝일 수 있듯,
아무것도 없음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모든 시작이라!
캔버스는 하얗게 비어있기에
예술이 시작될 수 있고,
악보는 비어 있기에
멜로디가 살아나,
세기를 건너 마음들을 적십니다.
아무것도 아님은 결국
눈을 적시고
가슴을 뛰게 하고
또 다시 살아가게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것은
생명의 시작이요,
이어지는 역사요,
영원을 머금은 그릇입니다.
그러니, 그대여,
아무것도 아니여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대여,
아무것도 아니여서 감사합니다.
그 아무것도 아닌 하얀 빈자리 덕에
첫 획이 살아나고,
한 운율이 살아나고,
별과 달은 더 선명하게 빛나지 않던가요.
그대가 텅비었다고 느끼는 그 자리가
모든 시작이 자라나는 생명의 땅이라,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하는 그대가
온
전
합
니
다
.
때로 모든 것이 사라진 듯한 공허를 마주합니다.
텅 빈 방, 끝없이 이어진 하늘, 손에 닿는 것조차 없는 순간.
세상에서 설 곳이 없는 것 같은 공허함.
그럴 때면 내 존재마저 흔들리는 듯 느껴지고,
내가 왜 여기 있는지조차 의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공허 속에서, 이상하게도 작은 생명이 느껴집니다.
바람이 스쳐 가는 소리, 심장이 뛰는 소리, 숨이 들락날락하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내 안에 살아 있음을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