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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게 패인 배 한 척의 항해일지

깊은 인생을 배우다

by 여온빛

평온한 날에도,

바람이 없는 날에도,

예고 없이 급습한 폭풍우 속에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배 한 척의 항해


엄마의 품 같던 항구를 떠났던 날,

두려움과 설렘을 품고 떠났던 배 한 척은

하늘의 온갖 변덕에,

대양의 온갖 시험에,


흔들리고 삐걱대고,

상처 나고 깊이 패여도,

견뎌내고,

바다 위를 계속 항해합니다


당황스러워도,

아파서 침몰할 것 같아도,

거친파도가 더 거칠게 몰려와도,

항해는 계속됩니다


빛바랜 돛,

삐걱이는 갑판,

녹슬어 시큼시큼한 몸이

견뎌낸 항해를 기억하며 말합니다


홀로 모진 비바람 뜨거운 태양빛을 맞은

빈자리 마른자리들

그 항해길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한때 찬란한 하얀빛을 뽐내며 하늘을 향해 우뚝 펼쳐졌던 돛은

이젠 볼품도 없이 찢겨지고 빛바래 이전의 영광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날 홀로 찢겨진 마음을 눈물로 훔쳤을까요


그래도 항해는 계속 됩니다

하늘을 향해 원망도 하고

하늘에게 방향도 묻고

하늘에게 견딜 힘을 기도하면서


말로 감히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무게만큼

깊이 내려앉은 세월의 흔적은

그렇게 우리 엄마의 깊이 패인 주름 속에

깊이 내려앉았나 봅니다


그 주름들은 한 인간의 삶의 항해일지지요

그 항해일지는 다음 세대에게 말합니다

파도를 만나보지 못한 배는 없단다

폭풍을 만나지 않은 인생은 없단다


다음 배는 그래서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엄마의 깊이 패인 주름을 본 자식은

더 깊이 있는 인생의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깊이 패인 주름이 밝은 등불이 되어 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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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