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7화

뜻밖의 오더? 그러나 뭔가 수상하다

by 이설아빠

창밖은 완연한 봄날이었지만, 도현의 마음엔 꽃잎 하나 날리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온라인 B2B 플랫폼 관리자 페이지를 띄워놓고 한동안 멍하니 화면만 바라봤다. 메일함엔 새로운 소식이 없었다. 일주일 전 리뉴얼된 제품을 업로드한 이후, 뷰는 몇 백 회가 넘어갔지만, 클릭은 고작 몇 건, 문의는 단 한 줄도 없었다. 도현은 마우스를 천천히 움직이며 자동 새로고침을 눌렀다.

“이번에도 없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는 문득 속으로 되뇌었다.

‘언제쯤 해외에서 첫 오더가 들어올까… 진짜 누군가 사긴 할까?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걸까…’

막연한 불안감이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광고비는 이미 예상보다 초과됐고, 직원들의 기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그는 느끼고 있었다.

“대표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오더가 들어왔어요!”

막내 효진의 외침이 정적을 갈랐다. 도현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빠르게 내려놓고 일어났다.

“뭐라고요?”

“여기요. 예전에 대표님께서 온라인 플랫폼에 올린 남성용 데오드란트 상품에 대해, 어떤 바이어가 직접 메일을 보내왔어요.”

효진은 노트북 화면을 돌려 보였다. 화면에는 간단한 영어 메시지와 함께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We are very impressed by your design and product concept. We want to place a trial order of 5,000 units immediately. If the initial order meets our expectations, we would consider placing a second order.”

(귀사의 디자인과 제품 콘셉트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선 시험 주문으로 5,000개를 즉시 발주하고자 합니다. 초기 주문이 당사의 기대에 부합할 경우, 두 번째 주문도 고려할 예정입니다.)

도현은 눈을 의심했다. 한두 개도 아니고 5,000개라니. 그동안 하루에 몇 십 개도 겨우 팔던 자신들에게는 천문학적인 수량이었다. 이메일 아래에는 영국 런던에 위치한 ‘Global E-Health Group’이라는 회사명이 적혀 있었다.

"효진 씨, 이거 진짜 맞아요? 이 거래만 성사되면 지금까지 집행한 광고비 대부분 회수 가능하겠는데?"

"확인했어요. 회사명도 있고, 웹사이트도 있고요. 디자인도 깔끔해요."

도현은 반사적으로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옆자리의 유리는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쳤고, 효진은 “대박!”을 계속해서 외쳤다. 직원들의 표정에선 오랜 시간 누적된 피로가 단숨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그러나 기석은 달랐다. 그는 묵묵히 자리에 앉아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바이어 이름이 뭐라고 했습니까?”

“조셉 리차드요.”

“조셉... 리차드…”

기석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리고 노트북을 펼쳐 키보드를 열심히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일단 바로 계약 진행하지 마세요. 이 바이어, 조금 이상합니다.”

“네?”

유리와 효진은 동시에 기석을 쳐다봤다. 그리고 도현이 물었다.

“왜요? 뭔가 이상한 거라도 보이세요?”

기석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글로벌 기업인데, 도메인이 Gmail입니다. 회사 공식 홈페이지의 이메일 도메인이 아닙니다. 그것이 첫 번째 이상한 점.”

“아… 그러네요.”

기석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제가 진행했던 회사도…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기석은 조용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중국 광저우 바이어가 있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연락해 와서는, 제품 콘셉트가 좋다, 가격이 너무 괜찮다, 바로 1,000개부터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대표는 무척 기뻐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화상 미팅도 없이 그냥 샘플도 생략하고, 물건을 먼저 보냈습니다.”

효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근데…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연락이 두절되었고, 물류사에 확인했을 때에는 양하가 잘 끝났다고 했지만, 상대는 받지 않았다고 우겼습니다. 계약서도 없었고, 선결제 조건도 아니었으니 법적으로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1,000개 분량의 엄청난 물량이 하루아침에 공중으로 날아갔고, 그 회사는 이후 6개월간 정상 영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기석은 말을 이었다.

“이런 일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납니다. 그리고 가장 흔한 시나리오는… ‘기회를 가장한 위기’입니다. 지금 그 바이어의 이메일은, 딱 그 전형적인 패턴으로 보입니다.”

기석은 말을 멈추고, 마우스를 클릭하며 화면을 넘겼다.

“그리고 이거 보시기 바랍니다. 웹사이트 디자인은 근사한데, 법인 등록번호가 없습니다. 주소는 구글맵에 검색되지만 실제 기업 표식이 없습니다. 전화번호도 자동응답기뿐입니다.”

기석은 마우스를 클릭하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000개? 시제품 테스트도 없이? 보통 테스트용 샘플을 먼저 요청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바이어가 갑자기 대량 주문을 요청하는 건 전형적인 사기 패턴 중 하나입니다. 먼저 물건을 받고, 나중에 연락 두절.”

그 말에 분위기는 차갑게 식었다. 효진은 표정이 굳어졌고, 유리도 조심스럽게 노트북을 닫았다. 도현은 여전히 망설였다.

“혹시... 진짜일 수도 있잖아요? 온라인에서 리뷰와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판단하는 시대잖아요. 설마, 정말 사기일까요? 메일에도 제품에 대해 자세히 적어놨어요.”

기석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직접 얼굴도 안 본 상태에서의 계약은 너무 위험합니다. 화상 미팅이라도 요청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도현은 그 자리에서 이메일을 보냈다.

“Dear Mr. Richard, We would like to have a short video meeting with you to discuss the order details and confirm the partnership. Please let us know available time.”

(리처드 님께, 주문 세부 사항을 논의하고 파트너십을 확정하기 위해 짧은 화상 미팅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가능하신 시간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일을 보내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I am currently on a business trip, and the Wi-Fi connection is unstable. A video meeting is difficult at the moment. If you could send the products first, we will send the contract documents by next week.”

(현재 출장 중이라 Wi-Fi 연결이 불안정하여 화상 미팅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가능하시다면 제품을 먼저 보내주시면, 계약 서류는 다음 주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도현은 답장을 읽으며 망설였다.

'출장 중이라니… 일단 제품이 급한 건가?'

효진이 옆에서 속삭였다.

“그래도 진짜로 급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품을 먼저 받아보고 싶어 하는 건 바이어 입장에선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기석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출장이든, 와이파이든, 이유야 많죠. 하지만 그 어떤 이유도, ‘대면 없는 계약’이라는 위험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기석의 도움으로 도현은 다시 메일을 보냈다.

“In that case, please share your business registration number and company tax ID. We need this for customs declaration.”

(그런 경우에는 사업자 등록번호와 회사 세금 식별번호(Tax ID)를 공유해 주세요. 통관 신고를 위해 필요합니다.)

이번엔 하루가 지나서야 답장이 도착했다.

Our office is currently under maintenance, and the IT system is temporarily offline. It will be restored within a few days, so please send the goods first in the meantime."

(현재 저희 사무실은 유지보수 중이며, IT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입니다. 며칠 내로 복구될 예정이니 그동안 우선 제품을 먼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사무실이 정비 중이라 전산 시스템이 오프라인이니, 우선 물건만 먼저 보내주라고 하네요."

도현이 이메일을 읽었다. 기석은 침착하게 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핑계만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이런 식으로 불확실한 조건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요청 사항은 늘고, 확인은 안 되고, 절차는 생략하자는 식입니다.”

도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 정말 사기일까요…?”

기석은 단호하게 말했다.

“99%입니다. 이렇게 말이 바뀌고, 증빙이 없는 상황은 전형적인 사기 수법입니다."

사무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도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진짜일 수도 있다는 기대를 했는데… 설마 이렇게 치명적일 줄은…’

기석은 노트북을 열고 무표정하게,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바이어 신용조사를 통해서 확인해 봅시다.”

그는 즉시 바이어 이름, 이메일, 회사명, 웹사이트 주소, 기업 위치를 취합해 국제 신용조회 서비스에 등록했다.


기석은 곧장 바이어 신용조사 전문기관에 의뢰를 넣었다. 3일 후, 결과가 도착했다.

[조사결과 요약]

- Global E-Health Group: 실존 기업 아님

- 등록된 법인 정보 없음

- 대표자 이름 ‘Joseph Richard’ 관련 사기 이력 2건 확인됨

- 유사 피해사례 3건 이상 보고됨


도현은 그 결과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리와 효진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수가… 만약에 우리가 무턱대고 보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기석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계약 전에 바이어에 대해 반드시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합니다. 거래 전에 신용조사, 샘플 거래, 서면 계약, 결제 조건 등 모두 다 따져야 합니다.”

도현은 깊은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다행이에요… 한 선생님이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그날 저녁, 도현은 홀로 사무실에 남았다. 창밖으로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혼잣말로 속삭였다.

“무역은... 진짜 전쟁이구나…”

그 말은 독백처럼 흘러나왔지만, 도현의 마음속에는 그 어떤 외침보다 크게 울려 퍼졌다. 창밖으로 저물어가는 노을이 사무실 천장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책상으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메일함을 다시 열었다.

‘Global E-Health Group’

도현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 이름이 이제는 경고음처럼 느껴졌다. 실수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간발의 차이였다는 사실이 아찔하게 떠올랐다.

'앞으론 어떤 조건이 와도, 반드시 확인하고, 준비하고,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신중하고 또 신중하자.'

도현은 모니터 너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동안 자신은 감정으로만 움직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대, 흥분, 불안, 한 줄의 이메일에 희망을 걸었고, 상대의 호의에 쉽게 마음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깨닫고 있었다.

‘무역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전에 중요한 것은 철저한 준비다.’

단순한 제품 하나를 파는 일이 아니라, 신뢰를 사고파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 신뢰는 운이 아니라 원칙과 절차로 쌓여야 한다는 걸. 그는 처음으로 ‘무역의 기본 원칙’을 머릿속에 또렷이 새기기 시작했다.


샘플 없는 대량 주문은 없다.

바이어 법인 등록과 이메일 도메인 확인은 기본.

바이어 신용조사와 사전 계약서 없이는 절대 출고 금지.

오프라인 미팅은 필수. 화상 미팅도 거부한다면, 그건 거래가 아니다.


그는 노트북의 메모장을 열고, 이 네 가지 항목을 또박또박 적었다. 그리고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무역을 위한 기본 규칙]

잠시 뒤, 도현은 몸을 일으켜 사무실 불을 껐다. 어두운 실내에 스마트폰 화면만이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는 화면을 바라보며 다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음번엔, 더 신중해져야만 해.”

그날 밤, 도현은 처음으로 진짜 ‘무역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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