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 발굴은 어떻게?
"대표님, 이젠 저희도 전시회에 참여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기석의 말은 단호했다. 도현은 잠시 멍한 얼굴로 기석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당장요? 전시회요...? 저희도 나갈 수 있을까요?"
"시장이라는 건 직접 발로 뛰면서 봐야 감이 옵니다. 바이어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제품에 대한 정확한 시장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바이어의 눈은 정확합니다. 그들은 절대 감으로 거래하지 않습니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면,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돌아섭니다. 그게 바로 시장의 냉정한 원칙입니다."
이후 회의실에는 도현, 기석, 유리, 효진이 한 자리에 모였다. 기석은 노트를 꺼내며 천천히 설명했다.
"일단 국내에서 열리는 코스메틱 전문 국제 전시회부터 참가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개최하는 전시회이지만, 국제 전시회는 해외 바이어들도 많이 참여합니다. 특히, 유럽계 바이어들이 한국 제품을 보러 많이 들어옵니다."
효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기석에게 물었다.
"전시회... 저는 그냥 구경만 몇 번 가봤는데, 참가 준비는 처음이라 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기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칠판에 준비 사항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1. 외국어 카탈로그 (영문은 필수, 현지어는 가능하다면 추가)
2. 외국어 홈페이지 (모바일 최적화 포함)
3. 홍보 영상 (제품 콘셉트 중심)
4. 가격표 또는 Offer Sheet (물품매도확약서)
5. 샘플 제품 포장 준비
"이 다섯 가지는 전시회 참가에 기본입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해외 바이어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그들의 언어로 된 자료가 필수입니다."
도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른 건 쉽게 이해를 하겠는데, Offer Sheet는 뭔가요?"
"Offer Sheet는 '물품매도확약서'라고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이 조건으로 물건을 팔겠다는 공식적인 제안서입니다. 보통 바이어가 우리 제품에 관심을 보이면, 견적서를 보내는 대신 이 Offer Sheet를 제시합니다. 여기에는 제품명, 규격, 원산지, 수량, 단가 같은 기본 정보는 물론이고, 선적 시기, 포장 조건, 대금 결제 방식, 인도 조건, 예를 들어 FOB, CIF 등 무역 조건이 명시됩니다. 말하자면, 견적서보다 더 구체적이고, 계약 직전 단계에 준하는 문서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 상당히 중요한 거네요.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는데, 저희 영문 홈페이지는 있지만, 모바일 최적화는 아직 안되어 있어요. 카탈로그와 홍보 영상도 아직 없어요."
그 말을 듣자 유리와 효진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맞아. 프랑스어나 독일어는 커녕, 영어도 없는 거네요..."
효진이 작게 속삭였다.
"그래도 국내에서 개최하는 국제 전시회이니까, 일단 영문 버전 카탈로그만 먼저 준비하도록 합시다. 다른 건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다음,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홍보 영상이 없는 건 많이 아쉽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히 준비된 마케팅이 아니라, 첫걸음을 떼는 용기와 경험입니다."
기석이 덧붙였다. 도현은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렇다면... 지우 씨한테 먼저 연락해 봐야겠어요."
그날 오후, 따스한 햇빛이 드리우는 카페 구석의 작은 테이블. 도현과 효진은 노트북을 펴고 앉아 지우를 기다렸다. 몇 분 후, 검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항상 깔끔한 옷차림과 당당한 걸음걸이를 가진 지우였다.
"오랜만이에요, 김도현 대표님."
"지우 씨. 많이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감사해요."
"안녕하세요, 지우 씨."
효진도 도현에 이어 인사를 건넸다. 지우는 테이블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문자 보고 놀랐어요. 갑자기 영문 카탈로그 작업이라니.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준비하시나 봐요."
도현은 머쓱하게 웃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돌려 보여주며 말했다.
"일단 국내에서 개최하는 국제 전시회부터 참가해보려고 해요. 해외 바이어들도 많이 오니까, 최소환 영어 카탈로그는 있어야 될 것 같아서요."
지우는 화면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제품 콘셉트는 여전히 남성용 스킨케어와 데오드란트죠?"
"네. 남성 타깃 그대로입니다. 심플하지만 고급스러운 이미지."
지우도 본인을 노트북을 꺼내서 몇 가지 레퍼런스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럼 텍스트는 최대한 간결하게, 이미지 중심으로 가요. 그리고 주요 카피는 고객이 직접 쓸 수 있는 언어로 풀어야 될 것 같아요. 참고로 카탈로그는 일반적으로 회사 소개를 시작으로 제품 소개, 제품의 특/장점, 인증 및 특허의 순서로 제작하면 돼요."
"그렇군요."
"그리고 카탈로그는 반드시 바이어가 한눈에 보고 제품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무슨 제품인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기존 제품과의 차별성은 무엇인지, 바이어의 관심을 끌만한 사항을 고려하여 제작해야 해요."
지우는 잠시 노트북에 있는 파일함을 뒤지더니 문서 하나를 클릭하였다.
"음... 그래서 고민을 좀 해봤는데, 이번에는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4P 전략을 기반으로 구성하면 어떨까요?"
"4P...? 아, 기억납니다 지우 씨."
"Product, Price, Place, Promotion. 이 네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카탈로그를 구성해 보면 내용도 정리되고, 마케팅 메시지도 명확해질 것 같아요."
도현은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지우 씨는 다르네요."
지우는 부끄러운 듯 조용히 웃으며 본격적으로 카탈로그 디자인에 대하여 설명했다.
“남성이 타깃이니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구성이 중요해요. 이미지보다는 느낌이 먼저 와야 하거든요. 저는 어두운 네이비나 다크그레이 계열을 추천해요. 안정감을 주고, 신뢰도 같이 주죠.”
도현과 효진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지만, 화면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냥 예쁘게 만드는 게 아니군요... 뭔가 믿을 수 있어 보이는 디자인, 그런 게 필요하다는 거네요.”
효진의 말에 지우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감각적인 디자인은 그 자체로 브랜드 철학을 의미해요. 예를 들어 우리 제품이 ‘도시 남성을 위한 클린 코스메틱’이라면, 시각적으로도 도심의 세련됨과 정갈함이 느껴져야 하죠.”
도현은 그제야 마케팅이라는 것이 단순한 기능 설명이나 가격 경쟁이 아니라, ‘이미지’와 ‘느낌’을 전달하는 일이란 걸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 타이포그래피도 그런 기준에 맞춰야겠네요? 폰트도 너무 화려하거나 장난스러우면 안 되겠고…”
효진의 질문에 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구체적인 폰트 예시를 보여줬다.
“이런 폰트 계열이 무난하면서도 깔끔해요. 읽기 쉽고, 진지한 톤이 나죠.”
도현은 메모를 하다가 문득 중얼거렸다.
“디자인도 결국은 ‘신뢰’를 설계하는 일이네요...”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걸 놓치고 있었는지 깨닫고 있었다.
'무역은 제품만 잘 만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이건... 고객에게 ‘느낌’을 주는 일이었구나.’
지우는 지금까지의 회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였다.
"정리하자면, 제품은 고급스럽게, 가격은 프리미엄이지만 그래도 경쟁사 대비 합리적인. 유통은 하이엔드 채널 중심으로, 프로모션은 감성과 기능을 강조. 이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효진 씨는 카탈로그에 들어갈 내용을 정리해서 주면 최대한 빨리 시안을 작업해서 공유드릴게요."
도현과 효진은 펜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카페 안은 조용했지만, 머릿속은 분주했다.
며칠 뒤, 중소기업 지원기관에서 ‘국내 전시회 개별참가지원사업’ 공고가 게시되었다. 참가비 일부를 지원해 주고, 해외 바이어와의 매칭 기회도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궁금한 점이 많았던 도현은 곧장 정부 지원기관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시회 지원은 ‘개별참가지원’과 ‘단체참가지원’ 두 가지로 나뉘어요.”
중소기업 지원기관 담당자의 설명은 간단했다.
"개별참가지원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원하는 박람회에 참여한 뒤에 참가 여부와 소요 비용에 대한 증빙을 제출하면 일정 금액을 사후에 지원받는 방식이에요. 반면, 단체참가지원은 지원기관이 특정 전시회를 미리 정한 후, 10개 또는 그 이상의 기업을 선정해서 공동 부스를 구성하여 참가하는 구조예요. 만약 전시회 참가 경험이 없으시다면, 단체참가지원으로 경험을 쌓은 후에 개별참가지원에 참여하는 것을 추천드려요."
도현은 전시회 참가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단체참가지원이 더 체계적이고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아 관심을 가졌지만, 아쉽게도 문제가 있었다. 단체참가 예정인 전시회들의 개최 일정이 너무 늦었던 것이다. 도현에겐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뷰티스타는 지금 당장, 첫 발을 내디뎌야만 했다.
"한 선생님, 이거 지원해 볼까요?"
도현은 공고문을 내밀며 물었다. 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만 잘 쓰면 붙을 수 있습니다. 정부지원사업은 논리와 근거가 명확하면 기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원사업들은 수출을 아직 한 번도 안 한 수출 준비 또는 초보기업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경우도 많으니 선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케팅 담당인 효진은 지원서를 작성하고, 포트폴리오와 이제 막 제작된 영문으로 된 제품 카탈로그 샘플까지 제출했다. 그리고 결과는 일주일 뒤 발표되었다.
"선정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사무실이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뷰티스타 코스메틱의 이름으로 듣는 첫 합격 소식이었다. 그리고 도현은 완성된 영문 카탈로그를 손에 들고 지우에게 문자 하나를 보냈다.
"도움 정말 감사했어요. 이번 전시회, 덕분에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우의 답장은 짧았지만 따뜻했다.
"파이팅이에요. 대표님 브랜드니까, 끝까지 책임지세요!"
그날 저녁, 도현은 영문 카탈로그 표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럽 바이어가 이걸 보면서 감탄하게 될까?"
문득, 자신이 이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는 도망칠 수 없겠구나.’
그는 조용히 웃었다. 처음엔 수출이라는 말조차 낯설었고, 시장조사조차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던 자신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카탈로그 한 장에도, 디자인한 줄에도 브랜드의 무게를 실으려 하고 있었다. 기석의 “발로 뛰어야 시장을 안다”는 말이 머릿속을 스쳤고, 지우의 “끝까지 책임지세요”라는 메시지가 마음을 울렸다.
효진과 유리가 몇 날 며칠 밤새워 만든 자료, 처음에는 어색했던 회의, 전시회 지원서를 함께 쓰던 시간까지… 모든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도현은 마지막으로 완성된 카탈로그를 조심스레 덮으며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 이번엔 진짜 우리 이름을 알려보자. 부끄럽지 않게, 준비된 모습으로.’
그는 미소 지으며 기석이 늘 하던 말을 떠올렸다.
“저도 예전엔 전시회를 그저 물건 진열해 놓고 홍보하는 자리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잘못된 생각인걸 깨달았습니다. 거기에선 진짜 시장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자료로는 보이지 않던 바이어들의 눈빛, 주저하는 손짓, 비교할 때의 그 냉철한 표정, 그 안에 수요가 있고, 트렌드가 있고, 때로는 무언의 거절도 있습니다. 시장은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사람의 눈, 즉 경험으로 배우는 겁니다.”
이제, 뷰티스타 코스메틱의 진짜 수출 여정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