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11화

첫 온라인 미팅

by 이설아빠

“이제 진짜 시작이야.”

도현은 책상 위에 정리된 노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 앞에는 기석이 직접 적어준 온라인 미팅 전략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여백 없이 빼곡하게 적힌 문장들, 형광펜으로 강조된 키워드들, 그리고 맨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한 문장.

“진심은 통역이 필요 없습니다.”

도현은 그 문장을 조용히 입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속은 여전히 무거웠다. 오늘은 프랑스 바이어, 마티유 드랑과의 첫 온라인 비즈니스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몇 주 전, 코엑스에서 개최한 뷰티 전문 국제 전시회에서 명함을 주고받았던 그 바이어, 당시에는 짧은 인사만 나눴지만, 그의 눈빛은 정확했고 말투는 단호했다. 그리고 바이어가 먼저 온라인 미팅을 요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우리 회사를 유럽에 잘 소개할 수 있을까?’라는 기대감과 ‘아직 준비가 부족한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이 교차했다.

전날 밤, 도현은 사무실에 남아 늦게까지 기석과 시뮬레이션 미팅을 반복하고 반복했다. 기석은 회의 배경부터 복장, 카메라 각도까지 하나하나 지적하며 꼼꼼하게 준비를 도왔다.

“조명은 얼굴 위에 그림자가 지지 않게 45도 각도로 두시는 게 좋습니다. 배경은 절대 어수선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코스메틱 전문 회사로 보이기 위하여 밝고 깔끔한 톤의 배경이 중요합니다. 분위기는 회사 이미지와 직결됩니다."

기석은 진지했다.

"그리고 정리 정돈은 기본 중에 기본이고, 가능하면 브랜드 이미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로고나 포스터, 그리고 프랑스와 대한민국 국기가 같이 있으면 더 좋습니다.”

도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노트에 받아 적었다. 외국어 실력도 중요하지만, 유럽 바이어들은 ‘태도’를 더 본다고 했다. 그는 셔츠를 다림질하고, 화면 속 조명의 각도를 바꿔보며 셀프 피드백을 반복했다. 메이크업을 해야 되나 망설였지만, 결국 기석의 조언대로 피부 톤만 살짝 보정하는 선에서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미용실에 방문하여 머리도 깔끔하게 정돈했다.

“대표님, ‘자연스러움’과 ‘무례함’의 경계는 결국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우면서 진심을 보여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기석의 말은 뼛속까지 들어왔다. 그날 밤, 도현은 모니터를 보며 수십 번 자기소개를 연습했다.

“I’m Kim Do-Hyun, the CEO of BeautyStar…”

(저는 뷰티스타의 대표, 김도현입니다...)

입술이 바싹 말랐다. 어눌한 발음, 멈칫하는 리듬, 익숙하지 않은 표현.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미팅 당일 아침이 밝았다.


조용한 사무실, 유리와 효진은 회의실 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와 도현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대표님, 잘하실 거예요. 어제 리허설 정말 많이 하셨잖아요.”

도현은 작게 웃으며 커피를 받았다.

“고마워요. 커피보다 응원이 더 힘이 되네요.”

유리와 효진이 회의실을 나가고 문이 닫혔다. 조용한 회의실 공간, 정리된 책상, 카메라 앞의 노트북 화면, 도현은 호흡을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손에는 미리 출력한 제품 소개 자료와 유럽 전용 카탈로그가 들려 있었다. 본격적인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하여 짧은 시간이었지만, 영어 카탈로그를 기반으로 프랑스어 카탈로그도 제작한 도현이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제품 샘플이, 왼쪽에는 프랑스 국기와 대한민국 국기가 교차되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냥 온라인 미팅일 뿐이야…’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손끝은 차갑고 이마엔 식은땀이 맺혔다. 화면 속 낯선 내 모습이 더 낯설게만 느껴졌다. 괜히 다시 셔츠 깃을 만지며 숨을 고르려 했지만, 떨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한 번의 온라인 미팅으로 유럽이라는 시장의 문이 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대보다 더 큰 압박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잠시 후, 화면에 ‘Mathieu Dran / Delouvre Cosmétique’이라는 접속명이 떴다.

'하… 드디어 시작이네.'

도현은 마음속으로 속삭이며, 다시 한번 숨을 깊이 들이켰다. 화면에 마티유 드랑의 얼굴이 나타났다. 깔끔한 셔츠, 프랑스 국기가 보이는 사무실 배경, 그리고 정중한 표정. 도현과는 다르게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Bonjour. Nice to see you again, Mr. Kim.”

(봉주르.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김 대표님.)

마티유 드랑이 먼저 인사를 하고, 도현도 따라서 인사했다.

“Nice to meet you too, Mr. Dran. Thank you for taking time today.”

(저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스터 드랑.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몇 문장은 매끄러웠다. 도현은 사전에 준비한 제품 소개 슬라이드를 띄우며 설명을 이어갔다. 스크립트를 외운 대로 하나하나 설명하며, 마티유 드랑의 반응을 주시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간간이 질문을 던졌다.

“Your concept, it focuses on urban men. Why did you decide to concentrate on this segment?”

(귀하의 콘셉트는 도시 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네요. 왜 이 시장에 집중하기로 하셨나요?)

“Because we believe urban men need simplified, but effective skincare. They are busy, and want clear solutions. We developed this with their lifestyle in mind.”

(저희는 도시 남성들이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스킨케어를 필요로 한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바쁘고, 명확한 솔루션을 원하죠. 저희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하여 이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마티유 드랑은 흥미롭다는 듯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음 질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Can I ask… why did you start this business, Mr. Kim?”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김 대표님께서는 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순간, 도현은 멈칫했다. 스크립트에는 없던 질문에 손끝이 살짝 떨렸고, 목이 말라왔다. 취업이 안되어서 창업을 하였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짧게 숨을 내쉬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만감이 교차하였고, 도현은 창업을 왜 하게 되었는지 보다, 왜 남성 뷰티 시장을 선택하였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Yes… because I felt men’s cosmetics were always treated as secondary. Like an afterthought. I wanted to make something just for men. Men's skin is different because of their routines, their needs, their lifestyle."

(네… 저는 남성용 화장품이 항상 부차적으로 다뤄진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나중에 생각해 낸 것처럼요. 그래서 남성을 위한, 남성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남성의 피부는 그들의 생활 방식, 루틴, 필요에 따라 분명히 다르니까요.)

도현은 짧은 한숨을 쉰 다음, 말을 이었다.

"Not a repackaged version of women’s products, but something that respects their own skin and lifestyle. And I truly believe this market is only just beginning. In the next few years, men’s grooming will no longer be niche, it will be essential.”

(여성용 제품을 재포장한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피부와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진짜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시장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진심으로 믿습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남성 그루밍은 더 이상 틈새시장이 아닌 필수 시장이 될 것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그것은 불편한 침묵이 아니었다. 도현은 긴장된 눈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이내 마티유 드랑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That’s a good reason. Passion can’t be copied. Sometimes it makes the product better.”

(좋은 이유네요. 열정은 복제할 수 없죠. 때때로 그것이 제품을 더 좋게 만듭니다.)

그 말 한마디에 도현의 움츠렸던 어깨가 살짝 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팅은 1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제품의 성분, 인증 계획, 타깃 국가, 가격 포지셔닝, 향후 계획 등 다양한 질문이 오갔다. 도현은 실수도 있었지만, 숨기지 않고 진심으로 답했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마티유 드랑은 마지막에 말했다.

“Your approach is not perfect, but honest. And that’s something we value.”

(귀하의 접근 방식이 완벽하진 않지만, 정직하다는 점은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놀라운 제안을 했다.

“There is a major trade fair in Paris after a few months ‘Cosmetic Europa’. Our company will attend. Why don’t you come and join? We can meet in person.”

(몇 달 후 파리에서 ‘코스메틱 유로파’라는 대형 박람회가 열립니다. 저희 회사도 참가할 예정인데, 함께 오시는 건 어떠신가요? 직접 만나 뵐 수 있을 것 같아요.)

도현은 순간 당황했지만 말을 이었다.

“You mean… in Paris?”

(파리에서 말씀이신가요?)

“Yes. Face-to-face meetings are always better. But I must be honest. If you want to talk business there, your EU certifications need to be ready.”

(네. 직접 만나는 게 항상 더 좋죠. 그러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곳에서 비즈니스 이야기를 원하신다면 EU 인증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EU 인증. CPNP, 라벨링, 성분 테스트… 도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I understand. We’ll prepare.”

(이해했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미팅이 끝난 후, 도현은 노트북을 천천히 닫았다. 그의 손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이마에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땀 때문에 붙어 있었다. 기석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땠습니까?”

도현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웃었다.

“어렵긴 했는데… 재밌었습니다.”

기석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재밌었다고요?”

“네. 제가 진짜 창업자라는 걸 말할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하더군요.”

기석은 흐뭇해하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시작입니다. 이제 진짜 해외시장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그리고 문이 살짝 열리며 효진과 유리가 얼굴을 내밀었다.

“대표님, 끝났어요? 표정 보니까… 잘 된 거죠?”

도현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프랑스에서 보자고 했어요. 이제 진짜 시작이네요. 아, 그리고 CPNP 인증 진행 상황 좀 체크해 주세요.”

효진과 유리는 두 주먹을 쥐고 작게 외쳤다.

“넵. 가자, 뷰티스타 유럽 진출!”

도현은 노트북 화면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어제까지는 초조하고 불안하던 얼굴이, 이제는 어딘가 조금은 단단해 보였다.


도현은 사무실을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그리고 머릿속에는 마티유 드랑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We’ll see you in Paris, Mr. Kim.”

(파리에서 뵙겠습니다, 김 대표님.)

그 말은 초대장이자, 도전장이었다. 도현은 조용히 말했다.

“좋아요. 파리에서, 제대로 보여주죠.”

그 순간, 핸드폰 알림이 떴다. 지우의 문자였다.

"회의는 잘 끝났어요?"

"네, 덕분에 잘 끝났어요. 파리에서 보자고 하네요."

"초청받은 거예요? 축하드려요. 파리는 좋은 도시예요. 꼭 가보세요 :)"

짧은 대화였지만, 도현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파리… 예술의 도시, 그리고 낭만의 도시. 그 거리를 내가 직접 걸어보는 거군요.’

그의 발걸음이 이전보다 한층 더 힘차게 느껴졌다.


< 계속 >

keyword
이전 10화The Trade: 무역왕 김스타 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