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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멘토도 선택이다

박사과정 지도 교수 잘 뽑는 법

by 정누리

처음 박사과정 멘토를 선택할 때 인터뷰를 꽤 했다. 에모리에서 과학계열 박사과정에 처음 들어가서 세 개의 실험실에서 2-3개월씩 돌아가며 일해보는 로테이션 구조가 있다. 입학 후 로테이션 없이 바로 원하는 실험실에 들어가게 하는 학과나 학교도 있지만 한 번 일해보는 경험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5년 넘게 일할 것, 몇 달 걸쳐서라도 자신에게 가장 맞는 실험실과 멘토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식적인 입학 전 여름부터 시작된 필자의 로테이션은 도무지 세 번을 거쳐 일해본 곳이 어느 군데도 썩 마음이 가지 않아 걱정이었다. 입학 전부터 기대했던 (에모리로 오기로 결정한 큰 이유였던) 실험실에서 일해봤는데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교수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내 에너지가 쑥 빠지는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하시는 연구가 원하던 방향과 맞으니 3개월만이라도 해보자 하고 들어갔는데 일하면서 마음에 걸린 것이 여러 가지였다. 실험실 내 분위기가 어두웠고 조용한 것도 있었고 연구도 생각했던 것과 달리 흥미롭지 않았다.


그렇게 로테이션을 3개나 하고도 딱히 들어가고 싶은 곳이 없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 선택했나?' 하는 생각을 수십 번 했다.




그러다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당시 졸업을 앞둔 한 선배님이 떠올랐다.


"내가 만약 에모리에 방금 들어왔다면 여기에서 일했을 거야."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보여주신 게 조지아텍에 자리 잡고 있는 실험실 2개였는데, 들어온 지 2년도 채 안된 새내기 실험실들이었다. 공학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던 필자는 솔직히 조지아텍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필라델피아, 뉴욕에서 살다 남부로 내려와 이쪽 지방에 대해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남부에서는 학교 중 에모리 달랑 하나 지원했었다. 조지아텍의 의공학과가 에모리의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그 학과가 세계 랭킹에서 몇 년 내내 MIT와 공동 2위에 오른지도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25분 정도 걸리는 다른 학교로 왔다 갔다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조지아텍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한데 지금 에모리에 필자와 맞는 실험실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덜컥 들었다. 조지아텍도 심각하게(?) 고민해 보기로 했다.


실험실 교수마다 개인적인 성격과 연구에 관한 철학, 멘토링 방식 등 다 달랐기 때문에 필자는 들어가기 전 반드시 물어봐야 할 요소들을 적어두었다. 그중에서도 1순위는 새로운 학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영주권 없이 국제 학생이 미국 국가 지원은커녕 원서 제출도 못하기 때문에 실험실에 돈이 있는가 알아보는 것은 중요했다. 사실 학생들이 교수님께 "교수님 돈 있어요?" 대놓고 말하기 참 뭐 하다. 하지만 공손하게 물어봐야 한다. 모르면 본인만 손해다. 필자는 안 그래도 힘든 박사 생활에서 돈 때문에 더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돈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받을 수 있는 교수님의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한 가도 배우는 입장에서 중요했다. 또한 그 실험실에서 반드시 그 학기에 한 명이라도 뽑겠다는 입장이 분명해야 했다.


필자가 나름 중요시했던 요소 중 하나가 교수님이 어느 정도의 위험감내도가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보상이 큰 연구를 하려면 그만큼의 리스크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필자가 처음에 새내기 실험실을 들어가기 꺼려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평생 재직권과 같은 tenure 없이 자리 잡지도 않은 마당에 연구 성과를 최대한 빨리 보여줘야 하는 주니어 교수님이 높은 리스크를 감당하려고 할까 의문이었다. 더불어 졸업 후 학생의 커리어 방향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받아들이실까 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했다. 애초에 교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는 필자를 멸시하거나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포닥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Annabelle Singer 교수님은 처음 만났을 때 눈빛부터 다르셨다. 하시는 질문마다 그 의도가 분명했고 밝고 활달하신 성격도, hands-on/hands-off 반반이라는 멘토링 스타일도 필자와 잘 맞았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목표지향적이고 생각 방식이 예리하신 분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필자가 꼭 물어봐야 한다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묻기도 전에 거의 다 본인이 말씀하셨다. 그래도 더 여쭤본 것이 있었는데 '이 학기에 꼭 한 명이라도 학생을 뽑으실 거예요?'와 '앞으로 에모리-조지아텍에서 계속 있으실 건가요?"였다. 전자에는 '내가 뽑을 생각이 없었으면 너를 여기까지 불러들이지도 않았겠지'로 후자에는 '난 애틀랜타에 방금 와서 떠날 생각이 없어. 우리 남편도 되게 좋아하는 도시거든. 그게 나한테 굉장히 중요해'로 믿음직한 답을 해주셨다.


개인적으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잘 아시고 자신의 시간도 중요시하는 분임이 명확했다. 그날로 교수님의 실험실에서 3개월 로테이션을 하기로 했다. 함께 일한 지 2주일 만에 '여기서 일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필자보다 더 신중하신 교수님은 '2-3주 더 같이 일해보자'하는 반응이셨다. 그 후, 3주가 끝나기 무섭게 교수님과의 미팅에 필자가 지도교수 확정에 도장 찍으려고 양식을 미리 출력해 들고 왔다. '지금 여기다 사인 안 해주시면 안 나가요' 하는 식의 약간의 심리적 압박(?)도 있었다. 다행히 교수님도 이런 필자의 당돌함이 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


훗날 후배들에게서 멘토를 잘 선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의 관한 질문을 많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직관적이라고 생각한 것이 마냥 직관적이지 않았다. 나름 협상 불가 (non-negotiable)의 기준과 평가하고자 하는 요소가 이미 머릿속에 정해져 있었다. 어느 학교나 회사에 들어가기 전 인터뷰는 언제나 쌍방향임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에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란 시간을 보내는데 그 소중한 시간 동안 자신이 몸담을 만한 환경인지 판단하는 것도 인터뷰를 받는 사람의 몫이다. 그만큼 자기 자신이 뭘 원하는지, 뭘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관련 데이터를 빨리 캐치할 수 있다.




데이터라는 게 별개 아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들리는 마음의 소리, 느끼는 감정, 행동 결과물 하나하나가 좋은 데이터일 수 있다. 필자가 처음 교수님을 알아가면서 마음에 들었던 것들을 적어보겠다.


1. 매주 1:1로 만날 시간을 확보해 주시는 것.

교수님은 랩 미팅 이외에도 매주 1회 실험실의 모든 연구진들과 1:1로 만나신다. 얼마나 큰 실험실을 원하시냐는 질문을 처음 미팅에서 했는데 이때 그 기준이 바로 '내가 매주 실험 모든 이들을 효과적으로 멘토링할 수 있는지'였다. 아들 둘에 강의와 연구, 학교에서 주는 의무 등 아주 바쁜 스케줄에도 실험실의 우리들 모두가 교수님께 동등한 관심과 시간을 받았다. 그리고 회의 안에서의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시고 다음에 되풀이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2. 어떤 결정을 하실 때 자신이 왜 그렇게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차분히 말씀해 주시는 것.

중요한 실험은 물론 어떤 제품을 사는 것과 같은 소소한 결정도 그 생각의 과정을 알려주셨다. 자연스럽게 교수님의 사고방식을 배우고 따라 하게 되었다. 예리한 질문 하나하나로 당장 눈앞에 놓인 것만 보지 않고 몇 단계 널리 보는 습관을 기르게 하셨다.


3. 광범위한 연구에 관한 생각의 자유를 주시면서도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이끌어주신 것.

연구 방안을 세울 때도 넓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셨다. 기존 권위자들에게서 나온 지식이나 법칙에도 의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도 부여해 주셨다. 교수님은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창의적인 연구과제를 직접 만들어갈 때 더욱 강하게 내재적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을 아신분이다. 그러면서도 과제 폭이 너무 넓어 무리하지 않도록 안 되는 것은 과감히 잘라내셨다. 이 밸런스를 맞춘다는 것이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4.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 법을 알고 계신 것.

처음 실험실에 들어와 쥐 실험하는데 배운 것은 쥐 수술하는 방법이 아닌 데이터에 관한 질문을 설계하는 방법이었다. 필자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교수님이 직접 쥐 수술 하는 것도 마다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가장 어렵고 중요한 전기생리학 (electrophysiology) 리코딩 등을 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라며 간단한 유전형 분석 등은 제삼자 회사에 맡기며 돈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런 점이 다른 실험실과는 많이 달랐다. 실험 방법을 숙달하는 데에 개인마다 속도차가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연구 성과를 더 효율적으로 뽑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었다. 이후 필자가 1년 만에 실험과 분석 등 연구의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누구보다 더 자랑스러워하셨다.


5. 바꿔서 질문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것.

교수님은 연구하고자 하는 질문을 다듬어 집중할 수 있도록 하셨다. 또한, 같은 질문을 다각도에서 바라보고 그중 어느 방향이 가장 의미 있고 효율적 일지 따지는 것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어떤 주제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연구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질문을 설계하는 법이 박사과정을 통해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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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Annabelle Singer 교수님과 졸업식에서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의 박사학위 수여식


교수님은 내게 단순히 뇌과학 지식만을 알려주신 게 아니라 생각하는 법까지 알려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순식간에 5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졸업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필자의 비즈니스와 커리어를 위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그런 멋진 멘토가 있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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