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이란 인간에 대한 마음이다
미국에서 대학교 들어가서 생애 처음으로 교수이자 수녀님이신 분을 을 만나게 되었다. 가톨릭교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던 필자는, 박사를 졸업하신 수녀님께 어떤 호칭을 써야 할지 몰랐다. 혼자 머릿속으로 'Sister Doctor?' 아님 'Doctor Sister?'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했었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우등반 영문학 첫 수업시간에 강렬한 눈빛의 수녀님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학점에 가장 중요한 파이널 리포트에 대해서 설명하셨는데 우리 관심사에 따라 주제를 알아서 정해 글을 써오라 하셨다. 수녀님은 앞으로 연구하면서 만나볼 책, 기사, 미디어 등 정보의 형태와 상관없이 그것을 올바르게 인용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우리 반에서 글을 쓸 때 두 가지의 규칙이 있었는데, 하나는 'am/are/is' 등 be 동사를 쓰지 못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인용할 때 반드시 출처와 함께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자는 우리의 어휘 풍요도를 높이기 위해, 후자는 저작권 교육에 대한 진심에서 우러나온 규칙이었다.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 수차례 수녀님께 검증을 받았는데 돌아오는 리포트 한 장 한 장마다 빨간색 펜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우리끼리는 농담 삼아 '지금까지 수업시간에 배운 것이 우리는 글쓰기에 소질이 없다는 것밖에 없다'라고 수군거렸다.
그 시절 필자가 이상하게 흥미를 느꼈던 주제는 '왜 자식을 죽이는 엄마가 존재하는가'였다. 파이널 리포트를 위해, 자식을 살인한 혐의로 체포된 엄마들에 관한 인터뷰와 책 등 관련 조사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수녀님으로부터 손바닥 크기의 인덱스카드에 직접인용 또는 간접인용할 저자의 글귀를 출처와 함께 적어놓는 방법을 배웠다. 도서관에 앉아 하루에 두 시간씩, 몇 개월 동안 꾸준히 정리해 둔 결과, 수백 개의 카드가 쌓여갔다. 곧 리포트 문단 구성 아이디어가 자연스레 드러났다.
처음에는 번거로웠지만 손으로 인덱스카드 하나하나에 필사한 것은 훗날 큰 도움이 되었다. 필사하면서 더 능동적이고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기억도 오래 남았다. 또한, 책상에 펼쳐놓은 카드를 관련 카테고리에 따라 구별하여 정리하는 것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이것을 다시 워드 파일로 표를 만들어 정리해 놓았더니, 리포트를 작성할 때 필요 문장을 순서대로 복사하여 붙여 넣기 할 수 있어 효율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인간에게 살인이란 그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보고서를 완성했다.
공들인 결과물을 제출할 때 수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5년 후, 어디선가 너희들을 만나면 어떤 주제에 대해 썼는지 물어볼 거야. 그때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한다면 네가 직접 연구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겠지."
십 년이 넘은 지금, 필자 손을 거쳐 완성한 생애 최초 장기연구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저작권은 과학자가 되어 더 자주 접하게 되는 문제였다. 최근,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원리에 관한 필자의 뇌과학 연구 논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이처지에 게재되었다. 남들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논문 발표 순간만 기억할지 몰라도, 출간하는데만 2년 가까이 들었다. 그 시간 안에 수십 번의 교정과 재정비 작업이 있었다. 논문 안에 인용된 다른 연구에 대한 출처는 물론, 누구나 공적으로 사용가능한 작은 쥐 그림에 관한 오픈 소스 크레디트도 분명히 해야 했다.
에모리대학교에서 뇌과학 박사 과정을 졸업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 당신의 논문을 참조했어요’하는 알림 메시지가 반갑고 자랑스럽다. 우리가 피땀 흘려 제출한 논문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공식적인 근거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식 영향력을 기반으로, 미국 영주권 신청도 수월하게 승인받았다. 이처럼 저작권은 단순히 개인 작품의 독창성을 보호하는 것을 뛰어넘어 타인과의 관계성에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요즘은 멘델레이 (Mendeley)와 같은 전문적인 인용 도구 프로그램이 많다. 이제 APA나 MLA 형식이 무엇인지 검색하고 출처 하나하나 그 규칙에 맞춰 직접 타이핑해야 했던 시절은 지났다. 인용하는 법을 몰라서 생략했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클릭 하나로 순식간에 참고문헌 표기를 바꿀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다.
처음부터 백지로 시작하는 작품은 드물다. 기존하는 지식과 노하우, 그리고 그것을 창출해 낸 사람의 노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다른 사람의 피땀 어린 경험이 녹아있다. 저작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행위는 단순히 법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시간과 열정, 지식 그 모두에 대한 예를 표하는 마음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살고 우리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메꿔나고는 인생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