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다음 주에 [온라인 커피챗] 뵐게요."
"네네, 알겠습니다. 미팅 링크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타트업 대표로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커피챗을 매주 하게 된다. 서로 공통 관심사가 있다 싶으면 아무렇지 않게 누구에게나 제의하거나 받을 수 있다. 코로나 이후 화상대화의 편리성이 그 인기를 유지시켜 주는 것 같다. 그렇게 누군가와 30분 정도 얘기를 하고 나면 보통 콜래보를 해볼 만한 비즈니스 안건이 나오던가,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거나, 또는 다음에 다시 만나자 하고서는 다시 안 만나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 분은 다음에 만나자고 기약하지도 않은 분이 되었다.
같이 만나기로 했던 그날, 시간 맞춰서 미팅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필자와 이 분 단둘일 줄 알았던 곳에 다른 한분이 벌써 와계셨다. '아, 아직 전 미팅이 안 끝났나?' 생각했었다.
"정박사님, 어서 오세요. 이 분은 어디 어디 회사에서 오신 누구누구예요. 여기 정박사는 에모리에서 뇌과학 박사를 전공하시고 머리가 아주 비상하십니다. 자, 그럼 미팅 시작해 보겠습니다."
필자를 초대했던 분이 알지 모를 대상에게 필자를 소개해준 뒤 자기 둘 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먼저, 당신 회사에서 마케팅 연구를 추진하신다고 했죠? 여기 박사님께도 좀 말씀해 주세요."
"글쎄요, 우리 회사에서 요즘 설문을 좀 기피하는 것 같아서 조사 방법을 바꿔보고 싶어요. 소비자 말이 믿을만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아서요. 소규모 회사로서 대기업에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네요."
"제가 포춘 대기업 XX에 지인이 하나 있어요. 연결해 드리도록 하죠."
들어온 지 10-15분 내내 입 벙끗 한번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했다.
결론적으로 이분은 개인 컨설팅 회사 대표로서 지금 필자의 연구 자격 (credential)을 이용해 자신의 잠재 고객에게 피칭하는 공간을 만든 것이었다.
너무 황당했다. 교묘하게 필자 소개하면서 마치 필자가 자기 회사의 종업원인 양 하는 것에도, 필자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도 신경질이 났다. 사람을 물건 쓰든 이용하는 사람은 싫다. 만나기를 기대했던 사람에게 모욕당하는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황당하고 화가 났지만 침착해야 했다. 남성 두 명 사이에 끼여 있는 한 여성으로서, 또 한 회사의 얼굴로서 프로처럼 행동하고 싶었다.
둘 만의 깊은 대화 속에서 타이밍을 잡으려 집중했다. 마케팅 연구에 대해서 배울 점도 있어서 귀를 쫑긋하다 마침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이런 계획에 대해 알게 되어 기쁘네요. 근데 대표님, 오늘 저랑 단둘이 커피챗 하는 건지 알았는데 제가 뭔가 착각했나 봅니다. 오늘 대표님 얼굴도 처음 보는데 말이죠. 이런 대화에 초대받은 걸 먼저 알았으면 제가 더 준비해 올걸 그랬네요."
고객입장의 그분 표정이 가관이었다. 그제야 그도 한마디 했다.
"사실 저도 처음 만나는 자리입니다. 오늘 이게 무슨 자리인지도 모르고 왔습니다."
서로 다른 기대치를 품고 들어와 만난 자리에, 고객분도 '내 잘못이 아니야' 하시는 듯했다.
결국, 다음의 기약 없이 인사만 하고 나갔다. '뭐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하며 마음을 다스리던 중 번뜻 생각이 났다. '이런 것도 어떻게 보면 칭찬이지. 내 실력을 고용하고 싶으나 돈이 없으니 어쩌겠어.'
홀로 스타트업 준비하며 기획 창안부터 마케팅, 세일까지 혼자서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대표님이셨다. 자신의 생계유지를 가능케 하는 고객 앞에서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자신 혼자보다 더 커 보이고 싶은 마음. 필자도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화날 이유가 없었다. 더불어 이 대표님도 의식적으로 한 행동이 아니라 뭔가 착오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덧 마음이 풀렸다.
어쨌든, 이 사건 이후 필자도 달리 한 것이 있다. 앞으로는 처음 보는 사람과는 웬만하면 상대방 쪽에서 필자의 웹사이트에 있는 캘린더를 통해 신청하도록 하고, 그 신청란에 반드시 미팅 이유를 적어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필자와 30분 동안 소통하고 싶은 사람 모두 "미팅 끝나기 전에 꼭 말씀 나누고 싶은 사항은 무엇인가요?"이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인간에게 시간은 다시 돌려놓을 수 없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시간 낭비를 하지 않으려 주의한다. 그만큼 필자의 시간도 존중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