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언제나 시를 썼다. 아니, 시라는 이름으로 내 안의 고독과 번민, 작은 기쁨과 스쳐가는 상념들을
기록했다. 짧고 함축적인 언어 속에 세상과 나 자신을 담아내려 애썼고, 그 행위가 곧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언어로 짜인 실타래를 풀고 엮으며 삶의 매듭을 더 단단히 묶어갔다. 내게 시는, 비록 형식은
시의 외피를 썼을지언정, 사실은 치열한 사유의 기록이자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 기록들은 때로 날카로운
칼날 같았고, 때로 희미한 그림자 같았으며, 때로 끈적이는 체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글들은 겉모습이 너무 '시'스러워서, 혹은 너무 '나'스러워서, 타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독자들이 때론 난해하다고 느끼거나, 낯설어하며 그 앞에서 머뭇거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믿었다. 내가 쓰는 글들이 '시처럼 보이지 않아도 시'이며, 그 안에 담긴 내 진심은 누군가에게 반드시 닿으리라고. 그리하여 이제, 그 믿음을 새로운 형태로 세상에 건네려 한다.
나의 시들을 조금 더 너른 품을 가진 '숏폼 에세이'의 옷으로 갈아입혀, 브런치북이라는 한 권의 작은
여정으로 엮었다.
이 브런치북은 스무 편의 짧은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얼핏 보기에 사소한 일상의 풍경들이지만,
그 속에는 삶의 깊은 고뇌와 인간 본연의 욕망,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성찰의 순간들이 녹아 있다.
나는 손톱의 무딘 성장에서 삶의 순환을 배웠고, 마트 계산대 줄 앞에서 인생의 선택과 후회를 되새겼다.
로또 한 장의 희망 속에서 현대인의 좌절과 유머를 발견했고, 한쪽 깜박이 나간 차를 통해 편향된 시선을
돌아보았다. 아이의 시험 점수 너머에서 과정의 가치를 찾았고, 기침을 삼키는 밤 속에서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응시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나 개인의 것이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가 함께 겪는 감정의 조각들이다.
나의 글쓰기는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질문의 답을 찾으려 헤매는 동안, 나는 세상의 모순과 위선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의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때로는 가혹할 정도로 솔직하게 나를 드러냈고, 때로는
비겁하게 숨어 위안을 찾았다.
이제 이 스무 편의 이야기는 더 이상 시의 옷을 입고 나 홀로 고독하게 속삭이지 않는다. '숏폼 에세이'라는
친근한 언어를 통해 독자들에게 말을 건넨다. 삶의 한 페이지를 넘기듯, 가볍게 혹은 무겁게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쩌면 그 안에서 당신만의 '詩'를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랬듯이, 당신의 내면에도
'시처럼 안 보여도 시'인 순간들이 존재할 테니까.
이 브런치북이 당신의 일상 속에 작은 위로와 사유의 씨앗을 던져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발 딛고 선
이 땅의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의미를 함께 찾아 나설 수 있다면 더없는
영광이겠다.
그대에게 전하는 나의 스무 가지 고백이 부디 당신의 마음을 스쳐, 작은 흔적이나마 남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