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러플린과 샥티 이야기
1972년, 미국 캘리포니아.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은 세계적인 밴드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해 봄, 그는 소속 레이블 CBS로부터 자선 공연 제안을 받는다.
공연 수익금의 기부처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제안에, 맥러플린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알리 아크바르 칸 음악학교’를 적었다.
그곳에는 그가 존경해 마지않던 인도 타블라 연주자, 자키르 후세인(Zakir Hussain)이 있었다.
자선공연이 맺어준 인연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 날부터 시작된다.
자키르는 공연이 끝난 다음 날, 맥러플린을 자신의 스승인 알리 아크바르 칸의 집으로 초대했다.
저녁 식사 후, 두 사람은 아무런 약속도 없이 악기를 집어 들었다.
맥러플린은 어쿠스틱 기타를, 자키르는 타블라를.
거장의 집 거실 한켠, 그들의 첫 합주가 시작됐다.
“연주를 시작한 지 30초 만에 깨달았다.
나는 이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고.”
맥러플린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들 사이에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흘렀다.
그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완전한 소통(total communication)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악기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쪽이 숨을 들이마시면, 다른 쪽이 그 리듬을 이어받았다.
그건 음악이 아니라, 신호 같았다.
세속을 넘어선 교감, 맥러플린은 그것을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태어나다
그날 밤 이후, 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밴드 구상이 싹트기 시작했다.
“서양과 동양, 재즈와 인도 고전음악, 자유와 규율이 한자리에 어울린다면 어떨까?”
그것은 단순한 실험이 아니었다.
맥러플린은 음악을 통해 ‘서로 다른 세계가 하나의 리듬으로 만나게 하는 것’을 꿈꾸었다.
그의 스승이었던 라마나탄 박사는 그 꿈에 공감하며 한 명의 천재를 소개했다.
바로 남인도 바이올리니스트 엘 샹카르(L. Shankar)였다.
이로써 북인도의 자키르 후세인, 남인도의 샹카르, 그리고 영국 출신의 맥러플린
세 문화가 한 무대 위에서 만나게 되었다.
샥티, ‘순수한 기쁨’의 탄생
1973년, 그들은 드디어 첫 무대에 섰다.
이름은 샥티(Shakti).
산스크리트어로 ‘신성한 에너지’를 뜻하는 단어였다.
그들의 연주는 세상의 어떤 음악보다 뜨거웠다.
맥러플린은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키르와 나, 단둘이서 시작된 그 정신은
첫 콘서트에서 순수한 기쁨의 영혼으로 되살아났다.
그것은 해방의 경험이었다.”
이 ‘해방’이라는 단어가 샥티의 본질이었다.
그들의 음악은 악보나 장르의 틀에 묶이지 않았다.
모든 연주는 새로웠고, 모든 무대는 하나의 즉흥적 기도였다.
서로 다른 전통이 부딪히면서도 완벽하게 어우러질 때, 그들은 ‘즐거움’이라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유를 발견했다.
30초에서 시작된 영원
돌이켜보면, 모든 것은 단 30초에서 시작되었다.
자키르의 리듬과 맥러플린의 코드가 만난 그 짧은 순간,
세상의 경계는 무너지고 하나의 새로운 언어가 태어났다.
그들이 찾아낸 건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함께 있음’의 기쁨,
서로를 통해 완성되는 자유였다.
그것이 샥티의 시작이었고,
지금까지도 세상을 울리는 이유다.
다음 화 예고
〈리듬의 탄생 2화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 ― 인도음악과 재즈의 대화〉
인도 음악의 라가와 재즈의 즉흥이 만날 때,
샥티만의 ‘음악적 언어’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