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는 여섯 살 때 주인공이 원시림에 관한 책에서 보아뱀이 맹수를 삼키고 있는 그림을 보고나서 밀림의 여러 모험들을 생각해보고 그린 그림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 그림은 보아뱀이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모습이었고, 어른들에게 무섭지 않은 지 물어봤으나 그들은 단순히 모자로만 인식하였다. 그래서 삼켜진 보아뱀 뱃속의 코끼리를 그려넣었으나 무서움이라는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고 지리, 역사, 산수, 문법 등을 공부해보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리고서는 다른 직업을 골라 비행기 조종사가 된다. 조종사가 되어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일반적인 어른들에 대한 생각은 그대로이다. 괜찮게 느껴지는 사람이 없다. 제1호 그림(보아뱀이 코끼리를 삼켰으나 그 속이 보이지 않는 그림)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시험하곤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럴때면 트럼프, 골프, 정치, 넥타이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그때서야 재미를 느낀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작가인 생택쥐페리 자신인 듯 하다. 비행기조종사가 된 내용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실제 비행기 조종사였기 때문에).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린 에피소드는 아마 자기자신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실제 생텍쥐페리는 그림도 그렸으며, 어린왕자에 있는 삽화는 모두 본인이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내용은 살아가면서 만난 어른들이 그림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그림을 말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그림은 보아뱀이 코끼리를 통째로 삼킨 모습이다. 이는 밀림의 모험들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으로 나오는데 뒤 스토리에서 어린왕자가 떠난 모험들이 등장하고 그것들이 세상의 모습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는 부분에서 착안해 본다면 뱀이 삼킨 코끼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본질적인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상상력 등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건 현재를 살아가는 나도 마찬가지로 공감하는 부분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일상적인 것이나 연예인, 먹을 것 이야기 등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깊이감있는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들은 잘 없다. 일반적인 이야기 상황 속에서 내면, 본질 등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통찰력있게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통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진심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이 혼자 살아오다 사하라 사막에서 비행기 사고를 만난다. 그곳에는 어린왕자가 있다. 그는 그림 1호를 보여줘도 바로 보아뱀과 그 안의 코끼리를 알아본다(함께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함양하여 깊이 있게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을 암시)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은 소행성에 관한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숫자같은 것에나 관심이 있는 어른들은 친구를 사귀었다고 하면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 무얼 좋아하고 나비를 채집하는지? 등을 묻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관계맺고 규정되는 모습 : 나이가 몇이고? 형제는 몇이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는지? 등 친구 자체의 본질이나 정체성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어린왕자라는 일반적으로 공유되지 못하는 시선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는 너무나 소중하다. 그런 사람이 인생의 친구 혹은 평생을 함께할 인연이자 동반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왕자에게는 자기가 살던 별에서 함께 지내던 장미꽃이 있다. 꽃은 어린왕자에게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물을 주라, 바람막이를 해 주라, 저녁에는 유리덮개를 씌워주라 등 겉으로는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향기를 통해 마음을 밝게 해주는 것을 나중에 눈치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낸 인연들을 의미하는 것 같다. 당시에 상대방이 보이는 행동들은 나에게 적대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를 위하고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말이 아닌 나를 위하는 행동을 보고 판단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별을 떠나 모험을 떠나는 어린왕자는 각 행성에서 다양한 군상의 어른들을 만난다.
- 자기만의 좁은 세상에서 본인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고 여기는 오만한 왕
- 칭찬하는 말만 들으려하는 허영심 가득 한 인물
- 본인의 부족함을 술로 달래는 어른(근데 또 술을 마신다는 것을 한탄함)
- 물질을 추종하는 사업가
- 주체성없이 명령에 따라서 이치에도 맞지 않는 방식으로 가로등 켜고 끄는 사람(실제 가로등이 필요없는 방식을 알려줘도 챗바퀴 속에 살며 쉬기만을 원함 but 남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유일하게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
- 직접 가보지는 않고 탐험가를 만나며 순간적인 것들은 배제하고 영원한 것들을 기록하는 지리학자
그리고 마지막에 방문한 지구에는 왕, 지리학자, 사업가, 주정뱅이, 허영쟁이 등 모든 인간 군상이 20억 명 존재한다. 그곳은 가로등 켜는 사람들(낮에 일을 마치고 밤에 가로등을 켜고 잠자리에 듦)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사라진다.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 중국, 시베리아 / 러시아, 인도 / 아프리카, 유럽 / 남미, 북미(경도상 왼쪽으로 이동)
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며 각자의 것들을 하고 있는 지구의 인간들
그들은 뿌리가 없어서 꽃과 달리 곤란을 겪고 바람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난다. 여우는 길들여지지 않아 함께 놀 수 없다고 한다. 햇빛을 받은 듯 생활이 환해지고, 다르게 들리는 발자국 소리가 생기고, 밀밭을 통해 금발의 머리칼을 생각나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모두 사려고만 하지만 친구는 살 수 없다.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고 그 사람의 존재가 나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서로에게 하나밖에 없는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고, 아무것도 아니던 것들이 나에게 그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원천이 된다. 매우 소중한 인연이 우리에게 이런 존재로 자리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사려고 하지만 진정한 나의 인연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돈으로 맺어진 인연은 내가 돈이 있을 때는 나에게 있지만 돈이 없다면, 그리고 진짜 나에게 필요할 때는 사라지고 만다. 진짜 인연은 서서히 나에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지구에 와서 만난 장미들도 어린왕자가 자기 별에 두고 온 서로가 길들인 장미꽃을 생각나게 하였고 지구에 수많은 장미들이 있지만 길들여지지 않은(나에게 의미부여되지 않은) 것은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 내용에서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각자가 그냥 존재하다가 서로 이름을 불러줄 때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것. 이것이 서로 길들여지고 의미가 생성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리고서는 일주일에 한 알만 먹으면 목마름을 느끼지 않게 되는 알약을 파는 사람을 만난다. 계산을 해 보면 53분이 절약된다고 한다. 어린왕자는 차라리 그 53분동안 샘터로 걸어가 물을 마시겠다고 한다.
오늘 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자본주의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은 극한의 효율 추구하며 돈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 안에서 과정에서의 깨달음이나 주변 사람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 어린왕자가 가졌던 차라리 샘터로 걸어가 물을 마시겠다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시간적 효율과 경제적 손실이 있더라도 과정에서 오는 경험과 즐거움이 있다면 충분히 소비할 가치가 있다. 이는 최근 온라인 활동을 최소화 하고 오프라인 경험을 의도적으로 하는 최근 나의 행태와 비슷하다. 데이터 로밍도 당연스럽게 온라인으로 진행했지만 저번에 공항에서 직원과 대화하며 나눈 즐거운 경험을 이후로 오프라인에서 현장을 느끼며 진행하는 것에 대해 재미를 느끼고 최근에는 일부러 공항에서 진행하였다(물론 데이터를 1GB 덜 받긴 했다 ㅋㅋㅋ). 일반적인 소비도 온라인 활동을 최소화하고 주변에 있는 가게를 이용한다. 그 안에서 가게 사장님들과 소소하게 나누는 대화가 재밌기도 하다. 온라인 활동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가치이다. 그러면서 얼굴을 익히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하는 것이 인간이 살아오던 방식이니까 말이다.
어린왕자를 읽으면서 내가 최근 책을 읽거나 삶을 설계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다시 한 번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아마 생텍쥐페리도 본인이 살아오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작품에 담은 것 같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어른들이 많지 않고, 오히려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가능성있는 시선을 모두 잃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또한 관계 속에서도 나에게 의미있고 진정한 관계는 정말 얻기 쉽지않다. 그런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고 친구가 되거나, 삶의 동반자가 된다면 그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마치 주인공에게 어린왕자처럼, 어린왕자에게 장미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