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하지 않았고, 그저 스스로를 증명하고 있었다.
화면 속 그녀는 토론토에 살고 있었다.
시차로 인해 정오쯤인 그곳엔 화사한 햇볕이 쬐는 배경, 목소리는 맑고 또렷했다.
신상 보호를 위해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그녀는 명문대를 졸업했고, 누가 봐도 원대한 꿈을 향해 추가적인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놀랍게도, 그녀는 내 현실을 비웃지 않았다.
단 한 마디의 조언도 하지 않았다.
패배감에 짓눌려 고작 동정을 받자며 떼쓰듯 자조적 하소연만 하던 내게,
그녀는 대신, 자신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무심코 "대단하다"고 말했다.
주 2~3회 술 마시고, 퇴근하면 의미 없는 유튜브 영상을 소비하며 하루하루를 재벌이라도 된 것처럼 낭비하며 ‘어떻게든 되겠지’ 하던 나의 삶에,
그녀는 내 주변엔 없던, 전혀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TV나 영화에만 나오는 줄 알았던 삶을 사는 일반인, 그녀는 매일 바쁜 시간을 쪼개어 운동을 하고, 식단을 관리하고, 학업도 충실히 챙기며, 3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어 썼다.
계획대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목표가 있었고, 그에 맞는 실행이 있었고, 무엇보다 ‘설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인정했다.
나는 내 삶을 단 한 번도 설계한 적이 없었다.
이제껏 한 번도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을 직시한 적 없었다.
나의 슈퍼파워는 날 히어로가 아닌 엑스트라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여태 회피와 도망으로 일관하던 난 ‘방법’을 몰랐다.
아니, 인생의 뚜렷한 목표조차 없었고, 뭘 해야 할지, 뭐가 우선순위인지, 수단과 방법엔 무엇이 있는지 등등.
결국 그녀에게 연락처를 물어봤고 다행히도 그녀 역시 흔쾌히 연락처를 주어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의 도움으로 비로소 곪아 터진 상처가 보이기 시작했다.
목표를 설정함으로 상처를 치유해야 되는 이유를 알게 됐고, To do list를 통해 벌어진 상처를 꿰매는 방법을 배웠다.
우선순위 설정을 통해 소독하는 방법을 배웠고, 수단과 방법을 끊임없이 사유함으로 단단하게 아무는 법을 배웠다.
무엇보다 그녀는 제대로운동을 해본 적 없던 내게 웨이트 트레이닝을 알려주었고,
육체가 탄탄해질수록 차오른 고양감은 내게 천연 스테로이드가 되어주었다.
조금씩 개선되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한 몸은 내가 내 손으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시각적 증거가 되어 자존감으로 차곡차곡 쌓여갔으며,
그녀와 오늘 할 운동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응원과 격려를 받는 것만으로도 육체적 고통을 잊었다.
물론 그녀와 나 사이의 물리적 거리와 환경의 차이로 인해 로맨스는 없었다.
아무리 현실감각 없이 살던 나였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감정이 연애가 아닌 정서적 유대였음은 확실히 알았고 그래서 고마웠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대화를 나누던 중 난 나의 성공을 막는 내 구조적 한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방 사립대 출신, 흔히들 말하는 인원 30 따리도 안 되는 중소기업 사무직.
내가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고 공부를 한다 해도 쉽게 넘을 수 없는 객관적인 족쇄였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학연수.. 올래?’
안녕하세요 브런치 독자님들.
그날 그녀의 삶을 들으며, 처음으로 내 삶을 부끄러워했어요.
여러분도, 누군가의 일상을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본 적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