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이 있었기에
어릴 적의 아름답던 추억을 마지막으로 떠올린 게 언제였을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들을 잊지 않으려 손아귀에 꼭 쥔 채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엔 사회 속에 섞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를 깎고, 맞추려 노력했다.
그들과 같아지기 위해서,
그리고 나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서.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인이 된 지금의 나는 그 속에 섞이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있다.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불안한 미래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레밍 무리 속으로
함부로 뛰어들고 싶지 않아서.
지난주 금요일, 퇴근이 가까워오던 시간이었다.
건너편 자리의 동료가 쓰던 RGB 불빛이 반짝이는 키보드를 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창고에서 꺼낸 내 키만 한 트리.
불을 끄고 장식을 걸던 부모님.
그 불빛을 눈에 담던 형과 나.
작은 방 안을 채우던 온기와 반짝임이
순식간에 현재의 공기를 환하게 물들였다.
직장에 들어온 뒤로,
나는 모든 것이 늦었다고 생각하며
돈이라는 목표만을 붙잡고 살아왔다.
하지만 인생은 그 목표가 잘못되었다고,
수많은 고통과 상처로 나에게 조용히 알려주었다.
돈으로 귀결된 삶은
가족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고,
어릴 적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점점 더 멀리 밀어냈다.
그 결과, 나는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삶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말았다.
주말이 끝나가던 어느 밤,
내일의 출근을 잊고자 “굿바이 레닌”을 보았다.
그리고 한 브런치 작가의 글에서
이 문장을 만났다.
“우리의 삶을 지탱해내고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과거의 기억과 향수일지 모른다.”
그 문장이 이상하리만큼 깊이 마음에 남았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남들과 같아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엔 남들과 비슷한 생각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아니니까.”
“남들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가장 소중한 것들을 하나둘 덮어둔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지불하겠다고.
하지만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그 시절의 기억들을 가슴속에서
영원히 빛나게 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