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hale

by 찬H

창문은 북쪽으로 나 있었다.

방은 늘 어두웠고, 블라인드도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햇살보다 그림자가 오래 깃드는 방이었다.


아이의 하루는 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거나,

때로는 아무 말 없이 벽을 응시하며 흘러갔다.

벽에는 고래 그림이 가득 붙어 있었다.

사진, 잡지에서 오려낸 조각, 책에서 베껴 그린 낙서들.


혹등고래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종이 위를 떠다니고,

향유고래는 아이의 눈길이 닿을 때마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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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본 적도 없으면서, 아이는 고래를 사랑했다.

한 번쯤은 꿈에서라도 만나길 바라며

날마다 같은 자리에, 같은 마음으로 머물렀다.


그날 밤, 블라인드 틈 사이로 번지는 달빛은 어제와 달랐다.

잠은 쉽게 오지 않았고, 가슴 한가운데 둥글게 맴도는 떨림이 있었다.

아득한 바다 밑에서 울리는 것 같은, 낮고 부드러운 진동.


그때, 아주 희미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소리 같기도, 유리창을 스치는 빗방울 같기도 했다.

아이의 시선이 천천히 창문을 향했다.





002.jpg The Whale_illust by 찬H


창밖으로 무언가 커다란 것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매끄러운 등줄기를 따라 빛이 흘러내렸다.

방 전체가 고요한 수면 아래로 잠기는 듯했다.


아이의 심장이 오랜만에 본래의 박자를 되찾았다.

바다 같은 하늘 속에서 별들은 산호처럼 빛났고, 소리 없는 물결이 방 안 가득 밀려왔다.

고래가 남긴 자취마다 마음이 스며들고, 잔상은 눈꺼풀 안쪽에 진하게 남았다.





001.jpg The Whale(2025.04)_illust by 찬H


이제 아이는 매일 창문을 쳐다보며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어딘가에서 여전히 헤엄치고 있을, 검은 그림자를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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