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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두는 고통, 지울 수 없는 그리움

1장. 통증을 다시 읽는 시간 # 3

by 시선

남겨두는 고통, 지울 수 없는 그리움


세상에는 반드시 치료해야 할 고통이 있고,

그저 마음 한켠에 조용히 남겨두어야 하는 아픔도 있다.


어머니를 30년 전에 떠나보낸 한 80대 노환자에게 물었다.


"어머님 떠나신 지 오래되셨나요?"

"30년도 더 되었더랬죠"

"여전히 그리우시죠?"

"우리 엄마, 1분만 보는 게 내 평생소원입니다. 지금도 내 마음에는 엄마가 있어요, 매일매일 그리움이 더 쌓여요"


자식에게, 세상에 한평생 사랑만을 주고 떠난 부모의 죽음 앞에

‘호상’이란 없다.


그 어르신에게 어머니는 여전히 “우리 엄마”이다.


백세까지 사신 어머니라 해도,

그 아들이 일흔의 나이어도,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그날은

가슴이 무너지는 듯 아프다.


평생 누군가의 우산이 되어 비를 대신 맞으며 살아오셨겠지만,

어머니의 품이 그리운 마음은

세월에도 시들지 않았으리라.


누가 말했는가.

나이 들면 감정도 무뎌진다고.

칼날처럼 스며드는 통증이든,

가만히 눌러오는 무게이든,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이지 않겠는가.


오랜 시간 사무치는 그리움이, 그 고통이

세월이 흐르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해가 갈수록

더 조심스레 꺼내보게 되고,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조용히 모셔둔 채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한순간, 문을 열고 쏟아져 나온 슬픔처럼


처음 온 60대 여성 환자 분이 치료를 받는데 다른 분들과 달리 말 끝에 힘이 없다.


"어머님, 요즘 잠은 잘 주무세요?"

"좀 그래요, 잠이 잘 안 와요. 불면증인가 봐요"

"요즘 생각이 많으신가 봐요, 날씨가 좋아졌는데 조금 걸어보실까요"

"네.."

"오늘 염증치료는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네.."


환자를 보내고 나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음 주, 같은 시간.

그분은 다시 오셨고, 여전히 말수가 적었다.


"어머님, 한 주 어떻게 보내셨어요?"

"비슷했어요"

"어머님, 힘든 일 있으셨어요?"

"... 남편이 하늘나라에 갔어요"


말없이 견뎌내던 그분은

마침내 조용히 울기 시작하셨다.

한순간, 문을 열고 쏟아져 나온 슬픔처럼.


이별의 상처를 막 지나고 있는 이에게
걷는 것이, 잠을 잘 자야 한다는 말이
그 순간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
그 아픔을 견뎌내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봐주는 것이
어쩌면 가장 진심 어린 예의일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의 아픔도 완전히 치유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마음의 무게를 함께 들어주고,
잘 포개어 마음 한켠에 곱게 놓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쓰린 아픔도, 저마다의 빛을 품고 있다


모든 만남이 귀하듯,

모든 이별은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은

때론 삶을 이끄는 한 줄기 흐름이 되고,

그 끝에서

또 다른 새로움이 조용히 피어난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마음은,

아픔이 되어 저리면서도

저마다의 을 품고

우리 안에 오래도록 머문다.




“What we have once enjoyed deeply we can never lose.

All that we love deeply becomes a part of us.”


"우리가 한 번 깊이 누린 것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다.
우리가 깊이 사랑한 모든 것은 우리 안의 일부가 된다."


— Helen K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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