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놓친 것보다 오래 남는 건, 곁에 있는 마음
<기다림이라는 엄마의 숨>
재촉 대신 머무는 고요,
말보다 깊은 숨 하나.
불안의 물결에 흔들리면서도
끝내 건네는 것은
잡아끌지 않는 손길이다.
기다림은
아이의 시간을 믿어주는 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등을 받쳐주는 일.
아이는 알지 못한다.
엄마의 숨이 얼마나 오래
어둠을 견디며
자리를 지켜왔는지.
그러나 언젠가 알게 되리라.
기다림이 곧 깊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대학입학 수시원서 접수 기간이었던
이번 주는 내내, 하루하루가 시험 같았다.
창문을 열어도 집 안 공기는 무거웠고,
아침에 눈을 떠도 불안이 먼저 찾아왔다.
원서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불안은 지워지지 않았다.
‘혹시 빠뜨린 게 있을까.
더 좋은 선택이 있었을까...’
이 질문이 일주일 내내 나를 붙들었다.
그 끝에 도착한 오늘은 원서 마감일.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버틴 것만으로도
숨이 다 닳아버린 것 같은 하루였다.
원서 접수 둘째 날, 딸은 울음을 터뜨렸었다.
“엄마, 나 왜 이렇게밖에 못했을까.”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나도 마음속에서
똑같은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제일가고 싶었던 학교,
둘째 날 실수로 쓰지 못한 원서.
그 무거움을 안고도
우리는 나머지 원서를 다 써 내려갔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 아쉬움은 원서 접수기간 내내 따라다녔다.
남편에게 괜히 짜증을 내었던 것도 같다.
울고 싶은 사람은 아이인데,
속상한 사람은 결국 나였다.
원서 접수를 다 마치고
저녁 무렵, 딸이 불쑥 말했다.
“엄마, 우리 이제 원서 얘기는 그만하자.
이제는 남은 거 할 수 있는 거 해야지.”
그 말에 마음이 멈췄다.
'그래, 이제 그만해야지.
아무리 되새겨도 되돌릴 수 없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그러더니 딸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나 마라탕 끓여줘.
엄마가 끓여주는 마라탕이 최고야.”
그리고 엄지를 척 들어 올려 보였다.
나도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그래, 그깟 마라탕이야.
실컷 끓여주지. 우리 딸 기운낼 수만 있다면.’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재료들을 볶자 집안 공기가 달라졌다.
매운 향신료가 퍼지고,
버섯과 채소, 두부면이 보글보글 끓었다.
마지막 청경채까지 올려주면 끝.
딸이 나를 향해 말했다.
“역시 엄마 손맛은 달라.
밖에서 사 먹는 거랑은 비교도 안 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밖에서보다 낫다는 건,
재료 때문이 아니라,
서로 믿어주는 마음 때문일 거야.’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땀을 흘리며 맛나게 떠먹었다.
그러다 딸이 내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엄마, 우리 힘내자.
결국 잘 될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을 꼭 잡았다.
“그래, 결국 잘 될 거야.”
그 순간만큼은 불안이 사라졌다.
일주일 내내 매달렸던 대학입시 원서 접수.
마감일의 긴 하루가 지나고
남은 건 놓친 원서의 아쉬움이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끓여낸 마라탕 한 그릇,
손등에 닿은 따뜻한 온기,
“잘 될 거야”라는 서로의 다짐.
엄마의 위로는
크고 대단한 말이 아니라
옆에서 함께 기다려주는 숨결이었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기다림이 결국 우리를 버티게 했다.
"놓친 것보다 오래 남는 건, 곁에서 버텨주고
기다려준 시간이었다."
이 글은 제 아이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입 수시원서 기간 내내 불안과 씨름했던
모든 고3 엄마들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책하며 마음 놓지 못한 건 원서일 수 있어도, 아이 곁에서 끝까지 버틴 기다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도 아이에게 건네는 밥 한 끼,
손끝의 따뜻한 위로가
가장 오래 남는 숨결일 것입니다.
"한 그릇의 마라탕이, 그간의 시름을 덮어 주었다."
by 《엄마의 숨》 ⓒbiroso나.
"오늘의 '숨'은,
놓친 아쉬움을 안고도 끝내 함께 써 내려간,
불안 속에서 서로를 붙잡아준 기다림이었다."
《엄마의 숨》은 불안과 기다림, 사랑과 다짐을
세대의 숨결로 이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고3엄마 #기다림의위로 #마라탕한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