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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라는 이름에 갇혔던 시간>

11화 그리고 나는,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by 숨결biroso나

결혼 후 나는 아내라기보다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웃고 싶은 날엔 웃고,

피곤하면 그대로 뻗어 자던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시간은 더 이상 없었다.


그 자유로움을 오래 누린 것도 아니었는데, 결혼이라는 문을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며느리가 되던 날부터

나는 ‘나’를 내려놓았다.

상황이 그렇게만 흘러

그게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당연해야만 하는 일인 줄 알았다.


남편보다 “어머님”을 더 많이 부르고,

입보다 눈치를 먼저 움직였고,

편한 옷보다 단정한 옷을 입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말투와

잊지 말아야 할 순서들을 익혔다.


그렇게 어머니 집의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내 집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그래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묵묵한 철학 속에서.


그렇게 나는 며느리가 되었고,

‘잘해야 한다’는 말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를 조여왔다.


“며느리답게”라는 말은

때로는 벽처럼,

때로는 울타리처럼

나를 감쌌다.


나는 가장 먼저 일어나

가장 늦게 눕는 사람이었다.

묻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잠시 앉아 있으면

눈치 없는 사람 같았고,

늦잠이라도 자면

나의 엄마가 욕먹을 것 같았다.


누구보다 애썼는데,

누구도 몰라주는 일들이었다.


하루 종일 눈치만 보다

그나마 출근해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나는 늘 조용히 아팠다.
마음이든, 몸이든,
어딘가가 꼭 고장 나 있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 밝게 웃었다.
그래야 어른이 된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조심스럽고도 다정하게
내가 아니라 시댁의 기준에 맞춘 사람으로
나는 서서히 익어갔다.


그러다

첫째 아이를 낳는 달이 되자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분가를 하라고 하셨다

이삿날 배가 똘똘 뭉쳐버려 힘들었지만

나는 내 살림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분가 후에는

친정엄마가 육아를 해주셨다.

주말에는

손주를 예뻐하시는 시아버님을 위해

아니 시어른들 성화에

매주 시댁에서 지내다 자고 왔다.


그렇게 주말을 보낸 후

출근을 하다 보니 분가 삶도 고달팠다.

나는 혼자 있고 싶었고

늘 어디론가 떠나고만 싶은 기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라도 참아내며
사랑받고 싶었던 며느리였을까?


그리고 지금 나는,
한참 늦게야 비로소 나를 찾아가며

엄마를 이해하게 된 딸이다.


한때 모질었던 시어머니에게서

도망치고도 싶었었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먼저 가신 하늘 아래
그 모든 마음을 미움으로 남기지 않으려 한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이해하려고 애쓰는 시간이

나를 조금은 다르게 만들어주고 있으니까.


나도 엄마가 되었다.
지친 얼굴로 아이를 업고 서 있는 내 모습을
거울에서 보았다.

그 순간,
기억 저편의 엄마가 겹쳐졌다.


말없이 음식을 만들고,

시어른을 모시면서도
이곳저곳 아픈 것도 숨긴 채
손주들까지 챙기시던 엄마.

그때는 잘 몰랐지만
엄마도 나처럼
며느리였고,
지치고,
울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제야 깨달았었다.
엄마는 그냥 ‘어른’이 아니라
언제나 엄마도 그저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었구나.

‘그저 그런 역할’이 아니라,
마음도, 상처도, 이름도 가진
한 사람의 여자였구나.


그리고 생각났다.

편찮으신 시어머니를 모시면서도

딸의 앞날을 위해 내 아이까지 봐주셨던 엄마의 나를 위한 마음..

아니 희생


그렇게 다 받기만 했았는데

지금 기력 없는 엄마를 보면

너무 미안해서 가슴이 저려온다.


시어머니께 했던 반의 반만이라도

엄마에게 잘해드렸어야 했는데

그 시절의 나는 너무 힘에 부쳐

시집가서도 어린아이처럼

엄마에게 안겨 있었던 못난 딸이었다.


그런 나를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며느리가 되어
나는 나를 잠시 내려놓았었다

이제는 그 이름들 틈에서
나부터 꺼내려한다.

돌아가는 게 아니다.
이제야,
비로소 나로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먼저 하늘에 가 계신 시어머니께

그간 끝내 닿지 못했던 안부를 전해 드린다.


시어머니께 전하는 안부




엄마도 결국,
사랑받고 싶었던 여자였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았다.

by 숨결로 쓴다 ⓒbiroso나.



엄마도 웃고 싶었을 텐데,
엄마도 사랑받고 싶었을 텐데.,,,
이제야 그 마음을 조심스레 품어봅니다.

《엄마의 숨》브런치북은 매주 월요일

당신의 마음에도 다정히 말을 겁니다.



*<biroso나의 숨결 감성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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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엄마의 숨》
2) 화/ 토 《가장 처음, 마음이 말을 걸었다》
3) 수/ 금 《다시, 삶에게 말을 건넨다》
4) 수 / 토 《마음에도, 쉼표를 찍는다》
5) 목 《별을 지우는 아이》
6) 목 《무너지는 나를 바라보는 기술》
7) 금 《아무 것도 아닌 오늘은 없다》
8) 일 《말없는 안부》
9) 일/ 월 《가만히 피어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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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의시간 #엄마의삶 #여자의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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