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풀 꺾인 날, 동생과 오랜만에 긴 산책을 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홍제, 출발지는 정릉.
“오늘은 제대로 걸어보자.” 서로 다짐은 했지만, 사실 마음속은 먹을 걸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정릉천에 도착하자마자 작은 식당에서 손칼국수로 배를 채웠다. 시원한 국물 한 숟갈이 들어가자 걷기 시작할 힘이 금세 돌아왔다. 창가 너머 흐르는 물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려서, 출발 전의 긴장도 사라졌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발밑으로 물소리가 흘러가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국민대 앞에 닿았다. 거기서 유명하다는 떡볶이집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매콤한 국물에 어묵과 튀김을 곁들이니, 이쯤 되면 산책인지 먹방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북악터널을 지날 때는 잠깐 긴장했지만, 곧장 발걸음을 이어 홍제 쪽으로 향했다. 이미 2만 보 가까이 걸었는데도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동생이 “포방터시장 가서 닭볶음탕까지 먹자”라고 했을 때, 힘들다기보다 신나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시장 안 닭볶음탕 집에 앉아 얼큰한 국물을 앞에 두니, 오늘 하루가 잘 정리되는 듯했다. 매콤한 냄새와 함께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대화 소리도 그저 배경일뿐, 우리에겐 든든한 저녁식사였다.
마지막은 홍제폭포였다. 도심 한가운데 폭포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조명빛을 받은 물줄기를 보며 오늘의 긴 걸음을 마무리했다.
그날의 발걸음은 32,000보. 발은 무거웠지만, 같이 걸은 시간이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다음 날 체중계는 2.5kg이나 늘어 강제 절식 중이지만… 그래도 닭볶음탕을 안 먹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