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김장 시즌이 왔다.
85세 엄마의 마음이 바빠지고,
조금만 하자고 말리다 지친 나는
몇 번이고 장을 보며 김장거리를 사다 나른다.
엄마는 올해도 매콤함과 감칠맛의 기준을 단단히 쥐고 계셨고,
나는 옆에서 묵묵히 배추를 넘기며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엄마가 간을 조금 더 보려 하면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해요” 하고 만류했다.
그래도 결국 엄마 손맛 앞에서는
내 의견은 늘 조용히 사라진다.
김장 중간, 배추 전을 부쳐 먹는 시간은 빠질 수 없다.
갓 부친 배추 전을 한입 베어 물면
수고의 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배추가 한 통씩 채워질 때마다
말없이 작은 성취감이 쌓였다.
허리가 욱신거릴수록
김장은 잘 되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85세 엄마의 한 해 농사가 무사히 끝났고,
이제 이 고된 노동의 결과물은
언니들과 조카들의 겨울 식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배달까지 완료되어야,
엄마의 김장은 비로소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