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여섯 시 반, K는 부엌에 서 있었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옆에 맥주 한 캔을 세워두었다.
라디오에선 쳇 베이커가 연주하는 “Almost Blue”가 낮게 흘러나왔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소금을 한 꼬집 넣고, 스파게티 면을 반으로 꺾어 넣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끓는 물소리와 트럼펫 사이를 가르며 낯설게 울렸다.
그는 젓가락을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잠시 정적.
그리고 낮고, 약간 잠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쯤엔, 누군가 전화 받아줄 것 같아서요.”
“그런가요.”
K는 면을 젓던 손을 멈췄다.
“전화 받는 사람도 가끔 필요하죠.”
“당신은 지금 뭐하고 있었어요?”
“스파게티를 삶고 있었어요.”
“스파게티요?”
“네. 별일 없는 날엔 늘 그래요.
삶고, 소스 데우고, 맥주 한 캔 따죠.
그게 하루의 끝을 확인하는 방식이에요.”
여자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좋겠네요. 나는 그런 게 없어요.
요즘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요.
일도, 사람도, 나 자신도. 다 흐릿해요.”
K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거품이 혀끝을 간질였다.
“그럴 때는 불을 올리는 게 좋아요.”
“불이요?”
“냄비에 물을 올리고, 면을 넣는 거요.
끓이기 시작하면 조금은 나아져요.”
여자가 조용히 웃었다.
“그걸로 인생이 나아지면 좋겠네요.”
“적어도 향은 나요. 마늘이랑 올리브오일 냄새.”
K가 말했다.
“그게 어디예요.”
“당신은 인생의 목적 같은 게 있나요?”
그녀가 물었다.
K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글쎄요. 찾으려 해본 적은 없어요.
대신 조금씩 만들어가죠. 스파게티처럼.”
“만드는 거라고요?”
“그래요. 냉장고를 열면 뭐가 있는지 모르잖아요.
남은 토마토, 마늘 한 쪽, 올리브오일 조금.
그걸로 그날의 소스를 만들어요.
인생도 그 비슷한 것 같아요.
있는 재료로, 가능한 맛을 내는 거죠.”
“그건 실패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다시 끓이면 돼요.
면은 언제든 새로 삶을 수 있으니까.”
여자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이상하네요. 그런 얘길 듣고 싶었나 봐요.”
“스파게티 얘기요?”
“아니요. 다시 끓일 수 있다는 얘기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면이 거의 익었다.
K는 불을 끄고,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 올렸다.
증기가 천천히 흩어졌다.
“이야기 고마워요.” 여자가 말했다.
“언젠가 나도 그런 냄비 하나 사야겠네요.”
“좋아요. 불 조절은 조심하세요.
처음엔 금방 끓어넘치니까.”
그녀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럼, 좋은 저녁 보내요.”
전화가 끊겼다.
K는 불을 끄고, 면을 체에 받쳤다.
물이 흘러내리며 부엌 안에 부드러운 냄새가 퍼졌다.
트럼펫이 끝나고, 조용한 피아노가 이어졌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은 약간 싱겁군.”
그 말 뒤에, 방 안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맥주 캔 안의 거품이 사그라지는 소리만 들렸다.
K는 포크를 들어 첫 면을 감았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인생의 목적이란, 아마도
이렇게 매일 조금씩 —
끓이고, 간을 맞추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밖은 어둑해졌고, 전화는 다시 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