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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고? 진짜?

아이유 <Love wins all> 뮤비 감상문

by KOSAKA

아이유의 〈Love wins all〉은 제목만 보면 전형적인 사랑의 찬가처럼 들린다. 그러나 영상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곧 그것이 단순한 로맨스의 노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낡은 카메라, 무너진 건물, 회색빛 잔해 속을 헤매는 두 인물. 세상이 이미 붕괴한 이후의 풍경처럼 보인다. 이들의 사랑은 시작부터 고립되어 있으며,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채 존재한다.


이 작품의 핵심은 “사랑”이 아니라 “세상”이다. 사랑은 오히려 세상의 잔혹함을 드러내는 장치에 가깝다. 영상 속에서 날아다니는 큐빅은 그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엔 마치 판타지 영화의 이펙트처럼 반짝이며 등장하지만, 곧 그 아름다움이 불길함으로 바뀐다. 큐빅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시선’이다. 사회가 던지는 냉혹한 시선, 규범의 눈, 차별의 눈. 장애와 다름,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의식적 폭력을 시각화한 존재다.


이 큐빅은 언제나 그들을 쫓는다. 숨으려 해도, 도망쳐도 끝내 찾아내고 파괴한다. 마치 세상이 “사랑해도 된다”는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지만, 큐빅의 빛이 닿는 순간 그들의 세계는 산산이 부서진다. 결국 사랑은 그 시선 앞에 무력해진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선언한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말은, 현실 앞에선 허망한 신화일 뿐이다.


아이유의 뮤직비디오는 단순한 서정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시각적 서사로 기능한다. 두 주인공은 단지 연인이 아니다. 그들은 ‘다름’을 상징한다. 이 다름은 장애일 수도 있고, 성 정체성일 수도 있으며,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떤 형태의 존재일 수도 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의지하지만, 사회의 감시 체계는 그들을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큐빅은 이 감시와 통제의 메타포다. 날아다니는 빛은 CCTV처럼, 제도처럼, 여론처럼 그들을 감시하고 평가한다.


이처럼 아이유의 세계관 속 ‘사랑’은 언제나 순수한 이상으로 시작해 현실의 벽과 마주한다. 〈Love wins all〉에서 그녀는 더 이상 사랑의 구원력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그 믿음을 시험하고 부서뜨린다. 이 영상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은 잔혹함과 맞닿아 있다. 사랑의 빛이 아니라, 파멸의 빛이 화면을 지배한다. 큐빅의 광채는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살벌하다. 그것은 세상이 가진 잔혹한 미학, 즉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비정상을 배제하는 사회의 논리를 은유한다.


결국 두 사람은 끝내 도망치지 못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의 얼굴은 점점 사라지고, 빛에 삼켜진다. 마치 사회가 사랑을 지워버리는 듯하다. 이 순간 아이유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말로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로맨스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윤리적 문제로 확장된다. 사회가 다름을 용납하지 않는다면, 사랑은 어디에 뿌리내릴 수 있을까.


〈Love wins all〉의 미학적 성취는 바로 이 ‘역설적 아름다움’에 있다. 사랑을 찬미하는 대신, 사랑의 무력함을 통해 현실의 잔혹함을 고발한다. 아이유는 슬픔을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대신 정제된 시각언어와 절제된 표현으로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을 들이민다. 음악과 영상의 조화는 애절하면서도 차갑다. 감정의 파도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의 질감이 화면을 지배한다.


이 작품은 ‘사랑의 승리’라는 낭만적 구호를 해체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구조적 폭력을 비추는 시각적 선언문이다. 날아다니는 큐빅은 결국 우리 모두의 시선이다. 그 눈은 사랑을 응시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규범을 감시하고 다름을 억압한다. 아이유는 그 눈앞에서 두 인물을 서 있게 한다. 그리고 말없이 우리를 향해 거울을 든다. “이 눈은 당신의 것이 아니냐”고.


결국 〈Love wins all〉은 사랑의 위대함보다, 사랑조차 파괴하는 사회의 시선을 드러낸다. 그것은 아름답고도 잔혹한 선언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문장을 믿고 싶지만, 아이유는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이상인지, 그리고 그 이상을 짓밟는 현실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보여준다. 이 뮤직비디오는 사랑의 찬가가 아니라, 사랑의 장송곡이다. 그러나 그 장송곡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꿈꾼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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