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편] 회사원

by KOSAKA

카페의 오후 공기는 늘 일정했다.

볶은 원두 냄새, 컵이 닿는 소리, 스팀이 하얗게 솟았다가 가라앉는 흐름.

스피커에서는 비틀스의 <서전트 페퍼즈 론리 하츠 클럽 밴드>에 이어

빌 에반스의 <왈츠 포 데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글을 쓰려 했지만 손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온 세계는 끊임없이 흐르는데 나만 자리에 붙어 있는 것 같은 묘한 정체감이 들었다.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서글펐고, 그리고 모든 것이 빠르게 바래져 가는 것만 같았다.

태양의 햇살과 풀냄새, 그리고 작은 빗소리조차도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잠시 노트를 덮고, 바 안쪽에서 잔을 닦고 있는 제아를 불렀다.

“사장님은 예전에 회사 다니셨다고 했었죠?”

제아는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한 5년 정도?”

“어땠어요? 회사 생활은.”


그는 곰곰히 생각하면서 잔을 천으로 닦기 시작했다.

마치 온 세계의 가랑비가 온세계의 잔디밭에 내리고 있는 듯한 침묵이 몇분동안 계속되었다.

그 잔을 닦는 움직임이 회상에 시동을 거는 것 같았다.


“크게 특별할 건 없었어요.”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자리에 앉고, 정해진 일을 했죠.

매달 안정적으로 월급이 들어오고, 보고서를 쓰고 회의를 하고,

때로는 누가 놓친 일을 대신 챙기기도 하고… 회사원이라면 다 비슷하지 않겠어요?”


그 말투에는 과장도, 향수도 없었다. 그냥 사실을 꺼내놓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단순한 반복이 이상하게 무겁게 느껴지더군요.”
제아는 잔을 뒤집어 빛에 비추었다.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오늘도 어제와 똑같다’는 감각이 쌓이면서

마음이 조금씩 말라가는 것 같았어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기 전에 잠깐 멍하니 앉아 있던 때도 많았어요.

별 생각은 없는데… 그냥 마음이 늦게 따라오는 거죠. 하루라는 시스템 안으로.”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회사는 회사였어요. 월급이 나오고, 일이 있고, 책임이 있고.

내가 그곳에 속해 있다는 건 분명했죠.

사실, 나중엔 그게 싫어서 카페를 한 것도 있어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 하고 싶어서.”

그는 잔을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돌아보면… 회사원으로 살았다는 건 그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일을 성실하게 맡아 수행했다는 의미죠.

너무 단순해서 설명할 말이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단순하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고요.”


말의 끝이 공기 속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린 뒤,

테이블 위의 빈 잔을 천천히 굴리며 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나는 오늘 쓰려던 글 대신 ‘나만의 사전’을 펼쳤다.


‘회사원’이라고 적어보았다.

회사원〔會社員〕

발음 [회사원]

품사 명사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인생의 시간을 회사에 맡기고, 그 대가로 한 달에 한 번 생존 가능한 돈을 받는 사람. 대부분 그 돈이 부족해 대출이라는 이름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받고, 회사에서 받는 돈의 상당부분을 금융기관으로 다시 건네줌. 자신의 이름이 찍힌 급여통장이라는 공간에 돈이 잠깐 스쳐가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화폐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기능을 갖고 있음.


창밖에서는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나만의 사전을 다시 정리하여 가방에 넣었고,

제아는 다시 잔을 정리하며 카페의 리듬을 맞추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단상] 스누피가 세계를 견디는 방식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