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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목표의식은 인생을 바꾼다

베가본드와 슬램덩크가 가르쳐준, 한 인간의 목적이 성장하는 방식

by KOSAKA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작품을 다시 펼쳐보면, 눈에 들어오는 건 화려한 장면도 고난도의 그림체도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인물들이 품은 ‘목표의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변해 가는가 하는 질문이다.


『베가본드』의 무사시와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시대도, 장소도, 싸우는 방식도 다르지만, 두 사람의 여정을 관통하는 공통된 흐름이 있다. 그들은 처음에 단순하고 직선적인 목표의식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길을 걷는 동안 더 강한 상대를 만나고, 더 큰 세계를 목격하고, 그 목표가 전혀 다른 성질의 의미로 바뀌어 간다.


무사시의 초반부는 거의 폭력의 화신처럼 보인다. 그의 목표의식은 단순하다. 더 강한 싸움, 더 큰 승리, 더 높은 경지. 하지만 이 목표는 깊은 사고나 존재론적 질문과는 거리가 있다. 강해지기 위해 강해지고 싶다는, 원초적인 직선성이다. 강백호도 비슷한 출발점에 서 있다. 농구부에 들어간 이유는 진지한 목표라기보다 허세에 가까운 마음,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망,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충동이다. 그의 목표의식은 처음에는 목적이라기보다 에너지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작품은 이런 단순함을 서둘러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단순한 목표의식이야말로 길 위에 서는 동력이 된다. 중요한 건 출발점의 수준이 아니라, 그 출발점을 밀고 나갈 때 만나게 되는 ‘강한 세계’다. 이 세계는 늘 인물의 목표를 바꾸어 놓는다.


무사시가 요시오카 형제, 인사이 같은 존재를 만나면서 그의 목표의식은 처음과 완전히 달라진다. 처음에는 “나는 더 강해져야 한다”가 중심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축이 이동한다. 칼을 휘두르는 기술과 힘의 크기를 뛰어넘어, 그는 강함의 본질을 이해하려 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고독의 무게, 존재의 의미. 그 질문들이 무사시의 목표를 단순한 승리에서 더 근원적인 탐구로 옮긴다.


강백호 역시 강한 상대를 만나는 과정에서 목표의식이 급격히 변화한다. 처음에는 득점과 과시가 전부였지만, 정대만·서태웅·송태섭, 그리고 산왕의 선수들을 만나는 동안 ‘팀을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전혀 다른 층위의 목표에 도달한다. 특히 산왕전에서 보여주는 리바운드 장면들은 그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농구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내가 팀을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진화한 것이다. 목표의식이 자기 중심적인 충동에서 공동의 승리를 향한 의지로 확장된다.


두 작품은 이처럼 목표의식이 외형적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계속해서 재정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강해지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왜 강해져야 하는가’로, 더 지나면 ‘강함이 가져야 하는 의미는 무엇인가’로 이동한다. 목표의식의 방향이 바뀌는 순간, 주인공의 세계도 함께 넓어진다.


이 변화는 독자에게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에는 단순한 목표로 시작한다. 인정받고 싶다, 잘하고 싶다, 승리하고 싶다. 이런 목표들이 미성숙해 보일 때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진짜 여정은 이런 유치한 목표의식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건 목표의 성숙도가 아니라, 그 목표를 가진 채 실제로 길 위에 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길 위에서는 반드시 ‘강한 타자’를 만나게 된다. 잘하는 동료, 뛰어난 경쟁자, 거대한 실패, 예상치 못한 기회. 이런 존재나 사건들은 처음에는 장벽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목표의식을 다시 쓰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무사시가 강한 검객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질문은 깊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강백호가 산왕이라는 벽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농구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목표는 외부의 ‘강한 무엇’을 만나야만 비로소 더 넓은 의미를 갖게 된다.


또 하나의 시사점은 목표의식의 깊이가 결국 ‘의미의 문제’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목표가 전부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내 목표는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나와 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성과의 크기나 외부의 평가보다, 그 목표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두 작품의 대비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무사시는 철저한 고독 속에서 목표의식을 깊게 파고들고, 강백호는 관계와 팀이라는 구조 속에서 목표를 재정의한다. 삶은 이 두 가지 축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균형을 갖춘다. 혼자 견뎌야 하는 순간이 있고, 함께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목표가 있다. 목표의식이 진짜 성숙해지는 순간은 두 축을 동시에 받아들일 때다.


이 모든 흐름을 통틀어 두 작품이 말하는 핵심은 명확하다. 목표의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계속해서 재구성되는 것이다. 처음의 목표가 미숙하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목표를 밀고 세계와 부딪힐 때, 더 깊고 넓은 목표의식이 새롭게 태어난다.


그래서 『베가본드』와 『슬램덩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지도 모른다.

가장 단순한 목표의식으로 시작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그것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믿고 길을 걷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만나게 될 강한 타자들, 예상치 못한 사건들, 관계와 고독의 순간들 속에서
우리의 목표는 전혀 다른 형태의 깊이를 갖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처음 품었던 목표보다 훨씬 멀리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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