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2
작가의 말
원래는 여행 중에도 글을 이어서 올릴 생각이었지만, 막상 알래스카 크루즈에 오르고 나니 인터넷 사정도 좋지 않고, 캐나다에서는 여행사 일정에 맞춰 움직이느라 여유가 없었습니다.
연재를 기다려주신 분들께 조금 늦은 인사를 전합니다.
이제야 천천히, 그때의 공기와 풍경을 떠올리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드뎌 출발!
이번 여행은 알래스카와 캐나다 서부 록키 지역으로 떠난다.
알래스카는 크루즈로 돌아보고, 캐나다는 밴쿠버 현지 여행사를 이용해 밴프와 재스퍼 국립공원을 아우르는 록키 지역을 18일간 여행하는 일정이다.
호주식 표현에 따르면, 나는 뱃속에 ‘여행 벌레(travel bug)’가 들린 사람이다. 늘 어디로 떠날 궁리 중이다. 지난 2월에는 한국에 들렀다가 가족들과 삿포로 여행을 다녀왔다. 늘 바쁘게만 사는 한국의 언니들이, 나의 재촉과 성화 덕분에 반강제로라도 여행길에 나서는 모습은 나를 흐뭇하게 한다.
삿포로에서의 시간이 즐거웠는지, 내가 “다음번 여행지는 캐나다 어때?” 하고 묻자 언니들은 “그래, 좋아!” 하고 흔쾌히 답했다. 아직 한국에 있는 중이었지만 그 자리에서 곧장 캐나다 계획을 세웠고, 시드니로 돌아오자마자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돌아와서는 나의 반쪽, 토니에게 말했다. “밴쿠버에 가는 김에 알래스카까지 가자!”
그랬더니 단번에 “OK.” 맞다, 우리는 베스트 여행 메이트다.
그리하여 우리는 먼저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다녀온 뒤, 밴쿠버에서 한국 가족 5명과 합류해 총 7명이 함께 캐나다를 여행한다
9월이 되자마자 큰 캐리어를 꺼내놓고, 생각날 때마다 필요한 짐을 하나씩 담았다. 알래스카와 캐나다. 따뜻한 나라가 아닌 북쪽으로의 여행이라 옷가지는 두껍고 신발도 부피가 컸다. 지난번에는 파손된 여권 탓에 공항에서 발이 묶인 적이 있던 터라, 이번에는 여권을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짐을 꾸릴 때마다 내 마음은 이미 조각조각 알래스카의 유빙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드디어 출발의 날. 우버를 타고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 늘 하던 대로 ‘맥도날드 세리머니’를 치렀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정크푸드지만, 여행이 시작되는 날 아침에 공항에서 먹는 맥도날드는 내게 설렘의 의식 같은 것이다.
시드니에서 밴쿠버까지는 논스톱 14시간 30분, 돌아올 때는 15시간 30분.
진정, OMG!(오마이갓!) 해마다 한국을 다녀서 열 시간 남짓한 비행에는 익숙해졌지만, 열네 시간 반은 생각만으로도 버겁다. 눈 밑 다크서클이 이미 세 센티쯤 내려앉은 듯한 기분이었다.
기내식으로 배를 채우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문득 창문을 올리고 내다본 하늘에는
수만개의 별들이 너무나 가까이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별들은 그자리에 있었지만 내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높이 날아오른 만큼 가까워진 것이다.
빛을 차단하기 위해 담요를 머리에 뒤집어 쓴채 몇시간을 별들에 매료되어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토니가 뭐해? 하길래 별들을 보여주니 '와우!' 하더니 바로 다시 코를 곤다.
새벽녁이 다가와 동이 트니 하늘은 또다른 색채의 황홀경을 선사한다. 아무래도 여행이 대박나려는 모양이다. 정작 시작도 전부터 눈 호강을 엄청 해버리니 말이다.
종아리가 터질 듯 부어오른다 싶을 무렵, “한 시간만 더 가면 돼.”라는 토니의 말이 들려왔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해 마시며 정신을 다잡는다.
드디어 비행기가 캐나다 땅에 랜딩했을 때, 내 몸은 여행의 시작이 아니라 끝자락에 와 있는 듯 무거웠다. 하지만 공항에 내리자마자 상쾌한 공기와 새로운 풍경이 피로를 조금씩 가셔 주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산과 바다, 시드니와는 또 다른 차갑고 선명한 블루의 하늘, 그리고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청량한 밴쿠버의 공기가 이제 내가 완전히 다른 세계에 들어왔음을 알렸다.
마침내 짐을 찾아 밴쿠버 공항 밖으로 나섰다. 이제부터 펼쳐질 알래스카의 여정 속에서 어떤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와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제, 여행이 진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