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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알래스카 3

by 윤슬 걷다

밴쿠버 공항철도를 타고 항구로 향했다. 크루즈 터미널은 밴쿠버 시내의 한가운데 캐나다 플레이스에 접해 있었다. 크루즈의 출항이 늦은 오후라 우리는 캐나다 플레이스 주변의 카페로 향해 커피를 마시며 한숨 돌렸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우리가 커피를 마신 그곳이 개스타운 이었다. 그날이 일요일이어서 마라톤 행사가 있는 날이라 러너들이 줄지어 우리 앞을 달리고 있었다. 러닝은 전세계의 열풍인것 같았다.



공항에서 캐나다 플레이스가 있는 다운타운까지는 10개의 스탑이 있고 30분 정도 걸렸는데 트레인 요금이 $12불이 넘었다. 비용은 별로로 티켓를 사지 않고 붐게잇트에 크레딧 카드로 tap하면 되니 편리했다. (작년에 로마에서는 이걸 몰라서 티켓을 손에 들고도 무임승차라고 누명을 쓰고 60유로라는 거금을 벌금으로 맞았다. 이 이야기는 사실 좋은 글감이라 나중에 꼭 쓸 예정이지만, 영원한 제국 로마의 병든 편린을 너무 생생하게 보아버렸고 여행 몇일간 입맛이 상당히 썼다) 이는 한국돈으로 만 이천원 가량이니 꽤 비싼 대중교통이다. 항구에 다다르자, 넓은 바다 위에 두대의 크루즈 선박이 정박해 있었고, 하나는 우리가 예약한 홀랜드 아메리카 또 다른 하나는 하와이로 가는 다른 크루즈였다.


크루즈 터미널은 캐리어를 끌고 세계 곳곳에서 온 여행자들로 붐볐고 거대한 규모와 위풍당당한 배의 자태는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이제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반복되며, 비행으로 쌓인 피로는 어느새 말끔히 지워지고 없었다.


항구에 도착해 짐을 맡기고 승선 수속을 밟았다.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배 안으로 들어서자, 차가운 바닷바람, 은은한 파인 향, 그리고 벌써 오렌지 칼라로 치장한 여행객들의 설렘이 코 끝에 다가왔다. 갑판 위로 나서자, 시원한 바다 공기와 햇살, 그리고 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흔들림이 나를 맞이했다.



출항을 기다리며 갑판 위를 거닐었다. 여기 저기 배위에서 사람들은 출항을 기다리며 이미 샴페인을 터트리고 마시고 있었다. 그들에게 출항은 이미 한거나 다름 없는듯했다. 설레임이 베인 사람들의 웃음소리, 승무원들의 분주한 움직임, 부두에서 떠나는 다른 배의 소리까지 모두 여행의 시작을 실감하게 했다. 드디어 '뚜우~ 뚜뚜우~'하며 뱃고동 소리가 출항을 알리자, 배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닷물 위로 끝없이 떠오르는 윤슬을 바라보니, 이제 막 출발한 크루즈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손에 든 샴페인 거품처럼 보글보글 솟았다.


처음에는 인사이드 룸을 예약했었다. 그동안 여러번 크루즈 여행 경험으로 사실 대부분의 시간을 캐빈이 아닌 데크와 식당에서 보내게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좁고 창문 없는 캐빈에서 일주일 이상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여 쉽게 예약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Alaska의 그 유명한 Inside Passage를 항해하는 동안 창문 없는 캐빈에만 있으면 멋진 풍경을 놓치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FOMO(Fear of missing out)가 생겼다. 결국 창문 있는 방으로 변경을 고민했는데, 특별 행사 덕분에 윈도우 룸과 발코니 룸 가격이 같다기에 발코니 룸을 예약했다. 아침마다 청량한 바람과 햇살을 맞으며 발코니에서 커피를 마시며 알래스카의 빙하와 유빙을 감상할 생각을 하니 잘했다 싶었다, 물론 비용은 두배가 되었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아마 그 걱정은 집에 돌아가서 하게 되리라.




이번 크루즈가 향하는 인사이드 패시지는 알래스카 남동부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은 좁은 바닷길이다. 수많은 섬과 피오르드가 이어져, 바다와 숲, 설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경치를 제공한다. 폭이 좁고 수심이 깊어 큰 배들이 드나들기 쉽지 않은 이 물길을 따라 항해하는 동안, 배 위에서는 매 순간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해안선 곳곳에서는 혹등고래, 범고래, 바다사자 같은 야생동물을 마주칠 수도 있으며, 바다 안쪽으로 들어온 햇살은 눈부시게 반짝였다. 발코니에서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매 순간 새로움과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크루즈 선박의 여행 설명이다. 실제로 내가 본것은 많이 다르다. 그러나 이제 겨우 에피소드 3회니 벌써 초를 치긴 싫다]



크루즈 일정은 총 7박 8일이며, 그중 3일은 주노, 스캐그웨이, 케치칸이라는 알래스카 마을에 정박해 승객들이 하선할 수 있다. 원치 않으면 배에 남아 있어도 된다. 하선 후에는 Shore Tour(기항지 투어)라는 마을별 여행 상품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으며, 인기 투어는 사전 예약이 필수다. 우리는 주노에서 알래스카 호수에서 하는 카약, 스캐그웨이에서는 헬기 투어, 케치칸에서는 흑곰 투어를 예약했다.



크루즈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은 항해만 하는 날이다. 이때는 인사이드 패시지의 풍경을 감상하거나, 책을 읽고, 헬스장에서 운동하거나,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된다. 여러 공연, 뮤지컬, 마술쇼, 가수 공연과 카지노, 라이브 밴드까지 다양한 즐길 거리가 매일 제공된다. 나는 아침과 저녁에 라인댄스에 참여하고, 쇼를 챙겨보며 시간을 보냈다.


인터넷은 별도로 신청해야 하는데, 나는 브런치 글 작성과 카톡을 위한 베이직 인터넷을 신청했고 토니는 넷플릭스를 위한 최고 사양 인터넷을 신청했다. 우리 인터넷 비용만 합쳐 500불, 일주일에 약 50만 원. 그런데도 인터넷 사정이 그닦 좋지는 않았다.


이런 날강도 같으니라고!



크루즈 짐(헬쓰장]은 기본 운동 기구 사용은 무료이나 클라스 조인비용은 무제한 클라스에 100불, 저렴하다 생각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풍경보랴 오락 프로에 참여하랴 사실 짐에 가서 운동할 기회는 그닦 많지 않았다.


이제 바다가 조금 지겨워질 즈음, 드디어 우리는 주노(Juneau)라는 알래스카 마을에 도착했다.




*작가의 글*

여행에서 돌아온 후 바로 올린 첫번째 글 [드뎌 출발]이 저의 실수로 연재가 아닌 일반 글로 발행되었습니다. 아직 시차 적응이 안되어 몽롱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혹시 이야기의 전개에 괴리가 느껴지시는 분들은 이전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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