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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 빙하의 위기

알래스카 9

by 윤슬 걷다

빗속의 빙하, 사라져 가는 푸른 숨결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 글라시아 베이의 하늘은 끝끝내 맑아지지 않았다.
짙은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고, 바다는 납빛으로 잠겨 있었다.
그 속에서 얼음의 거인이 천천히 숨을 쉬고 있었다.
차가운 청색의 빙하가 바다로 흘러드는 그곳,
시간이 느리게 움직이는 듯했다.

이곳이 바로 어제 방문한 알래스카의 글라시아 베이(Glacier Bay).

수천 년 동안 눈이 쌓여 만들어진 얼음의 강이,
바다로 천천히 흘러들며 만들어낸 거대한 얼음의 세계다.

어제 내가 마주한 머저리 빙하와 존스 홉킨스 빙하는,
짙은 안개와 비 속에서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산의 어깨 위로 구름이 흐르듯 걸쳐있고,
얼음의 단면은 옅은 청색에서 은빛으로 번졌다.
그 장면은 말로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알래스카에는 약 10만 개 이상의 빙하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중 이름이 붙은 것은 고작 660개 남짓.
대부분의 빙하들은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채
아무 말 없이 녹아내리고 있다.

이 빙하들은 단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다.
북극권의 온도를 조절하고,
바다로 흘러드는 담수의 흐름을 완충하며,
해양 생태계의 영양분 순환을 유지하는
지구의 숨결 그 자체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알래스카의 빙하들은 평균 20킬로미터 이상 후퇴했다.

1750년 빙하는 현재의 비지터 센터 아래까지 길게 거대하게 덮고 있다
오늘날 빙하는 많이 녹고 사라져 비지터 센터를 지나 베이.안으로 깊숙이 다 바다가 되었다.


어떤 빙하는 이미 사라졌고,
또 어떤 빙하는 이름만 남은 채 기록 속에 존재한다.
그 가운데 몇 안 되는 빙하만이
아직도 천천히 바다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이 왜 이렇게 처연하게 들렸을까.


불과 이삼 백 년 전만 해도 빙하였던 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얼음 조각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구의 온도가 단 일도만 더 오르면,
이 풍경은 내 생애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지구 온난화라는 단어를,
이토록 실감 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수천 년 동안 단단하게 버텨온 얼음의 성이
불과 몇백 년 사이에 무너지고 있다.
그건 결국, 인간이 만든 열이
지구의 심장을 녹이고 있다는 뜻이리라.


비 내리는 글라시아 베이 위로
회색 안개가 천천히 흘러갔다.
나는 카메라를 내리고,
잠시 숨을 고르듯 그 빙하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지구가 내는 오래된 신음처럼 들렸다.



그 앞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전깃불 하나를 끄고,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을 들이지 않는 것.
그렇게 조용히, 미니멀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일이
지구를 위한 가장 작은 약속이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책임'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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