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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로 본 문화차이, 공정함이란

알래스카 10

by 윤슬 걷다


오늘은 기대했던 캐치칸(Ketchikan) 정박이 취소되어 하루 종일 배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캐치칸에서 하려 했던 흑곰 투어와 와일드 라이프 투어가 자연히 취소되면서, 예약했던 기항지 투어 세 개 중 두 개가 무산된 것에 대한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모처럼 해가 쨍하게 뜬 날이었다는 점이다. 출항 이후 계속 비가 내리다가 모처럼 해가 떴는데 정박이 취소라니 어이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방송을 기다려 보았으나 크루즈 회사에서는 정박 취소 방송 이후엔 아무런 안내방송이 없었다.

화창하게 날씨가 개고 저기 멀리 무지개가 떴다. 혹시나 정박 취소를 다시 취소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았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오늘 저녁에는 이 항해의 꽃이라 불리는 '오렌지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나의 오렌지 룩
오늘따라 노을도 오렌지


만약 이 크루즈가 시드니에서 출항하는 호주 승객 위주의 크루즈였다면, 승객들은 첫날부터 오렌지색 옷을 걸치고, 귀에 걸고, 머리에 쓰는 등 다양하게 오렌지 패션으로 나와서 떠들썩하게 파티를 즐겼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 알래스카 크루즈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올해 초에 다녀온 카니발 크루즈, 승선하자 마자 파티가 시작되고, 3박 4일 내내 이들은 이렇게 파티를 하며 논다.
파티를 구경하는 승객들

알래스카 크루즈는 일단 승객들의 연령대가 매우 높았다.

많은 커플이 60대 이상, 70대로 보였고, 9시만 되어도 배 안이 조용해졌다. 바(Bar) 역시 기대했던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호주 사람들이 스스로를 '파티 애니멀(Party Animal)'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또 크루즈 중에 느낀 한 가지는 내가 사는 호주인과 이 배의 주된 승객들인 캐나다 또는 미국인들의 차이였다.

호주인들은 누굴 만나면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눈다. 이들의 캐주얼 톡, 즉 스몰 토크(Small Talk)는 유명하며, 호주인을 '친절한 사람들(Friendly People)'이라는 국제적인 평판을 낳게 했다. 호주인인 토니는 당연히 풀장이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혹은 식당 입장을 기다리는 줄에 서서 아무에게나 말을 붙인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돌아오는 대답은 짧았다. 나는 다소 무안하다고 느꼈는데, 토니는 그것마저도 그저 '다름'으로 수용하고 아무렇지 않아 했다. 호주, 캐나다, 미국 모두 같은 조상인 앵글로색슨계(영국인)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벌어진 문화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한 가지 그러나 나에겐 가장 깊은 의미를 남긴,

'제도적 공정성'이다.


나는 그동안 호주에서 주로 카니발 크루즈(Carnival Cruise)를 이용하여 여행을 했고, 카니발은 럭셔리 크루즈가 아님에도 이렇게 일정에 있는 정박이 취소되면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해주었다.


내 친구는 모튼 아일랜드(Moreton Island)로 가는 4박 5일 크루즈를 갔는데, 날씨로 인해 정박이 불가능해지자 크루즈 비용을 전부 환불받았다고 좋아했다. 4박 5일 동안 재워주고, 먹여주고,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해 주고 단지 섬에 정박만 못 했을 뿐인데 비용을 다 돌려받았으니 완전히 공짜로 여행한 셈이라며 오히려 좋아했다.


또 다른 지인은 예약했던 남태평양 크루즈가 제 날짜에 사정으로 인해 출항을 못 하게 되자, 50%를 환불해 주고 50%는 크레디트로 제공했으며, 5박 6일짜리 호주 내 태즈메이니아(Tasmania) 섬 크루즈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처음에 예약했던 남태평양 크루즈는 몇 달 후 다시 예약하여 다녀올 수 있었다. 결국 5박 6일 태즈메이니아 크루즈를 공짜로 한 셈이 되었고, 이 경우에도 그는 역시 더 좋아했다.


똑같이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호주의 크루즈 회사의 승객들은 '운이 좋다'라고 생각하며 돌아갔다.


호주의 민주주의와 미국의 민주주의는 많이 다르다. (이 배는 미국 법에 따라 운영하는 회사, 홀랜드 아메리카이다.)

미국은 캐피털리즘(자본주의)에 베이스를 둔 민주주의이고 호주는 소셜리즘(사회주의)에 베이스를 둔 민주주의이다.


미국에서의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고 계약서에 있는 내용만 이행하면 된다는 생각에 기반한 사회인 반면, 호주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거기에 도덕적, 사회적인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이다.


이는 주주 가치 극대화를 우선하는 미국의 자본주의와, 고객 신뢰 및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호주의 이해관계자 (고객도 이해관계자이다) 기반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홀랜드 아메리카 크루즈의 공식 사이트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풍경들을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고래도 보지 못했고, 흑곰도 보지 못했고, 헬기 투어도 하지 못했다. 단 한 가지 경험한 것은 글레이셔 베이(Glacier Bay)의 빙하이다. 감사하게도 빙하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이 마을은 정박이 취소


이 투어는 캔슬
이 투어도 캔슬
이와 비슷한 카약을 했으나 사진이 보여주는 것과 아주 많이 다르다.


사실 이 알래스카 크루즈는 정말 높은 '기회비용'을 치른 여행이었다. 발코니 룸 7박 8일 사용료가 한화로 450만 원에서 500만 원이고, 여기에 기항지 투어 비용까지 계산하면 일주일에 700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의 여행이었다.


이러한 고가의 여행 상품을 구매한 승객이, 자사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풍경 중 대부분을 보지 못하고 실망한 채 돌아갈 때, 기업은 "Bad Weather, Bad Luck!"이라며 두 손 놓고 있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일까? 크루즈 여행은 그 특성상 날씨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똑같이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호주 배의 승객들은 자신들을 럭키하다 생각하며 돌아갔고 미국 배의 승객들은 실망한 채 하선한다. (사실은 실망의 수준을 넘어 인터넷 사이트의 사진들에 대해 진한 의구심을 가지고 하선했다.)


더욱이 우리를 안내했던 한 투어 가이드는 본인은 아리조나 출신이며 여름철 6개월만 알래스카에서 투어 가이드로 일한다 했다. 대부분의 가이드들이 자기처럼 시즈널(seasonal) 이라며 알래스카는 워낙 비가 많이 오는 곳이라 했다. 지난 6개월간 알래스카에서 해 뜨고 맑은 날은 2주도 채 안될 거라고...


크루즈의 승객들은 돌아가면 저마다 회사원, 기업주, 학생, 그리고 공공근로자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내가 속한 사회가 제도적으로 공정하다고

느끼고 만족하는 구성원과 그렇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가져다가 부자를 점점 더 부자로 만들어주는 사회'라고 느끼는 구성원이 만들어가는 사회가 사뭇 다를 건 뻔한 이치이다. 크루즈는 하나의 예일뿐 호주는 사회 곳곳에 이런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묻고, 그리고 공유하는 '제도적 공정성'이 구석구석 스며들어있다.


일례로 내가 몸담고 있는 장애인들의 사회만 보더래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불행하지만 다른 나라 아닌 호주에 태어난 것은 행운이라고 여기며 살고 있는 사람이 다수이다. 물론 그 비용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공유한다.


이런 제도는 “누구나 언젠가 약자가 될 수 있다”는 공감적 상상력 위에 세워져 있으며, 설령 개인이 타인의 고통에 직접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제도가 그 공감을 대신 수행한다.


알래스카 크루즈와 같이 '고가의 여행 상품'이 날씨 탓으로 인해 자사의 공식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풍경들을 거의 보지 못하고 실망한 채 돌아가는 고객들에게 우린 계약서의 조항을 이행했으니 당신들은 "운이 없었다"라며 두 손 놓고 있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일까?


뜻밖에도 나는 이번 알래스카 크루즈를 통해 내가 살고 있는 호주라는 국가의 기반이 되는 '제도적인 공정성'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다. 이는 알래스카의 슬픈 빙하만큼이나 깊은 울림을 남겼다.


시드니에 돌아가면 사람들에게 '알래스카 크루즈'를 가보라고 권하지는 않을 것은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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