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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안의 풍경

알래스카 10

by 윤슬 걷다

바다 위의 며칠

크루즈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식당이 있다.
뷔페식당, 이탈리안 레스토랑, 햄버거 가게, 피자 코너, 그리고 일식이나 아시안 푸드를 파는 곳까지.
일부는 크루즈 요금에 포함되어 있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또 다른 일부는 별도의 비용을 내야 하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의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무엇이 언제 열리는지는 하루 전날 캐빈으로 배달되는 뉴스페이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은 앱으로도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앱에서는 오락 프로그램뿐 아니라 식당 예약, 신용카드 사용 내역까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기술이 이런 데서 진가를 발휘한다.




술과 음료를 파는 바는 층마다, 방향마다 있다.
‘멀어서 술 사러 가기 귀찮다’는 핑계를 댈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곳마다.
칵테일은 한 잔에 11~20달러, 음료는 2.99달러.
물론 미국 배이니 세금은 따로 붙는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달래려 나는 스파를 찾았다.
50분 마사지에 129달러, 한화로 15만 원이 넘는 가격.
투어 두 개가 취소되어 환불받은 돈이 있었기에, 이번엔 그냥 ‘받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잠시 기다리자 남미와 아프리카의 혈통이 섞인 듯한 마사지사가 들어왔다.
그의 손은 놀라울 만큼 강하고 정확했다.
묵은 피로가 풀리듯 팔다리가 노글노글해졌다.




배 위의 오락 프로그램 중에는 늘 인기 많은 가라오케도 있다.
호주 크루즈에서는 ‘Good if you can sing, even better if you can’t sing’
(잘 불러도 좋고, 못 불러도 더 좋다)
라는 문구로 사람들을 모은다.
실력자들이 무대를 장악하고, 음치들은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하지만 이번에 탔던 홀랜드 아메리카 크루즈에는 그런 가라오케가 없었다.
대신 나이가 지긋한 승객들을 위한 라인댄스가 있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라인댄스에 참여하며 그 틈새의 흥을 만끽했다.

뮤지컬, 스탠딩 코미디, 클래식 콘서트 등
배에서의 밤은 늘 공연으로 채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탔던 호주 크루즈의 생동감이 자꾸 떠올랐다.
왠지 이번 배는 한결 점잖고, 조금은 심심했다.
역시 놀고먹는 데는 호주 사람들을 따라올 자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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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의 항해가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배는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종착지로 향했고, 창밖으로 뭍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 안을 가득 채웠던 음악과 웃음소리, 매일 새로웠던 아침식사 풍경이
이제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좋았던 것도, 아쉬웠던 것도 많았다.
바다 위에서의 시간은 느리지만, 또 이상하게 빨랐다.
햇살이 반짝이던 갑판에서 마신 커피 한 잔,
춤을 추던 사람들의 들뜬 얼굴,
그리고 예상치 못한 취소와 기다림의 시간들.
모든 것이 뒤섞여 묘한 여운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여행이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 기억에 남을 거 같다.
‘다음엔 더 좋은 여행을 하게 될 거야’
그런 기대를 품게 만드는 여정이었다.

이제 다시 육지로 돌아간다.
밴쿠버 공항에서 만날 가족들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에 반가움이 솟구쳐 올라오고 있다.
배에서 내리는 발걸음마다
다가오는 캐나다 여행에 대한 가벼운 설렘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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