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나에게 왜 위로였을까

전래온화 Brandnote_01

by 전래온화

끌림은 이유보다 먼저 온다

사실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는 것 같다.
감정이 먼저 동요하고, 그 다음에야 우리는 그 감정의 이유를 찾기 시작하니까.


나는 어릴 적부터 전통이라는 분야를 좋아했다. 음악도, 옷도

한복의 아름다움에 끌렸고, 가야금을 배우기도 했었다.


또, 그 시절 내 꿈은 ‘한국의 월트디즈니가 되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한국만의 이야기가 담긴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은 상상하는 어떤 것이든 표현할 수 있는 세계였기에

내가 좋아하는 전통의 감성들을 마음껏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그냥 이유 없는 끌림이 있었던 거다.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끌림은 여전히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여백과 울림이 머무는 자리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전통 속에서도 특히 여백과 울림을 좋아했던 것 같다.

전통의 가락이나 의복, 공간을 보면 언제나 여백이 있다.

가락 속에는 음과 음 사이, 악기를 퉁길 때마다 길게 늘어지는 소리의 여유가 있고,
그 여백에는 묘한 울림이 함께 있었다.

한복의 넉넉한 소매와 맵시에는 몸의 선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흐름과 품이 담겨 있다.


한옥의 창은 벽보다 얇고,

마당이라는 빈 공간은 언제나 하늘과 바람을 품고 있었다.

가득 채우지 않아도 되는 그 빈자리들 속에서

나는 숨을 쉬었던 것 같다.


전통이라는 것은 수많은 시간이 켜켜이 쌓이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깊게 축적된 만큼 여러 면에서 깊이와 여유가 있다.

이러한 전통의 여백과 울림은 나에게 항상 낭만적으로 느껴졌고

삶에 품고 싶은 조각이되었다.


함께 살아가는 방식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전통이 나에게 왜 위로였는지가 조금씩 더 선명해진다.

옛 전통 건축 기법 중 ‘차경(借景)’이라는 말이 있다. 빌릴 차(借), 경치 경(景).
자연의 경관을 건축의 일부처럼 활용하는 방식이다.


이 단어에서 알 수있듯, 전통은 결코 독단적이지 않았다. 늘 조화롭고, 크게 보며, 함께하려 했다.

항상 그곳엔 기다림이 있었고, 여유가 있었고, 나눔이 있었다.


‘나’보다 ‘우리’를 더 오래 생각해 온 방식이 옷에도, 생활에도, 공간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나는 느꼈다.


서로의 하루를 지켜주는 '우리'

사실 나도 그렇고,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개인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 역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나의 속도를 지키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개인적으로 살아도 우리는 결국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을 잘 살아주었기에
내 삶도 어딘가에서 무사히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내가 먹은 음식, 사용한 생활용품,

그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오늘’이 만든 결과였다.


누군가의 성실한 하루가 나의 하루를 더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하루를 지켜주며 각자의 오늘을 잘 버티고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꾸만 상실되는 ‘우리’라는 감각이
전통 속에서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아마 그래서, 나는 전통이 좋았던 것 같다.

그것은 나에게 ‘우리’였고, 여백이었고, 울림이었고, 그리고 아주 조용한 위로였다.


그리고 그 위로에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전래온화를 만든다

그 조용한 위로와 평안을 '우리'들에게
전래온화라는 이름으로 천천히 입혀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전래온화 : 이야기로 온기를 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