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출장을 다녀오며 밀려드는 생각들
건축은 답이 없다.
나는 답 없는 세계에서,
자꾸 정답을 묻고 있었다.
건축설계에서 피할 수 없는 대지분석.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양양을 찾았다.
머릿속이 미처 끝내지 못한 일들로 가득 차
조바심이 난 탓에 전혀 기쁘지 않았다.
대형 설계 사무소를 다니면서
해변가 앞에 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는
희소성이 있는, 흔치 않은 절호의 찬스.
알아. 아는데,
왜 이렇게 난 지쳐버렸을까
입사한 지 7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린 현재,
더 이상 사회 초년생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애매한 경력 속에서,
대지와 용도가 바뀌면 모두 새로워지는
건축이라는 늪에서,
나는 언제쯤 능숙해질 수 있지?
양양 가는 길만큼이나
내 앞길이 막막하지만,
에라이
이왕 가는 거,
기분 좋게 바다나 보러 가자.
역시 바다는 바다다.
동해바다는 파도가 거칠어서 좋다.
남해와 서해와는 다른,
힘이 느껴지는 파도.
끝없이 흐르는 해류.
모래사장에 남은 포말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음 달에 이직을 결심한 후배가 떠올랐다.
2년 차부터 함께했던 동료가 떠난다니
내 회사생활의 추억이 통째로 사라지는 기분.
희노애락을 함께 나눴던 이와의 이별을
쉽게 수긍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며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다 보니,
이제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쯤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거늘,
난 여전히 헤어짐이 두렵다.
혹시 나만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란 존재는 미약하다 못해, 파도에 휩쓸려버린다.
언제부터 난 주위로부터 휘청이기 시작했는가.
끊임없이 밀려드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파도에 몸뚱이를 던져버리고 싶어.
속절없이 파괴될 것만 같은 불안 속에서,
그저 흐르는 해류에 몸을 맡기고 싶어.
불안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구원자를 기다리지만,
끝내 손을 뻗지 못한 채로 익사하겠지.
나이가 들수록,
나는 점점 더 많은 핑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방향성을 잠시 잃어버린 탓에,
업무에 지쳤다는 이유로,
젊은 날의 열정과 호기심을 잃어버린,
껍데기뿐인 내가 남겨져있다.
다시 많은 곳을 직접 발로 딛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야만 해.
그래야만 슬럼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만 같다.
신체의 감각으로 직접 체감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
로드뷰나 가상공간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현장의 공기와 결을 느끼는 것.
그 정보를 토대로,
대지를 재해석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가는 일.
오랫동안 잊고 있던,
내가 건축을 사랑했던 이유.
땅을 보는 순간, 상상했던 건물의 스케일과 이미지를 가상세계에 앉혀보며 놀라고,
이야기를 나누며, 창작에 대한 고통과 기대를 동시에 품어야만 하는 기나긴 여정.
다시 힘을 내보자.
업무의 연장선상이지만,
동시에 치유되는 시간.
바닷가를 품은 대지를 바라보며
10년 전의 내 모습도 찾아본다.
아마 누구나,
삶의 한복판에서 잠시
방향을 잃을 때가 있을 것이다.
대지를 처음 마주할 때처럼
낯설고 막막하게.
하지만 그 낯섦은 어쩌면,
다시 꿈꾸기 위한 시작일지도 모른다.
오늘 나의 이 발걸음이,
누군가의 멈춰 선 마음에도
작은 움직임이 되어 닿기를 바라며,
난 그저 현실에 짓눌린 직장인이지만,
내일이 오면 또 흐리멍덩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수화기 너머 협력사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겠지만,
기꺼이,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건축의 세계 속으로
선을 그으러 들어가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