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MG: 헤겔과 초기 마르크스

서독 비주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청년 마르크스 비판

by AGITBURO

헤겔과 초기 마르크스

- 마르크스주의 그룹 (Marxistische Gruppe, MG):

1974년 서독에서 결성된 이 비주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90년대 초 이들이 해체되기 전까지, 독일의 급진 좌파 진영에서 곧잘 논의되는 부르주아적 개인의 심리학》, 《부르주아 국가 등의 팜플렛과 더불어 정치 신문과 여러 논문들을 발행하였다. 그러나 독일 연방헌법수호청(BfV)에 의한 지속적인 감시와 잇따른 훼방으로 인해 1991년 이 그룹은 결국 해체되었으며, 오늘날 정치계간지 게겐슈탄트풍크트(GegenStandpunkt)가 이들을 계승하여 이론적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다. MG의 헤겔비판 논문의 부록으로 실린 이 에세이는 헤겔의 국가론을 비판하며 과학적인 역사관, 소위 '유물사관'을 모색하려 했던 청년 마르크스의 노고의 비판적 평가이다.


원문: Nachtrag: Hegel und der frühe Marx, Das Hegel Papier, Marxistische Gruppe

번역: AGITBURO

본 에세이의 마르크스 인용 구절 중 일부는 보다 원활한 이해와 원문과의 연속성을 위해 용어의 일관성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으로 번역되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원어 표현을 병기하였다.


《헤겔과 초기 마르크스》


헤겔 철학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자 하는 이는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서 유용한 통찰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이 “초기 저작”에는 청년 마르크스가 그의 스승과 연결되고, 따라서 그로 하여금, 특히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상당히 왜곡된 관념을 지니도록 하였던 일정 철학적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현실이 줄곧 그렇듯이, 이러한 왜곡된 관념들은 그에게 인본주의적 역사철학자라는 의심쩍은 명예를 안겨주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그의 실질적 통찰이 무엇이었는지 알고자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변화를 위해서라도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논점들은 이곳에 기술되고 해설될 것이며, 나머지는 ‘합당하게’ 버려질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후일 헤겔 “특유의 해명 방식”과는 가끔씩 “시시덕”거리기만 하던 마르크스가 어떻게, 그리고 왜 철학과 단절하여 현실 과학에 몰두하였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1. 유용한 통찰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마르크스는 헤겔의 《법철학》을 절 단위로 분석하면서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발견을 하였는데, 헤겔이 국가의 학으로서 제시한 것은 철저히 비과학적인 과정의 산물이었다는 점이다. 그의 연역법 전체에서 헤겔은 첫째로 국가를 논리적 범주와 동일화하며 이를 “보편”, “필연”, “실체” 등으로 파악하게 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헤겔은 고찰의 발단부터 그의 대상의 특수성에서 추상을 하게 된다. 둘째로, 헤겔은 이 지점에서부터 국가와 그 규정들에 대한 지속적인 사유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논리적 범주와 그 본질에 대하여 사유해 나가며, 그리하여 국가의 개념을 산출하는 것이 아닌, 기껏해야 논리적 범주를 산출하게 된다. 셋째로, 그렇게 이 논리적 범주의 추가적 발전을 국가의 규정과 동일화하며 그는 이 규정을 연역해 냈다는 외형을 만들어내는데, 실제로는 이 논리적 추상을 그저 그가 시작부터 추상했던 것의 내용으로 변환하는 것일 뿐이다.


자세하게는 다음의 예와 같다. 《법철학》의 269번째 절에서 헤겔은 “국가 유기체”를 다루는데,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이 유기체는 이념(Idee)의 그 차이로의 발전이다 […]”

이에 대하여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정당한 평을 내린다:

“‘이 유기체(즉, 국가, 정치적 구성)는 이념의 그 차이로의 발전이다…’라고 할 때 나는 여전히 그 정치적 구성의 특수한 이념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이 문장은 동물적 유기체에 있어서도 정치적 유기체와 마찬가지의 동일한 진리를 내포하며 표현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동물적 유기체를 정치적 유기체로부터 구분하는가? 이 일반적 규정은 이를 보여주지 않는다. 종차(differentia specifica)를 제공하지 않는 해명은 해명이 아닌 것이다.” (헤겔 법철학 비판, MEW 1, 210쪽)


헤겔은 “국가 유기체”를 다룬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가 말하는 바는 상당히 다른 것을 입증한다. 그는 ‘유기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명을 한다. 따라서 국가와 그 고유의 특성은 애초에 배제되어 있다. 그가 유기적 연결성에 대하여 말한 것은 따라서 《법철학》의 영역이 아니라 《논리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유기체의 구별되는 측면들이 유기체의 본성에서부터 부상하여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것은 순수 동어반복이다.” (헤겔 법철학 비판, MEW 1, 210쪽)
“국가의 규정의 본질은 [헤겔에 따르면] 이들이 국가의 규정들이라는 것이 아닌, 이들의 가장 추상적 형태에서 이들이 논리적-형이상학적 규정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철학》이 아닌, 《논리학》에 진정으로 걸맞은 것이다. 사상이 정치적 규정에 통합되었다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정치적 규정이 추상적 사상에 용해되는 것이며, 이것은 철학적 과업이다. 사태(Sache)의 논리가 아니라 논리의 사태가 바로 철학의 순간이다.” (헤겔 법철학 비판, MEW 1, 216쪽)

위 인용된 논증을 바로 잇따르는 같은 문단에서 헤겔은 다음과 같이 계속한다:

“[유기체의] 이러한 구분되는 측면은 따라서 다양한 권력이며 그들의 직무 및 활동이다 […]; 이 유기체는 ‘정치적’ 구성이다.” (법철학 269절)


헤겔은 이 구체적 내용을 어디서 얻은 것인가? 유기체의 부분들이 곧 국가의 다양한 권력—군주, 정부, 입법부—이라는 것을 그는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이 유기체는 곧 정치적 구성이라는 것을 그는 어떻게 알 수 있었나? 마르크스는 같은 의문을 제기하였다:

“이 ‘따라서’라는 단어를 통하여 귀결, 연역, 발전의 외형이 산출된다. 오히려 ‘어떻게?’라는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국가 유기체의 다양한 측면들’은 ‘다양한 권력’이고 그 ‘직무 및 활동’이라는 것은 경험적 사실이다. 이들이 ‘유기체’의 구성 요소라는 것은 철학적 ‘술어’이다.” (헤겔 법철학 비판, MEW 1, 211쪽)
“어떻게 [헤겔은] […] ‘이 유기체는 정치적 구성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였는가? ‘이 유기체는 태양계이다’는 또 안될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이후에 그가 ‘국가의 다양한 측면’을 ‘각기 다른 권력’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문장, ‘국가의 다양한 측면은 각기 다른 권력이다’는 경험적 사실이며, 철학적 발견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또한 이는 결코 이전의 발전 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유기체를 ‘이념(Idee)의 발전’으로 규정하고, 이념의 상이를 일컬으면서 ‘각기 다른 권력’이라는 구체를 끼워 넣으며 마치 특수한 내용이 발전된 것과 같은 환상이 부상하게 된다 […]. 그가 의도한 실질적 결과는 정치적 구성으로서의 유기체의 규정이다. 그러나 유기체의 일반적 관념(Idee)에서부터 국가유기체 혹은 정치적 구성이라는 특수 관념을 잇는 다리는 구축되지 않았다 […]. 실로 헤겔은 ‘정치적 구성’을 ‘유기체’라는 일반적 추상 관념으로 용해하고, 이 ‘일반적 관념’에서부터 특수를 도출해 냈다는 외형 내지 본인의 견해만을 낳았을 뿐이다. 그는 그 산물, 그 관념의 술어(Prädikat)를 그것의 주어(Subjekt)로 치환했다. 그는 대상에서부터 사상을 도출하지 않고, 논리의 추상적 영역에서 풀이되며 그 자체로서 이미 완전한 사상에 따라 그 대상을 도출하였다.” (헤겔 법철학 비판, MEW 1, 212쪽)


따라서 일반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헤겔의 이론적 속임수는 한편으로 그의 연역법이 내포하는 필연은 사태의 규정성에서 추상되어 버린 논리적 본성이며, 따라서 이는 ‘이것의’ 필연이 아니라는 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연역의 산물로서 제시된 사실적 내용은 이 추상적 논리적 필연에서 부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경험상 받아들여진 것이라는 점에 놓여있다:

“이는 내향적이고(esoterische) 외향적인(exoterische) 이중적 서사이다. 그 내용은 외향적 부분에 있다. 내향적 부분은 늘 국가 내에서 논리적 개념의 역사를 재발견하고자 한다. 그러나 바로 이 외향적 측면에서 비로소 실질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헤겔 법철학 비판, MEW 1, 206쪽)


2. 헤겔이 학(Wissenschaft)으로서 명한 이 과정을 분석하며 마르크스는 어떤 지적 요구—혹은 지식의 요구—가 이 과정에서 충족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경험적 현실은 있는 그대로서 받아들여지게 되며, 심지어는 이성적인(vernüftig) 것으로서 표명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이것 고유의 이성(Vernunft) 때문이 아니라, 경험적 사실은 그 경험적 존재에서 자신과 다른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시작할 때의 사실은 있는 그대로 파악되지 않고, 신비화된 결과로서 파악되는 것이다.” (헤겔 법철학 비판, MEW 1, 207쪽)


이 과정이 적용되는 “경험적 현실”—법, 국가 등—은 결국에 ‘이성적인 것으로서 표명된다’. 이것에서 마르크스가 주목할 만하다고 여긴 점은 이것이 “고유의 이성”, 그 고유성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도리어 “다른 의미”가 이것에 부여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헤겔이 이것에 부여하는 이 추상적 논리적 본성은 그 고유성 자체가 추상되어 버린 것이다. 이 자신의 고유성에서의 추상이라는 관점에서, 실존하는 세계는 성공으로서 선언된다.

마르크스는 이 모순이 단지 헤겔의 우연적 실수였을 뿐이었다고 받아들이기를 정당하게 거부하였다. 앞서 보았듯이, 그는 이 “오류”가 헤겔의 방법이었음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헤겔의 철학에서 “철학 일반”의 원리의 부상을 보았다.

“다른 철학자들이 해온 것—자연과 인간의 삶의 특수한 측면들을 자기의식의, 즉 추상적 자기의식의 순간으로서 파악하는 것—을 헤겔은 철학의 활동으로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학은 절대적이다.” (경제학-철학 수고, MEW 40, 574쪽)


마르크스에 따르면 헤겔은 이미 다른 철학자들이 하고 있던 것을 본인의 철학의 원리와 신조로서 표방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실로 모든 것을, “자기의식의 순간으로서” 파악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현실을 대상적인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자기의식의 순간으로서” 제시하였다. 철학하는 지성은 현실에서 자신을 재발견하고자 하며, 이 요구에 순응하는 표상을 낳는다. 따라서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 헤겔은 자신의 철학을 통하여 현실은 실현된 논리임을 선언한다; 현실은 이성적 인간의 사상을 지배하는 규칙에 동일하게 지배되는 것으로서 묘사되는 것이다.


이는 철학자들에 있어 특유의 현실과의 관계를 조성한다. 그들이 관여하는 것은 세계를 그들 자신과 순응하게 하는 것이다—다만 오직 ‘사유’의 영역에서. 이는 순수 이론의 과업이다. 따라서 현실은 있는 그대로 방치된다. 현실을 순응하게 만드는 것은 실천적 활동이다. 그러나 이는 철학자들이 관여하는 사태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실천적 활동의 결실을 ‘위조하는’ 이론화를 추구한다. 그들은 마치 그들의 의지, “이성” 등에서 잉태된 듯 한 현실의 상을 구축한다.


철학자들이 그들의 대상을 무엇으로 설정하든지 간에 결국에는 늘 그들의 자기의식을 일컫고 있었다는 이 특이성은, 마르크스가 말하듯이, “헤겔 철학의 발상지인 《현상학》에서 가장 명확하게 나타난다” (경제학-철학 수고, MEW 40, 572쪽). 이 저작은 어떻게 자기의식이 자신에 순응하는 의식에 도달하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명시적으로 다룬다:

“만일, 예를 들어, 부, 국가 권력 등이 인간존재에서 소외된 본질로서 파악된다면 이는 오직 사유의 형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대상들이 ‘어디에서’ 소외되었으며 ‘누구에게’ 현실의 추정과 함께 나타나는가에 대한 것은 정확히 추상적 사유이다. 철학자는—그 자체로서 소외된 인간의 추상적 형태인데—자신을 소외된 세계의 척도로 만든다. 외화(Entäusserung)의 역사 전체와 외화의 철회 전체는 따라서 추상적, 즉 절대적 사유의 생산 역사, 논리적으로 사변적인 사유의 생산 역사일 뿐이다. 이 외화와 그것의 지양(Aufhebung)에서 곧 실질적 흥미가 형성되는 소외(Entfremdung)는 즉자와 대자 간의 대립, 의식과 자기의식, 대상과 주체 간의 대립이며, 다시 말하자면, 추상적 사유와 감각적 현실 혹은 사유 그 자체 ‘내부에’ 있는 현실적 감각성 간의 모순이다.” (경제학-철학 수고, MEW 40, 572쪽)


헤겔은 “부, 국가 권력 등”을 ‘인간 본질에서 소외된 본질(Wesen)’로 본다. 철학적 과업은 이 소외를 없애는 것, 즉 “이 외화를 지양하는 것”이다. 소외의 모든 철학적 진단은 현실—화폐, 국가 등—이 본질적으로 “인간 본질”에 있어 외적인 것이 아닌, 단지 인간들에게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따라서 인간존재는 이러한 것들이 실제로 자신들과 부합하는 것이며,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자신들의 본성의 결과였음을 그저 ‘이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제기한 다음 질문은 상당히 성공적인 통찰이었다: “과연 어디서부터 이 대상들이 소외되었는가?”—다른 표현으로는, 자신을 세상에서 외적인 것으로 파악함과 동시에 그곳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이 “인간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다음과 같다: “철학자는—그 자체로서 소외된 인간의 추상적 형태인데—자신을 소외된 세계의 척도로 만든다.” 따라서 철학자는 자신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정반대를 행하게 된다. 세계에 대해 그가 형성하는 의식, 그가 실로 정당히 현실의 자기의식적 주인이라고 간주하는 환상은 현실과의 비교를 융화불가능으로 만들어 버릴 그 모든 것들을 세계에서 벗겨 냄으로써 세계에 대한 자기의식을 조정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척도”!). 그의 척도는 “추상적 자기의식”이며, 그가 경배하는 “인간 본질”은 사유를 넘어선 “추상적 형상”이다. 그리고 심지어 논리적 추상에 한해서라도 이는 가능하지 않은데, 주체가 자신에게 설정하는 여느 목적은 그가 심히 몰두해 있는 현실과의 조화로운 관계라는 이념과 이미 대립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철학자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서 경배하는가 하면, 이들이 지닌 욕구는 동물적이라며 경멸한다. 그리고 무엇이 사유를 경배의 대상으로 만드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의 예시를 들곤 한다. 그들의 역사는 실로 다음과 같이 읽힌다: “추상적, 즉 절대적 사유의 생산 역사, 논리적으로 사변적인 사유의 생산 역사”. 정말이지 그들은 마치 모든 것이 언제 어디서나 “유일자”, “진리”, “나 = 나”, “물자체”, “존재”, “존재자의 존재” 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굴곤 한다.


3. 정확히 현실에 대한 이 철학적 입장, 특히 헤겔의 《현상학》에서 표현된 바와 같은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긍정적 측면을 도출해 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믿었던 그것이다:

“헤겔의 《현상학》의 위대함은 […] 헤겔이 노동의 본질을 파악하여 대상화된 인간—현실적, 그렇기에 참된 인간—을 자신의 노동의 산물로서 파악한다는 점에 있다. […] 노동은 외화 속에서의 인간의 대자적 생성(Fürsichwerden), 혹은 소외된 인간으로서의 대자적 생성이다. 헤겔이 알고 인정한 노동은 추상적인 정신적 노동이다.” (경제학-철학 수고, MEW 40, 574쪽)


앞선 비판을 고려하면 이 평가는 어느 정도 당혹스러운 것이다. 현실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자연을 전유한다는 통찰이 과연 헤겔의 의도였는가? 하지만 마르크스 본인마저 헤겔이 “추상적인 정신적 노동”만을 “알고 인정한”다고 기술한다—마치 헤겔은 실제로는 노동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음이 이미 이것 자체로 해명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이는 마르크스 본인의 해석이며, 곧잘 명료하게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고, 철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판단에서도 명확하게 도출되지 않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을 고유의 통찰을 가졌으나 일관성 없이 이를 실행하는 자로서 대한다. 인간이 자신을 자신의 생활 조건의 주체로 만든다는, 철학이 낳은 허상을 있는 진중하게 받아들인 그는 이 허상을 철학에 진정한 목적으로서 부여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자신의 관점을 철학에 투영한다. 분명 그는 철학적에서처럼 고작 사유의 영역에서 허구적으로 인간이 자신의 조건에 있어 주체가 되어야 할 뿐이 아니라, 이를 실천적으로 행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분명한 것은 그가 이를 철학의 “요구” 내지 “교훈”으로서 제시하는 것에 큰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의 정당성을 특히 동시대 철학가들(청년 헤겔학파)의 종교비판적 어조에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독일에 있어 종교의 비판은 본질적으로 완성되었다 […]: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지양은 그들의 실질적 행복의 요구이다. 자신의 조건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라는 요구는 환상을 필요로 하는 조건의 포기의 요구이다. 따라서 종교의 비판은, 맹아적으로는, 그 후광이 종교인 눈물의 골짜기에 대한 비판이다.”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 MEW 1, 378쪽)
“종교의 비판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존재라는 교훈으로 끝이 난다—따라서 인간이 천대받고 예속되고 버림받으며 멸시되는 존재가 되는 모든 관계들을 전복하라는 정언명령과 함께 끝이 [나는 것이다] […].”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 MEW 1, 385쪽)


여기서 마르크스는 독일철학이 종교의 비판을 완수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에서 그는 “요구”를 도출하고 “교훈”을 끌어낸다. 그의 결론은 그 자체로서는 전적으로 옳은데, 만일 모든 “인민”이 대처해 나가야 할 사회적 제 조건들에 대해 자신들을 크게 기만하고 있다면, 그리고 오직 자신을 크게 기만해야만 대처가 가능하다면—즉 인민이 집단적으로 “환상적 행복”을 상상하고, 현실 조건 위에 “후광”을 씌우기 위하여 “가장 고귀한 존재” 아래로 자신을 관념적으로 격하한다면—그렇다면 그 결론은 그러한 관념적 이상화를 필요로 하는 제 조건들에 대립한다. 그러나 이 결론은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이는 마르크스가 도출한 것이었으며, 그는 가히 이 공을 철학자들에게 돌리지 않아도 될 작자였다. 종국에 그는 환상과 “환상적 행복”을 걸출하게 생성한다는 혐의로 철학자들을 비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실제로 그는 철학과 종교 간의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철학과 종교 간의 실질적 관계에 대한 진상을 마르크스에서 얻을 수 있다. 철학이, 특히 그 당시 종교에 비판적인 것으로서 포장된 유형의 철학들이 자신을 종교 위에 위치시키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이를 인식하는 교활함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을 잘 나타내는 헤겔에 관하여 마르크스는 그 다소 “표면적인 비판”(MEW 40, 581쪽)을 비판하는데, 이 표면성은 한편으로는 종교적 상상의 허언과 (자신의 자유의 영역을 현실 너머에 위치함으로써 자신의 자유의 의식을 보존하는) 종교인의 자기기만을 폭로한다는 점에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폭로된 자기기만의 목적, 즉 자유의 상상이 철학자에게는 그럴듯해 보이기에 이 기만이 긍정된다는 점에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헤겔은 종교적 기만을 꿰뚫어 보는 철학만을 그 기만 자체보다 더 높이 평가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철학적 ‘꿰뚫음’의 현학성을 꽤 정확하게 요약한다:

“[…] 이성은 비이성으로서 비이성 안에서 자신에게 머문다” (헤겔의 변증법과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 MEW 40, 581쪽)

“비이성으로서[의] 비이성”은 인지된 비이성이다. 만일 이를 이 인지에서 유지한다면 이는 이성적 사고의 체계에서 비교적으로 절대적인 정신으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다.


따라서 철학자들이 전장에 나가지 않으려는 것은 그들의 ‘일관성의 부재’가 아니다. 도리어 이들의 비일관성을 질책하면서도 “철학의 과업” (MEW 1, 379쪽)을 해결하려는 청년 마르크스에 있어서의 ‘일관성의 부재’일 것이다. 이 비일관성은 철학의 결과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절실하게 옹호한 ‘철학 비판’에 있는 것이다.


그가 철학을 역사의 뒷간에 버리고자 했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으며, 그는 이것에 있어 의심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결코 그가 철학자들에게 많은 공을 돌렸다고 할 수는 없다. 도리어 그는 그들의 개념으로 그들을 직면하였다. 다만 철학의 지양을 그것의 실현이자 완성으로서 제시하는 것을 그는 고집하였다. 철학과의 정당한 결별과 과학으로의 전념을 철학적 사안의 고양이자 그것의 최대의 개화로 내세우려는 가식을 마르크스는 결코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철학적 미사여구와 함께 정치적으로 야심적인 사상가들에게 본인의 입장은 철학적 정당성의 위엄이 깃들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 철학을 실현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지양할 수 없다.”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 MEW 1, 384쪽)

그리고 당시 자신들의 철학을 꽤 변혁적이라고 간주하던 청년 헤겔학파에게는 정반대를 말한다: 철학적 사안은 단지 이를 그대로 방치하기로 결심하는 선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이들의 근본적인 결함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이들은 철학을 지양하지 않고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 MEW 1, 384쪽)

그리고 둘 다 함께:

“철학이 ‘프롤레타리아트’에서 자신의 ‘물질적’ 무기를 발견하듯이, 프롤레타리아트 또한 마찬가지로 철학에서 자신의 ‘정신적’ 무기를 발견한다 […]” (헤겔 법철학 비판 서설, MEW 1, 391쪽)


4. 따라서 마르크스는 철학에 대립하는 자신의 입장을 철학의 비판을 통하여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양립할 수 있는 것처럼, 이를 철학적으로도 제시하였다:

“하늘에서 대지로 내려오는 독일철학과는 정반대로, 우리는 대지에서 하늘로 올라간다 […]. 인간의 뇌에서 형성되는 환영들조차 필연적으로 그들의 물질적 생활과정의 승화물이며, 이는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하고 물질적 전제들에 구속되는 것이다. 도덕, 종교, 형이상학 및 이데올로기의 모든 나머지 것들과 이들에 대응하는 의식의 형태들은 더 이상 독립적인 외형을 유지하지 않는다. […] 의식이 삶을 규정하는 것이 아닌, 삶이 의식을 규정한다.” (독일 이데올로기, MEW 3, 26쪽)


철학자들이 진리로서 받들어 수호하는 것은—“도덕, 종교, 형이상학 및 이데올로기의 모든 나머지”—마르크스에 의하면 그저 ‘현실적 토대’의, 이를테면 “현실적 생활과정”(wirklichen Lebensprozesses)의 ‘관념적 표현’ 일뿐이다. 이는 현실적 생활을 본인의 이념의 표현으로서 이해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다분히 기막힌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마르크스의 답변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마르크스가 헤겔에 있어서 보여준 바와 같이, 만일 자유 의지, 실체 및 유일신 등의 추상적 철학 이념이 국가, 부르주아적 경쟁, 가족 등의 개념에 도달할 이론적 징검다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이라면, 단순히 그 관계를 전도(顚倒)시키는 것 또한 해명이 될 수는 없다. 여기서도 마르크스는 철학자들과 마찬가지의 비약적이고 근거 없는 발언을 한 것이다. 과학적으로 보자면, ‘표현’, ‘토대’ 등의 단어는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의도의—이를테면 내용을 통해 연관성을 입증하려는—선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표현의 전환으로 이 노력을 회피하고자 했던 사실은 명백하다. 따라서 그는 본인의 진의를 기술하기보다, 이데올로기적 의식과 사회적 제 조건 간의 관계에 대해 이미 종결된 판단을 제시한다. 이는 “승화물”이며, “독립적”이지 않은 것이고, 그렇기에 그 고유의 특질에서 더 이상의 해명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그저 즉시 다른 것으로 용해될 뿐이다. 마르크스가 여기서 얼마나 안일하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의 논증을 특별히 살펴보며 알 수 있다:

“유대주의의 현세적 토대는 무엇인가? ‘실천적’ 요구, ‘사익’이다. 유대인의 현세적 신앙은 무엇인가? ‘흥정’이다. 그의 현세적 신은 무엇인가? ‘돈’이다.”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MEW 1, 372쪽)


여기서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의 비판가로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이를테면 그것이 유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자로서 말한다. “신”이 진정 무슨 의미인가?—바로 돈이다! 유대교 정신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걸 공부할 게 아니라 그냥 경제학을 공부하라.


하지만 마르크스는 단순히 주제를 전환하여 다른 것에 시선을 돌리려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 주제의 전환을 어떻게 이념과 현실이 서로 관계하는지에 관한 철학적 질문에 대한 기여로서 제시하고자 하였다. 그가 철학의 결을 거슬러 읽어내고자 했다고 하지만, 철학자들이 “정신이 현실을 만든다”라고 했다면, 마르크스는 서술을 뒤집어 “현실이 의식을 만든다”라고 했는데, 오류의 반전이 궁극의 진리가 아님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데올로기 형성의 영역에서 그것의 “독립적 외형”을 제거하기 위해, 이를 해명하는 대신 이를 직접적으로 그 토대로서 전환시키고자 했던 마르크스의 관념은 더 정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에는 사람의 머리에서 허위 사상을 만드는 것은 그 “조건들”이 아니라, 이 조건들과 관계 짓는 의지와 의식이 주어진 개인들이다. 마르크스 본인도 이데올로기적 의식의 전형은 바로 객관성을 상대로 사상이 “자체적인 삶”을 가지게 되어 “현실의 무언가를 상상하지 않고서도 실로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는 것 […]” (독일 이데올로기, MEW 3, 31쪽)에 있다고 믿었는데, 이들은 해명보다는 기발한 위장에 더 흥미가 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히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제형의 세계의 독립성을 부인하는 것은 상당히 부적절하다.


그러나 또 다른 함정이 있다. 만일 이데올로기가 그들의 현실적 토대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라면, 이것은 얼마나 변형되고 왜곡되어 있든지 간에 다분히 그 토대를 표현하는 것임을 뜻한다. 이는 진상으로 나아갈 올바른 해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인의 입장을 제시할 때 마르크스는 공공연하게 그가 거부했던 “환영들”에서부터 도출하기 시작하였다.


“정신의 형태로만 나타나는” 철학자들의 “비(非)객관적인, 정신적 인간”을 “객관적 인간, 현실적, 그렇기에 참된 인간”으로 전환함으로써 그는 출발한다 (헤겔의 변증법과 철학 일반에 대한 비판, MEW 40, 574쪽). 그는 “인간 본질의 실질적 소외”를 폭로하기 위하여 이를 분석의 새로운 중심점으로 설정한 것이다. 철학과 그 정신적 자손들로부터 거리를 두려 했던 마르크스는 우선 철학적 반성의 ‘주어’인 “인간 본질”을 유지하며 이것을 현실의 척도로서 간주하였다. 그가 이 주어에서 변경한 것은 바로 그 ‘술어’이다: 그가 다루고자 했던 “인간 본질”은 ‘현실적’인 것이어야 했던 것이다.


마르크스가 “인간”은 “순수 자연적 상태(puris naturalibus)에서 활동하지 않는 철학적 추상이며, 이는 하나의 이념으로서 존재하는 지배적 조건들을 인간성으로서 간주하게 하는 목적만을 수행해 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사람이 무엇이고 그들의 관계가 무엇이었는지는 의식에서 인간의 표상으로서, 그의 존재양식 혹은 추가적 개념 규정의 표상으로서 나타났다.” (독일 이데올로기, MEW 3, 167 쪽)


마르크스는 따라서 자신의 관념의 허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현실적’이라는 술어를 삽입함으로써 이로부터 거리를 두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현실적’이라는 수식어로 그것에게 세례를 해주었더라도 그는 여전히 “인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세례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재한다고 마르크스가 단언했던 “현실적 인간 본질”은 그가 거부한 철학자들의 추상적 형태보다도 결코 더 구체적인 것이 아닌데, 이 ‘현실적’ 마저도 사실 추상적인 술어일뿐더러, ‘현실적 인간 본질’ 또한 정확히 하자면 그저 하나의 이념이기 때문이다. 이후에 철학적 추상과 대비하여 자신의 대상이 얼마나 더 구체적인지를 강조하며 장담하던 다수의 경우들을 볼 때, 마르크스 역시 분명 이 점을 눈치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전제들은 자의적인 것, 도그마가 아니라, 그저 상상 속에서나 제외(abstrahieren)할 수 있는 현실적 전제이다. 이것은 현실적 개인들이요, 그들의 활동이며, 이미 주어진 것들을 비롯하여 그들의 활동을 통해 생산되는 그들의 물질적 생활 조건이다. 이러한 전제들은 따라서 순수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것이다.” (독일 이데올로기, MEW 3, 20쪽)
“따라서 사실로 말하자면, 일정한 양식으로 생산적 활동을 하는 일정한 개인들은 이러한 일정한 사회적, 정치적 관계에 들어서게 된다. 경험적 고찰은 개별적 사안에 있어, 신비화나 사변 없이, 사회적 및 정치적 편제와 생산 간의 연관성을 경험적으로 드러내어야 한다.” (독일 이데올로기, MEW 3, 25쪽)
“사변이 멈추는 곳에서—즉 현실적 생활에서—비로소 현실의, 실증적인 과학이 시작되는 것이다 […]” (독일 이데올로기, MEW 3, 27쪽)


이제 비로소 과학으로 전환과 함께 현실을 해명하겠다는 의도의 선언은 여전히 ‘과학’ 그 자체가 아니다. 그리고 철학과의 구분을 확언하기 위한 “현실적”, “일정한” 등의 단어의 반복적 사용은 그러한 구분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실로 이보다 더 모호하고 무용한 과학의 흉내가 있기는 힘들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철학과 궤를 같이 한다.


5. 그렇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현실에서 “인간”의 관념을 모색할 때, 그와 함께 과학은 출발하지 않으며, 사변이 그와 함께 멈추는 것도 아니다. 그가 “현실 인간 존재”에 대하여 저술한 것은 사실 “경험적 고찰”의 기술도 아니었고, “무(無)전제적” 연구의 산물도 아니었으며, 심지어는 “현실적 생활과정의 연구”에서 도출한 것도 아니었다:

“전제를 지니지 않는 독일인들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인간의 실존과 따라서 모든 역사의 제1 전제, 즉 ‘역사를 만들’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이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확립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삶이라 하면 무엇보다도 먹는 것과 마실 것, 거주지, 의류 및 그 외 여러 가지를 포함한다. 최초의 역사적 활동은 따라서 이러한 요구들을 충족하는 수단의 생산이요, 물질적 생활 그 자체의 생산[이다] […] (28쪽). 두 번째 전제는 충족된 요구 자체와 그 충족 활동 및 이미 획득된 충족의 수단이 새로운 요구들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 (28쪽). 그 세 번째 관계는 즉각적으로 역사 발전에 들어가는 것인데, 나날이 자신의 생활을 새로이 생산하는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들며 자신을 재생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남자와 여자와의 관계, 부모와 자식관의 관계, 즉 가족 […] (29쪽). 삶의 생산은—노동을 통한 자신의 삶의 생산, 그리고 번식을 통한,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의 생산을 비롯하여—이제 비로소 이중적 관계로서, 즉 한편으로는 자연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인 관계로서 나타난다 […] (29쪽). 네 가지 순간들, 즉 근원적 역사적 관계의 네 가지 측면들을 숙고한 이후에 비로소 우리는 인간이 또한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30쪽). 의식은 따라서 애초부터 사회적 생산물이며, 인간 존재가 실존하는 한 이는 그렇게 유지된다 […] (30쪽). 인구의 증가. 이는 분업으로 귀결되는데, 원래 성행위에 있어서의 분업에 불과했던 것이, 그 이후에는 자연적 소질 (예를 들어 물리적 힘), 욕구, 우연 등에 의하여 저절로, 혹은 “자연적으로” 분업이 부상한다. 분업은 물질적 노동과 정신적 노동이 분리되는 순간부터 진정한 분화가 되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의식은 실로 자신이 실존하는 실천의 의식이 아닌 어떤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이고, 현실의 무언가를 상상하지 않고서도, 실로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 (31쪽). 분업과 함께 등장하는 것은 분배, 즉 양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불균등한 노동 및 그 생산물의 분배이며, 그리고 […] 소유(Eigentum) 또한 등장하게 된다 (32쪽). 더욱이, 분업과 사적 소유는 동일한 표현이다. (32쪽).” (독일 이데올로기, MEW 3, 28-32쪽)


‘현실적 생활과정’의 과학적 연구에 몰두하고 근거 없는 사변을 하지 않겠노라 선언했던 마르크스는 그 연구에 착수하기에 앞서 “인간 역사 발전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추상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결론의 개요”를 제시하고, “우리가 이데올로기와 대립해서 사용하는 몇 가지의 추상들을” 강조하려 하였다 (독일 이데올로기, MEW 3, 27쪽). 이런 의미에서 그가 제시한 것은 어떻게 옛적의 로빈슨 크루소가 오늘의 인간이 되었는지의 서사의 형태로 풀어낸 “사변”이다.


모든 사회적 제 관계의 규정성, 따라서 모든 인간적 특성의 규정성에서부터, 그리고 모든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의 ‘어떻게’로부터 뽑아낸 “현실 인간”이라는 추상은 마르크스의 ‘로빈스네이드 (Robinsonade)’에서 어지간하게도 “현실적인” 역사적 인물로서 제시되는데, 그 서사에 따르자면 이 인물은 사회의 발명을 선행했기에 은둔자로서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은둔자는 자신의 욕구의 충족과 이를 위한 수단의 획득이라는 목적에 몰두하였다고 한다. 이 서사의 시작부터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먹고 마실 것 없이는 아무도 살 수 없으며, 따라서 이것이 없었다면 인간 역사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사실은 ‘결코’ 이 “욕구 충족”의 목적이 역사상 사회의 기본 목적이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확히 이 지점에서 마르크스의 서사는 출발한다. 욕구 충족이라는 바로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은둔자는 점진적으로 “다른 몇 가지”를 획득하게 된다: 그는 노동이 존재할 뿐 아니라 “정신적 노동과 물리적 노동”의 분화가 존재하는 가족 생활 및 사회를 얻게 되며, 그 안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조건에 대해 왜곡된 관념을 지니고, 이곳은 “불균등한 분배”가 일어나며 사적 소유가 지배하는 곳이다.


이 서사 전체에서 필연의 외형은 오직 역사적 틀을 통하여 부상한다. “그리고 이것이 잇따른다…” 식의 표현은 실체적인 전환을 대신하는 표현이고, 자세히 살펴본다면 이것의 해명은 상당히 어려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특수한 형태, 특히 사적 소유로 정의되는 형태를 “욕구 충족”이라는 추상에서 어떻게 도출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역사적 설화를 써내려 가는 와중에 마르크스는 구분해 놓는 것이 더 나았을 법한 것들을 동일시한다: 인간이 노동을 매개로 자신의 생계수단을 생산하는 것과 같이, 인간은 성관계를 매개로 “자신을 생산”한다, 자손의 출산 = 가족, 인구의 증가 = 분업, 그리고 마무리를 장식할: “더욱이, 분업과 사적 소유는 동일한 표현이다.” 마르크스는 정말이지 이렇게 주장하지 말았어야 했다.


필요하지 않지만 그것을 가진 유용한 부의 소유자가 그것을 필요로 하지만 가지지 않은 타인을 부에서 배제하는 것이 바로 부르주아 세계에서 분업의 ‘필요’ 없이도 봉사를 추출할 수 있는, ‘국가가 구속력을 지닌 강제의 지렛대’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마르크스가 전혀 몰랐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이는 타인을 위한 일생 동안의 봉사의 강요이며, 다른 이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불리기 위한 토대이다.


마르크스 본인이 꾸며 놓은 역사적 필연의 외형에 매료된 나머지 그는 헤겔에서 자신이 비판했던 것을 그대로 본인이 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였다: 그는 경험적으로 받아들인 사실을 연역의 결과로서 제시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저술에서 추상적 관념인 “인간”이 획득하게 되는 구체성은—그가 비판하는 이데올로기와 같이—사적 소유, 가족 등이 존재하는 역사적 조건의 관찰 가능한 세계이다.


따라서 그의 “현실 인간”이 활동하는 조건의 묘사가—욕구를 지니는 인간이 등장하고, 돌연 논의는 사적 소유자들 간의 경쟁으로 전환되는—마찬가지의 인류학적 논법을 사용하는 헤겔 《법철학》 “시민 사회” 장과 매우 닮아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저 이 결과를 가져다준 헤겔의 그릇된 결론을—“인간”의 “역사”로서 제시된—하나의 역사적 일화로서 전환한 것이다. 철학의 영토에서 이루어진 철학과의 결투는 결국 그를 물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담론에의 갑작스러운 등장이겠지만—부르주아 세계의 성과들을 인간의 본성 아래 묻어 두고 다시 이를 정신적으로 회수하려는 이데올로기적 필요에 의해 동요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그저 그렇게 했을 뿐이다—비록 정반대의 의도였지만. 인간 선사(先史)에 대한 그의 역사적 여정의 목적은 바로 부르주아 사회와 그 제도 및 관습을 역사적으로 ‘생성된 것’으로서 보여주는 것에 있었다.


그렇기에 마르크스는 “인간 본성”이나 이와 유사한 “영원적 관념들”에 호소하며 돈과 국가 권력이라는 익숙한 세계를 자연적 필연의 지위로 격상시키는 부르주아적 기교를 거부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이는 그저 철학적 논법의 ‘전도(顚倒)’에 그칠 뿐, 그것의 비판이 되지 않는다: 철학이 “영원”을 말하는 지점에서, 마르크스는 단순히 이를 “생성된 것”, 따라서 소멸할 수 있는 것으로서 선고할 뿐이다.


이는 충분하지 않다. 첫째, 사적 소유와 가족 생활 모두 이들이 역사적으로 부상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결코 이것에 영원성의 외관을 씌우는 것보다 더 정확한 묘사하고 할 수 없다. 둘째, 불변적 운명—이를테면, 사회적 조건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정당한 이유—을 호소하는 ‘이데올로기적 필요’는 이러한 조건이 엄밀하게는 다를 수도 있었다는 주장으로는 전혀 논파되지 않는다. 셋째, 이는 가장 중요한 것인데, 마르크스는 이 관점을 여전히 또 다른 “영원적” 철학 관념, 즉 “역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관념이 지닌 결점 역시 마르크스가 모르던 것이 아니었다. 어찌 됐건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학에 맞선” 완고한 선고를 표명한 바 있다:

“역사는 그저 선행하는 모든 세대들이 물려준 자재, 자본 및 생산제력을 착취하는 개별적 세대들의 계승에 불과하다. 한편으로 이들은 전적으로 변화된 상황에서 전통적 활동을 계속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옛 상황들을 전적으로 새로운 활동으로 개편한다. 이제 이는 나중의 역사가 그 이전의 역사의 목적지였다는 식으로, 예컨대 아메리카의 발견은 프랑스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던 것이라는 둥, 역사에 특정한 목적을 부여하는 식으로 사변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 […].” (독일 이데올로기, MEW 3, 45쪽)


역사적 전제조건을 잇따를 시대의 기반으로 설정하여, 후자를 전자의 목적지로서 격상시킴으로써, 연대순의 “계승”을 합목적적 목적론으로서 이해하는 역사학의 오류에 대한 이 통찰은 마르크스 본인이 자신의 이치에 부합할 때 이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을 저지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같이 하나의 사태, 즉 사적소유나 가족과 같은 역사적 현상을 규정할 때에 “생성되었다”의 술어와 함께 규정하려는 자에게는 생성의 과정, 즉 ‘역사 그 자체’가 주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더 이상 사태의 속성이 아니게 되며, 도리어 사태가 역사의 속성이 되는 것이고, 이는 따라서—심지어 마르크스식으로 보더라도—“구별되는” 고유의 규정적 기반과 “목적”을 지니게 된다.


6. 그는 “철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한]” (MEW 3, 34쪽) 이유만으로 국가와 시민 사회의 분리를 객관적으로 다루며 “소외”를 언급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는 현재의 상태의 지양을 철학적 역사 강령으로서 조성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현재의 상태를 비판하는 것, 즉 올바르게 비판하는 것과 그 비판의 실행을 어떤 역사적 필연으로서 조성하는 것은 다분히 구분되는 것이다.


첫 번째와 관련해서 마르크스는 헤겔의 《법철학》을 연구하고 비판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이르렀다. 헤겔이 국가는 곧 시민 사회의 “보편”이라는 점에 집요하게 매달리고, 이 숭고한 논리적 추상을 이용하여 시민 사회의 풍부한 개별적 이해관계들이 이 논리에 의하여 국가에서 경이롭게 대표되리라는 이념을 미는 동안, 마르크스는 이 보편이 그 개별적 측면들과 맺는 관계에서 지니는 고유성을 인식하였다:

“여기 ‘국가 자체의 절대적(즉자대자적, an und für sich) 보편’의 영역에서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대립만을 발견할 뿐이다” (헤겔 국법론 비판, MEW 1, 256쪽)


헤겔이 국가는 곧 인민의 사무(Angelegenheit)라는 사실의 최종적 증명을 제시한다고 생각했던 바로 이 지점에서—인민은 국가 내에서 대의원에 의해 대표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마르크스는 시민 사회와 국가의 분리가 명확하게 입증된다고 보았다. 실로 헤겔이 국가는 “공공의식(öffentlichen Bewusstseins)”의 대상이고 이는 일반적 사무로서 ‘인식’되는 것이라며 대중대표 제도의 국가적 목적을 정당하게 요약할 때, 이는 인민의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완성된” 국가와 그 사안들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는 또한 대중대표는 “인민의 사태로서의 국가의 사무의 ‘환상적 실존’” (헤겔 국법론 비판, MEW 1, 256쪽) 임을 입증한다. 부르주아 국가의 진리, 그 기지(機智, Witz)는 국가의 사안과 시민의 사익의 동일성에 있지 아니하고, 시민 사회와의 분리의 원리에 있는 것이다:

“완성된 정치적 국가는 그 본질상 물질적 삶에 ‘대립’하는 인간의 ‘유적 삶(Gattungsleben)’이다. 이 자아주의적(egoistischen) 삶의 모든 전제는 국가의 영역의 ‘외부’, ‘시민 사회’에서 시민 사회의 속성으로서 존속한다. 정치적 국가가 진정한 전개를 이루게 되는 지점에서, 인간은 사유와 의식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삶’에서도 천상의 삶과 지상의 삶이라는 이중적 삶에서 영위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자신을 ‘공동체(공동체적 존재, Gemeinwesen)’로서 간주하게 되는 ‘정치 공동체’에서의 삶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적 인간’으로서 활동하고, 다른 인간을 수단으로서 간주하며, 자기 자신을 수단으로서 저하하고 외부의 힘의 노리개로 만들게 되는 ‘시민 사회’에서의 삶에서. 천상이 정신적으로 지상과 관계하듯이, 정치적 국가 또한 시민 사회와 정신적으로 관계한다. 종교가 세속 세계의 한계를 극복하듯이, 이 [정치적 국가] 역시 동일한 대립점에 서서 동일한 방식으로 [시민 사회를] 극복하게 된다: 이것을 인정하고, 복구하며, 자신이 이것에 지배되게 함으로써. 자신과 가장 ‘인접한’ 현실에서의 인간, 시민 사회에서의 인간은 세속의 존재이다. [인간이] 자신과 타인에게 현실 개인으로서 간주되는 이곳에서 그는 참되지 않은 현상이다. 반면에 인간이 유적 존재(Gattungswesen)로서 간주되는 국가 안에서 그는 상상된 주권의 공상적 구성원이고, 그의 현실적 개인의 삶은 빼앗겨 비현실의 보편으로 가득 차 있게 된다.”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MEW 1, 354쪽)


“보편”, 혹은 이곳에서 마르크스가 “유(類, die Gattung)”라고 일컫는 것은, 국가를 말함에 있어 논리로 해명될 수 없는 특성을 지니는데, 유는 유에 종속된 개별에 “대립”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시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들은 사적 소유자로서 서로 상충되는 이익을 추구하고, 서로에게 의존하며, 능력이 허용하는 한 이 의존성을 최대한 활용하려 하고, 자신들의 의존성을 통제할 수 없는 조건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물질적 삶”을 영위한다. 이들의 사회적 맥락은 자신들에 의하여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분리된 힘인 국가에 의하여 지배되는데, 국가는 사람과 소유의 인정을 강제하며, 그들의 경쟁을 가능케 하고 유지한다. “국가가 시민 사회와 정신적으로 관계한다”는 것은 이 사회 내에서 추구되는 사익들의 성공에 개의치 않음을 의미한다. 국가의 시민으로서 이들 개인은 자신들의 실천적 경쟁이익과 구분되고 대립하는 제2의 삶을 살아간다. 국가의 사무, 그러니까 소유가 보편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최우선의 원리는 사익과 부정의 관계를 맺으며, 후자의 추구는 제한된다. 따라서 사적 인간으로서 사적 소유를 보호하는 권력에 의존적인 국가의 시민은 자신의 물질적 이익에 대해 이상주의적(idealistisch)으로 행동하게 되며, 한 시민으로서 자신의 이익에 부과된 제한을 인식하고, 자신의 이익의 성공 여부는 부차적 고려 사항이어야 하리라는 것을 존중한다. 시민의 이러한 이상주의는 주관적 망상이 아니다. 이것은 시민 사회에 객관적인 토대를 두고 있으며, 시민 사회에서 분리된 국가 내에서 실존한다:

“국가 이상주의(관념론, Idealismus)의 완성은 동시에 시민 사회 유물론의 완성이었다.”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MEW 1, 369쪽)


오직 그 어느 고귀한 인물, 교회의 지도자, 계급의 대표 등의 특정한 이익으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만이 경쟁과 사적 소유의 원리를 시민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부과함으로써 사익의 경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상주의는 국가 안에서 실현되기에, 이는 도덕과 종교에 있어 드높은 헌신을 스스로 부여하는 “자아주의적” 이익에 대한 강요된 태도로서 주관적으로도 존재하는 것이다:

“시민 사회와 정치적 국가의 분리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시민, 국가 시민의 시민 사회과의 분리로서, 즉 자신의 현실적, 경험적 현실과의 분리로서 나타난다. 국가 이상주의자로서의 그는 자신의 현실과 ‘별개’이며, 구분되고, 대립하는 ‘전적으로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헤겔 국법론 비판, MEW 1, 281쪽)


앞서 말하였듯이, 현재의 상태를 비판하고 이 비판의 실천을 고수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같은 마르크스가 국가의 비판적 진단을 빌미로 세계정신의 영역에 있어 자신의 스승을 능가하려 하는 광기 어린 헤겔주의자를 자처할 때, 이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그러나 ‘급진적’ 독일 혁명은 하나의 중대한 장애물에 직면하였다. 혁명은 ‘수동적’ 요소, ‘물질적’ 기반을 요구한다. 이론은 그것이 인민의 필요의 실현인 이상, 인민에서 실현된다. 독일 사상의 요구와 독일 현실의 회답 사이의 막대한 갈등이 시민 사회와 국가 및 그 자체와의 갈등과 부합할 것인가? 이론적 필요가 즉각적으로 실천적 필요가 될 것인가? 사유가 현실을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현실 또한 사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독일은 정치적 해방의 중간 단계들에 여타 근대 국가들과 같은 시기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이론적으로 극복되었다고 보여지는 단계들 조차 실천적으로는 극복되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의 초월뿐만 아니라 근대 인민들의 한계, 즉 현실적 한계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현실에서 인식하고 노력해야 할 한계들을 초월하기 위한 ‘죽음을 무릅쓴 도약’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급진적 혁명은 오직 급진적 필요의 혁명일 수밖에 없으며, 이 필요들의 전제 조건과 그 발상지는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 (헤겔 국법론 비판, MEW 1, 386쪽)


여기 이 “중대한 장애물”은 바로 부르주아 국가의 비판가가 자신의 비판을 역사적-철학적 과업으로서 제시하는 것을 그만두려 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에 있어 문제는 그의 국가 비판이 ‘그의 시대’의 요구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반대로 그의 시대가 요구한 것은 혁명이 아니라, 그 당시 독일에서는, “정치적 해방”이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요구된 것은 정확히 ‘마르크스가 비판한’, 모든 특정 이해관계로부터 독립적인 근대 부르주아 국가였던 것이다.


이는 혁명의 의도를 지닌 국가 비판가가 할 수 있는 생각 중 가장 터무니없는 것이다. 기존의 원리와의 결별에서 진가를 지니는 혁명이 과연 기존의 원리에 부합하고 있으며 지배 의식을 만족시킨다는 증거도 제공해야 하는 것인가? 어찌 되었든 마르크스는 이러한 입증이 본인의 국가 비판을 격상시킬 것이라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그의 국가 비판은 변환의 “시대”가 무르익었다는 “근대 인민”들을 향한 대담하고 ‘국가지도자적’인 슬로건에서보다는, 이를테면 국가 개념의 영역에 있어서 더 나은 논지를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당시에 지극히 후진적이던 독일에서조차 본인의 국가비판을 “실천적 필요”로서 이해해야 하기에 타당한 이유를 기회가 날 때마다 언급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혹은 다음에서 통찰력 있게 표현되는,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으로서 “정치적 해방”의 요구에 반격할 만한 어떤 것도 생각해내지 못하였다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정치적 해방과 근대 시민국가의 형성을 통해]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그는 종교의 자유를 하사 받은 것이다. 그는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그는 소유의 자유를 하사 받은 것이다. 그는 직업의 이기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그는 직업의 자유를 하사 받은 것이다.” (헤겔 국법론 비판, MEW 1, 369쪽)”


하지만 그는 분명 본인의 관점의 ‘높은 철학적 수준’을 이용하여 자신의 국가 비판을 내세우는 것을 성공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독일적 사상”—동시대 철학가들의 사상—에 관해서 할 말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만 그는 자신을 이것과 “대등한” 수준에 놓고 자신의 관점을 ‘이것’의 역사적으로 가장 발전된 요구로서 고안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비록 아첨에는 논리적으로 대가가 따르는 법인데도 말이다. 헤겔은 “비판적 근대 국가 분석”의 저자로서 치켜세워지곤 하는데, 이는 그저 수준 높은 사상가들을 비교하며, 무려 헤겔조차—상기하자면, 헤겔 분석을 마치고 그의 오류를 파악하여 그는 부르주아 국가의 ‘변론’을 저술한 것에 불과했다는 것을 확신한 이후의—마르크스와 비할 바가 아니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진지하게 보자면, 마르크스는 “독일적 조건”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독일적 조건과의 전쟁이다! 그렇다! 이들은 역사의 수준에 뒤떨어진 이들이며, 모든 비판 너머에 있다 […] 왜냐하면 이 조건들의 정신이 논파되었기 때문이다.” (헤겔 국법론 비판, MEW 1, 380쪽)


나, 마르크스가 국가의 개념을 보유하고 그것의 과학적 비판을 내세울 때, 독일인들은 이 개념에 대응하는 국가조차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 “독일적 현실”이란 얼마나 안일한가! 심지어는 철학적 수준에도 미달이지 않은가!


마르크스의 사고가 과연 얼마나 유물론적이었는지 이러한 지문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동일한 논리를 따라서 그는 “근대 인민”의 역사적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 이들은 부르주아 국가를 만들었다—옳은 방향으로 한 발자국 내디딘 것이다, 비록 잘못된 한 발자국이었지만! “개념(Begriff)”이 역사를 지배하고, 새로운 지평을 열며, 세계에 더 많은 이성을 불어넣는 옛 헤겔의 세계사적 관념론이 자기표현을 빌미로 거침없이 등장하게 된다—비록 안타깝게도 이것은 마르크스가 비판하였던 개념이었으며, 그것의 가장 성공적인 실현은 결코 그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사적 관점에서 그른 것과 옳은 것, 철학과 과학, 국가 숭배와 국가 비판은 곧 낮은 것과 높은 것으로 무심하게 치환된다. 마치 이론적 그리고 실천적 대립물이 (마르크스에서 그 극치에 이르는) 동일한 한 사안의 비교형인 것처럼—그나마 “진정한 인간 문제”를 내세우는 철학적 위선만큼은 이곳에서 호명된다.


창피하도다. 창피하도다.